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은 개봉 전부터 "이 영화는 교수사회의 일그러진 지성을 쏘았다"고 부각시켜 주목을 끌었다. 지난 2일 <교수신문> 최성욱 기자는 영화 개봉을 앞두고 정지영 감독과 법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을 상대로 인터뷰한 결과를 '"이게 재판입니까 개판이지"… 교수사회 일그러진 지성 쐈다'란 제목아래 기사를 풀어 나갔다.
최 기자는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수학과)와 '석궁사건'은 1월과 묘한 인연이 있다는데 관심을 두었다. 그는 기사에서 "조교수로 성균관대 수학과에 부임한 김 교수가 대학별고사 수학 문제의 출제 오류를 지적한 때가 1995년 1월, 희대의 사건으로 기억될 만한 이른바 석궁사건이 일어난 날도 1월 이맘때였다"며 "김 교수가 박홍우 부장판사 집 앞에서 그를 기다린 때도 2007년 1월 15일, 김 교수가 징역 4년 실형을 선고 받고 만기출소한 시점도 지난해 1월 24일 이었다"고 밝혔다.
대법원 판결 이후 다시 5년이 지나 영화 <남부군>(1990년), <하얀전쟁>(1992년) 등 시대의 금기와 그로 인한 사회의 멍에를 정면으로 다뤄온 정 감독이 13년 만에 문제작을 들고 나타난 시점도 1월이다. 공교롭게도 '석궁사건'이 일어난 날과 김 교수 출소일의 한 가운데라는 점에서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을 준다.
기사에서 정 감독은 기자와의 언터뷰에서 사회적 파문을 의식했던지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법정에서 상식을 뛰어넘는 일이 벌어지는데, 김 교수가 판사와 검사를 상대로 벌이는 '공방전'은 철저하게 공판기록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기사는 "교수사회를 향한 일침"이라고 화살의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기적인 지성들은 반성해야 한다"고 방점을 찍은 기사는 이기적인 교수사회의 그늘을 정 감독의 표현을 대신해 강조한다.
법정 공방전을 통해 사법부의 권위를 신랄하게 꼬집고 있는 듯 보이지만 실은 교수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극 전체에 깔려있음을 암시해 준 대목이다.
법학자들은 교수사회에서 비롯된 '석궁사건'을 다룬 영화 <부러진 화살>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변호사이며 현재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인권법을 강의하고 있는 박찬운 교수는 "개봉 전에 제2의 도가니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적중했다"고 평가한 뒤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간 느낌"이라며 다년 간 변호사를 해왔던 경험을 되새기며 영화가 주는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문제점을 제시했다.
23일 <오마이뉴스>에 쓴 '사법부를 향한 화살... 살짝 빗나갔습니다'란 제목의 <부러진 화살> 리뷰기사에서 그는 "이 영화는 그동안 우리 사법부의 치부를 그들만의 리그에서 해결할 수 없음을 우리 시민사회가 각성한 결과"라며 "사법부의 엘리트 주의, 권위주의에 아무리 당찬 변호사들이 도전한들 변하지 않기에 드디어 시민사회가 영화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들고 일어선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이 영화가 주는 함의는 클 수밖에 없다"며 "사법부는 이 영화를 더 이상 권위주의적 사법을 용서할 수 없다는 시민사회의 엄중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그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이 영화가 갖는 몇 가지 문제점이 바로 보이기 시작했다"며 "이 영화는 긍정적 메시지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자칫 놓쳐서는 안 될 것을 간과하게끔 하는 요소가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의 리얼리티 표현방식에 관한 문제와 영화의 자기 모순적 상황설정을 그는 문제점으로 들었다. 그는 십 수 년 동안 일어난 어느 특정인의 실제 사건을 마치 99% 동일하게 보여주겠다는 것으로 리얼리티의 의미를 해석한 영화가 자칫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라는 말을 설 자리가 없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적 결점에도 불구하고 <부러진 화살>이 비판을 불허하는 난공불락의 사법부에 자성의 계기를 준 것만은 분명하다"고 그는 결론지었다.
'석궁건'을 기억하는 법학과 교수들을 <교수신문>이 일찌감치 만났다. 지난 2일 신문이 보도한 인터뷰 기사에서 김종서 배재대 교수(헌법)는 "화살이 하나 없어진 것,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었던 것, 석궁에 의한 부상 유무 등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형사재판에서 검사가 범죄를 입증하지 않았는데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판사는 유·무죄를 입증하는 중요한 자료들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자기 권한 행사로 볼 수 있지만 이것은 공정한 재판을 포기한 것이다"고 주장했다.
또한 고영남 인제대 교수(민법)는 "당시 성균관대 인사규정상으로도 재임용을 거부해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면서 "사법부는 김명호 교수의 의견보다는 학교법인의 주장에 중점을 두는 안일한 판단을 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이 때문에 이후 '재임용제도'도 악용될 수 있는 여지를 사법부가 남겨버렸다"며 "증거채택이 잘 안됐다. 4년 실형은 법학자로서도 유감스럽다"고 비판했다.
