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자대책위에서 제작한 춘천시 천전리 산사태 관련 26일과 27일 사이에 발생한 마적산 아래 지역 침수 및 산사태 현황도.
대책위
지난해 7월 27일 0시 8분에서 21분 사이 춘천시 신북읍의 산 아래 마을인 천전리에서 일어난 산사태로 인하대 학생 10명과 일반인 3명(주민 1명, 여행객 2명)이 사망하고 26명이 부상을 당하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날은 인하대 학생들 31명이 춘천에 와서 사회봉사(초등학교 대상 발명캠프 개최)를 하며 첫날을 보낸 뒤였다. 인하대생들은 그날의 봉사를 마치고 단잠을 자던 중이었다.
구조 작업은 밤새워 진행됐지만, 13명의 목숨을 구할 수는 없었다. 산사태는 두 군데서 일어났다. 산사태가 일어난 마적산은 산림청이 산사태 위험 1등급 지역으로 지정한 곳이었다. 언제든 산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었다. 산사태가 일어나기 전, 산림청은 26일 오후 9시 1시간 동안 내린 강우량을 바탕으로 27일 0시까지 3차례에 걸쳐 춘천시에 산사태주의보를 보냈다. 하지만 이 주의보는 사고가 난 민박집에까지는 전달되지 않았다.
유족들은 이 모든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난 것인지 몹시 궁금했다. 책임을 지고 말할 수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의 설명을 듣고 싶었다. 그런데도 이광준 춘천시장은 유족들이 지옥 같은 이틀 밤을 보내고 있을 때 나타났다. 이 시장의 얼굴을 본 유족들은 격앙됐다. 이 시장의 문상을 거부했다. 나중에 이 시장은 이틀을 구조 현장에 있다 그때서야 겨우 문상을 갈 수 있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이 시장은 그 바쁜 와중에 유족들이 보상 문제를 거론할 것에 대비해 춘천시가 책임질 일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느라 더 바빴다.
이 시장은 지난해 8월 30일 춘천시의회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유족들이 문상을 온 최문순 도지사 앞에서 보상 문제를 거론했다는 얘기를 듣고)… 저는 그때까지만 해도 보상에 관한 얘기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 우리 춘천시가 보상을 해줘야 되는 문제인지 따져봐야 되겠다, 그래서 저는 그날(28일) 밤 10시에 옷까지 차려 입었다가 안 되겠다, 그래서 안 갔다."
이후 이 시장이 보여준 모습은 이 사건을 책임감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사람이 보여주어야 할 태도와는 거리가 멀었다. 유가족들이 7월 29일 춘천시청을 항의 방문한 뒤에, 조사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춘천시는 일단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다. 조사위원회에는 시청측과 유족측에서 위촉한 전문가가 3명씩 총 6명의 조사위원들이 참여했다. 위원장은 유족측에서 위촉한 박창근 교수가 맡았다. 하지만 이 조사위원회는 조사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조사에 필요한 비용 문제만 거론하다 1개월 만에 해체됐다.
이광준 시장은 조사위원회가 제시한 1차 '과업지시서'를 보고 나서 조사 항목이 너무 많고 2억원의 조사비용이 조사 목적에 맞지 않게 너무 높게 책정됐다며 예산 지원을 거부했다. 그래서 조사위원회는 항목을 일부 조정한 뒤 조사비용을 1억 원에 맞춰 다시 제시했다. 그리고 산사태의 원인을 규명하는 데 필요한 지질조사 등 기술적인 조사에 필요한 내용을 최소화해서 계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시장은 조사 용역비로 2000만 원 이상은 지원이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 시장은 천전리 산사태는 천재이기 때문에 행정상 문제가 없는 한 춘천시가 책임질 일이 아니며, 그런 책임 소재를 규명하는 데 2000만 원 정도면 충분하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시의 재정이 열악하다는 이유를 들어 1억 원은 너무 많다는 의견을 거두지 않았다.
춘천시는 조사위원회가 해체되기 직전, 시의회에서 추가 예산을 받아보겠다는 말을 전달하긴 했지만, 조사위원회는 시장이 조사위원회를 신뢰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안정적이고 객관적인 조사 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해체를 단행했다. 이때 춘천시는 시에서 발간하는 시보(2011년 9월 <봄내>)를 통해 "사고 원인에 대한 춘천시의 책임여부만을 가려주면 될 조사위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다 보니 이런 파국을 맞게 됐다"고 설명했다. 비용 문제를 떠나, 애초 조사 의도와 목적이 다른데 조사위원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천전리 산사태를 대하는 춘천시장의 이런 태도는 지난해 여름 같은 시기 유사한 참사를 겪은 서울시가 보여준 것과도 극명하게 비교된다. 서울시는 우면산 산사태 이후 10명의 민간조사위원들을 선임하고 1억 3000만 원의 비용을 들여 조사를 마쳤다. 그리고 올해 1월 26일에는 산사태 원인을 더욱 더 정확하게 밝혀내고 올 여름 수방대책을 마련할 목적으로 2월에 추가로 보강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이 조사 결과를 백서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참다 참다 결국에는 직접 원인 규명에 나선 유족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