▲MB 사촌 처남 김재홍 구속제일저축은행으로부터 로비 청탁과 함께 수억원대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오빠 김재홍 KT&G복지재단 이사장이 2011년 12월 14일 저녁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구치소로 가는 차량에 탑승한 뒤 손가방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연합뉴스
현직 대통령이 실정법을 위반한 이른바 내곡동 사건도 대표적인 '도적질'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지금 대통령과 영부인의 직계 4촌 이내 친인척들이 각종 비리로 조사를 받고 있다. 시야를 조금만 더 넓혀보면 '도적질'의 범위와 깊이가 다양해진다. 20조가 넘는 돈이 들어간 MB의 대표적인 공약사업인 4대강 사업은 대통령의 모교인 동지상고 출신들이 막대한 이익을 쓸어가고 있는 반면 현장 노동자들은 일한 만큼의 임금도 못 받고 있다. 또한 4대강 사업이 진행되는 유역의 금싸라기 부동산은 대통령 친인척들과 정권의 실세들이 이미 확보하고 있어서 이후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길 것으로 예상된다.
MB정권의 핵심 실세들은 카메룬 다이아몬드 사건에서 주가조작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이런 전례로 미루어 보았을 때 현 정부 들어서 진행된 각종 이권사업이나 대규모 해외투자사업 등에서 얼마나 많은 비리가 숨겨져 있을지, 정권 말기에 미국에서 무려 14조 원어치 무기를 구매하기로 한 현 정권이 무슨 뒷돈을 받은 것은 아닌지 의혹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권력을 이용해 국가를 수익창출의 모델로 뒤바꾸려는 가장 노골적인 노력은 인천공항 민영화에서 드러났고 지금은 KTX로 옮겨간 상황이다. 날치기로 처리된 한미FTA 덕분에 이제는 의료나 에너지, 공공 인프라 등 국가가 공익의 목적으로 고유하게 하던 일들이 민간으로 넘어가면서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렇게 되면 민간업체 수익보장이라는 미명하에 '도적질'이 합법화될지도 모른다.
농민들과 함께 막걸리 마시면서 모내기하던 박정희도 밤에는 여자들 불러서 고가의 양주파티를 즐겼고 (10·26의 현장을 생각해 보라) 박근혜가 이사장으로 있었던 정수장학회를 말 그대로 '도적질'을 했었다. 아니, 박정희는 총칼로 대한민국 자체를 도적질한 '대도'가 아니었던가. 그에 견주어 지난 10·26 재보선에서 한나라당 관계자들이 선관위 홈페이지를 공격한 '부정선거 의혹' 사건은 수많은 의혹에도 지금 검찰의 발표만 놓고 보더라도, 집권 여당이 민주주의의 기본원리를 부정하고 헌정질서를 유린한 총성 없는 쿠데타와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런 명백한 도적질들은 예컨대 노무현이 억대 시계를 받았다는 '의혹', 한명숙이 5만 달러를 받았다는 '의혹', 정연주 전 KBS 사장이 회사를 배임했다는 '의혹', 곽노현이 대가성 돈을 주었다는 '의혹'과 "쎔쎔"이 되면서 "정치하는 놈들은 다 도둑놈"이라는 신화를 만들었다. 정권과 검찰이 야권 또는 야성향의 유력인사들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의혹을 터뜨리고 잡아가고 그렇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효과를, 적어도 여기 영남에서는 크게 보고 있는 듯하다. 물론 그런 '의혹'들의 대부분은 근거가 없다고 뒤늦게 밝혀졌지만 사람들은 훗날에 밝혀진 진실을 기억하지 않는다.
정치하는 놈들이 다 도둑놈들이라면, 그 도둑놈들을 모두 잡아다가 그 죄의 경중에 따라 법대로 처리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희한하게도 어차피 정치인들이란 다 도둑놈들이니까 그냥 힘 있는 사람 밀어주자는 해괴한 결론이 횡행한다.
"박정희가 죄 없는 사람도 마이 쥑있다 아입니꺼.""그라믄 박근혜도 도둑놈인 거 인정하는 거지예?"이런 식으로 말대꾸하려다가, 괜히 명절날 집안 분위기가 이상해질까봐 말을 꺼내지는 못했다.
'극적 반전', 엉뚱한 곳에서 벌어지다극적인 반전이 일어난 것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였다. 음력 그믐날의 밤도 깊을 무렵 도란도란 나누던 얘기는 막내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어졌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막내가 좋은 대학 들어갔다고 명절마다 친인척들 앞에서 어깨 힘주던 좋은 시절 다 지나가고, 박사학위를 받은 지 10년이 넘도록 아직도 비정규직 연구원으로 연명해 오히려 다른 친인척들이 걱정해주는 처지가 됐으니 속상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나는 내 근황과 우리 분야의 상황을 설명하다가 무심코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내뱉었다.
"… 이번 정부가 영어몰입교육인가 그거 한다고 그래갖고 대학들도 다 영어강의 한다고 난리치는 바람에 국내 박사는 별로 쓸모없다 이거라예. 미국 박사 아이믄 인간취급도 못 받는다 아입니꺼."순간 어머니의 눈빛과 얼굴빛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물론 정부의 '어륀지' 정책이 곧바로 대학의 영어강의로 직접 이어졌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런 사회적 분위기를 크게 조장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내가 아직 비정규적인 데에는 이보다 더 큰 이유들도 있지만 미국 학위자를 선호하는 풍토가 나 같은 국내 학위자에게 대단히 불리한 것도 사실이다.
아주 구체적이고 디테일한 인과관계는 잘 모르더라도 어머니들은 뭔가가 자식들에게 좋을지 나쁠지를 거의 본능적으로 또 직감적으로 알아낸다. 그밖의 세세한 문제들을 나는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어느 정권 아래에서 막내아들이 더 대접받을 것인가? 어머니는 이미 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물론 아니었다. 평소에는 그냥 흘려듣던 이야기들도 양대 대형 선거가 다가오니까 어머니께는 더욱 민감한 문제로 느껴졌을 것이다. 한동안 말이 없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라믄… 민주당에서는 이번에 누가 나오노?"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현 정부의 이공계 '정책'에 대해서 다시 묻기도 하시는 게 아닌가. 평생 1번 찍으면서 불과 몇 시간 전까지 "무조건 박근혜" 하시던 분이 과학계 정책이나 심지어 야당에도 관심을 가지시니 이런 상전벽해도 없구나 싶었다. 순간 나는 "투표는 자기 스트레스를 줄이려는 노력"이라는 김어준의 말이 생각났다. 칠순의 어머니에게도 이 말은 사실이었다(한편으로는 나 때문에 어머니께서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시게 돼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절에 다니시는 어머니는 설날이 지나면 못난 아들을 위해 돈을 들여서 불공을 드릴 계획이시란다. 어무이, 열 번의 불공보다 한 번의 투표가 더 확실합니데이, 라는 말이 목구멍을 넘어오려다 간신히 다시 들어갔다.
"부모의 자식사랑, 수십 년 된 투표신념도 뒤흔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