[# 해석 ③] "부러진 화살은 언론을 쏘았다"
<한겨레신문>은 25일 영화 <부러진 화살>은 언론을 향해 쏘았다는 주장의 글을 지면에 실어 눈길을 끌었다. 이봉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이 쓴 칼럼 제목을 ''부러진 화살'은 언론을 쏘았다'로 뽑았다. 이 원장은 칼럼에서 "사법개혁 이슈화의 주역이 돼야 할 주류 언론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고 언론을 혹독하게 비판했다. 그는 또한 "<한겨레>를 포함한 언론이 그런 현실을 제때 제대로 보도하고 의제 설정에 나섰더라면, 영화 없이도 일찌감치 시대적 이슈가 됐을 것이고, 소설과 르포가 출간되고 나서야 영화를 찍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영화에서 언론이 그리 많이 부각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왜 언론을 향한 화살이었다고 주장한 것일까. 칼럼에서 그는 "부러진 화살을 보면 기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며 "판사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데 언론의 도움을 받자는 변호사 말에 피고는 '기자들에게 너무 기대하지 말라'며 불신을 드러낸다"고 했다. 그는 또 "언론의 소극적 태도는 영화 개봉 뒤에도 계속되고 있는데 그건 영화 내용이나 양쪽 주장을 소개하는 데 그칠 뿐 무엇이 진실인지 파헤치려는 노력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진실을 알려면 이제 신문이 아니라 영화를 봐야 하나?"란 그의 반문에서 언론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준다. 언론인 출신인 그가 그러면서도 언론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저버리지 못한다. 그는 "영화는 매체 특성상 각색과 과장으로 충격파를 가할 수는 있어도 진실을 파헤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언론은 취재보도라는 수단이 있고 의제 설정에 따라서는 재심을 이끌어낼 수도 있지 않은가?"라고 언론의 분발을 촉구한다.
"언론보도의 또 하나 문제는 사법개혁 관련 담론활동이 사법부가 아니라 주로 검찰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주장한 그는 "법원한테도 정권 말기에 이르도록 소송 진행을 늦춘 데 대해서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늑장 무죄판결은 불법행위의 원상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그는 "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장,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 등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칼춤에 당했지만 법원은 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면서 "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재판에서까지 법규 좋아하는 법원이 소송촉진특례법 21조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1심은 6개월, 항소심과 상고심은 4개월 안에 선고하게 돼 있다"고 언론을 대신해 법원을 질타했다.
[# 해석 ④] "좌파의 영웅, 좌파의 화살받이?"
보수신문이 바라본 <부러진 화살>의 해석이 궁금하던 차에 <조선일보>가 26일 지면에 선뜻 내놓았다. 다분히 이데올로기적 관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김대중 고문이 쓴 대표적 고정칼럼을 통해 <조선>은 "곽노현 재판관은 좌파의 '영웅'이 되고, 정봉주 구속은 좌파의 '화살받이'가 되는 요지경 세상"이라며 영화가 우리 사회에 던져주는 메시지를 애써 희석시켰다.
김 고문이 쓴 칼럼 "이게 재판이냐? 개판이지"에선 분명 숨겨진 뉘앙스가 가득 풍긴다. 뜬금없이 <부러진 화살>에 나온 대사를 제목으로 뽑은 칼럼은 삐딱하게 전개된다. 서두에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판결을 물고 늘어진다. "곽노현 케이스는 '공직 금품 매수' 행위에 대한 재판이었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돈 준 사람은 버젓이 풀려나고 돈 받은 사람만 징역살게 됐다는 점, 매수행위 자체는 단죄되지 않고 부수적인 사안이 되고 말았다는 점, 그리고 재판 전체가 아주 형식논리에 치우친 '전문가들끼리의 게임'으로 끝나고 말았다는 점들이 분통 터지는 것"이라고 화를 냈다.
그러더니 '돈봉투'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박희태 국회의장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한다. "돈을 주라고 지시하거나 그 정황을 알았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그를 법적으로 단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그래야 법이 그나마 공평(?)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고 횡설수설한다. 이어 곽노현 측의 '돈'과 박희태 측의 '돈'은 그 성격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우긴다. 김 고문은 끝내 "박 의장 쪽 돈은 상대방의 지지를 구체적으로 담보하는 대가로 지불한 돈이 아닌 반면, 곽씨 측 돈은 상대방의 사퇴를 전제로 한 구체적 거래의 성격이 분명하다"고 판결까지 내려버린다.
"박 의장 측의 돈이 사전이고, 곽씨의 돈이 사후인 점에서 더욱 그렇다. 박 의장 측 돈은 지지 안 해줘도 그만이지만 곽씨 측 돈은 사퇴가 없으면 보답도 없다는 점에서도 질이 다르다"는 해석은 참으로 해괴하기 짝이 없다. 그런 그도 민망했던지 말미에서 영화 <부러진 화살>로 화제를 돌렸다. "요즘 '부러진 화살'이라는 영화가 화제"라며 슬그머니 추켜세우더니 결론에 이르러 "곽노현 재판관은 좌파의 '영웅'이 되고, 정봉주 구속은 좌파의 '화살받이'가 되는 요지경 세상"이라고 기어이 본색을 드러내고 만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일까. <부러진 화살>에 대한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사법부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을 보여준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영화가 함의하는 메시지를 정치적 이념에 버무려 해석하는 프레임이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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