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리치몬드 과자 홍대점 내부이다. 12시도 되지 않은 오전 시간 사람들로 발 디딜틈이 없었다.
김혜승
리치몬드는 5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을 겪었다. 김 대표는 "5년 전에도 건물주가 SPC(파리바게뜨)와 계약을 했다며 나가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때도 이미 계약이 결정된 상태에서 건물주의 일방적인 통보였다. 김 대표는 "우리는 차마 동종업종에 이 자리를 내 줄 수 없었다"면서 "결국 SPC가 제시한 보증금 100%와 월 임대료 115%를 주겠다고 하고 자리를 지켜냈다"고 털어놨다.
이후 리치몬드는 이 약속을 지키려고 권리금을 2억5천만 원에서 5억 원으로, 월 임대료를 2500만 원으로 올렸다. 부담되는 선택이었지만 제과점을 지키려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에 가능했던 선택이었다. 김씨는 "오랜 영업한 탓에 세금도 계속 오르는 상황이었고 5년 동안 수익 면에서 참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그 이후 힘들게 쫓기는 마당에 더 잘해보고자 2010년 10월에 한 달 반이 걸려 리모델링을 했어요. 리모델링 비용만 3억5천만 원 들었는데 6개월이 지난 2011년 4월 건물주가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통보했어요. 리모델링 하고 1년 3개월도 안 돼서 문을 닫게 돼 힘들게 시작한 리모델링도 소용이 없게 되었어요. 이건 건물주에게나 우리에게나 손해예요. 나아가 국가적 손해죠." 인터뷰 중간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이 김 대표를 찾았다. 이 노인은 리치몬드 홍대점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찾았다는 단골손님이었다. 그는 김 대표 손을 어루만지며 말로 다 못할 위로를 눈빛으로 전했다. 만감이 교차하는지 눈이 빨갛게 충혈된 김 대표도 손수건을 자꾸만 눈에 가져갔다.
김 대표는 "건물주와 5년 동안 동종업계만큼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각서를 썼다"며 "어차피 언젠가는 나가야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는 아니다, 사실 지금이라도 더 높은 임대료를 주고서라도 이곳을 지켜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씨 부부 자녀로 2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권형준 리치몬드 팀장은 "아버지가 지금 내 나이 때 가게를 열었고 나는 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폐업하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권 팀장은 "지금 홍대점에 20명 정도가 근무하고 있지만 낙오자 한 명 없이 모두 안고 갈 생각"이라면서 "우리도 부담이지만 같이 근무하는 동료들도 부담을 느끼고 서로 미안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치몬드 과자점 자리에 입점을 준비 중인 엔제리너스 쪽은 "밀어낸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의 거리 '홍대', 산업 자본의 텃밭으로'홍대'를 걷다 보면 같은 프랜차이즈 매장들을 여러 개 발견할 수 있다. 홍대 특유의 맛집이나 카페들로 가득 찼던 거리는 프랜차이즈 업계들이 장악하면서 차별성이 사라져가고 있다. '리치몬드 과자점'이 있던 자리 근방에도 까페베네, 미스터 도넛, 스타벅스, 커피빈, 던킨도너츠 등 커피 관련 프랜차이즈 매장들이 이미 비집고 들어왔다.
엔제리너스만 하더라도 현재 홍대역 부근에만 모두 3개(마포구 동교동 2개, 서교동 1개)가 있다. 이밖에 홍대 부근에 있는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은 S사 4개, T사 3개, T사 1개, C사 3개, C사 3개, C사 4개, I사 2개 등 20개가 넘는다. 한 블록 건너 같은 커피전문점이 있다는 말이 농담이 아니다. 이것은 비단 커피 전문점만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제빵 업체, 패스트푸드 업체, 레스토랑 등 각종 음식 업계의 프렌차이즈점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 트위터 사용자(@studioxga)는 "이제 홍대는 더 이상 뜨거운 동네가 아니라 그저그런 대기업 프랜차이즈의 경연장이 되었다"면서 "홍대에서 장사를 해서 자리가 잘 될 때쯤이 되면 대기업이 들어와 밀어낸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트위터 사용자(@mjay_y)도 "홍대가 매력있는 건 스타벅스보다, 커피에 목숨 거는 바리스타가 만들어주는 그들만의 카페가 있기 때문"이라며 "홍대의 매력이 없어질 날이 얼마남지 않았구나"고 우려했다.
홍익대에 다니는 홍다경(22)씨는 "일부러 프랜차이즈 카페를 가지 않는다"면서 "가격대가 비슷하거나 비싸더라도 되도록 개인 소유 카페를 애용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권 팀장도 "일본에는 100년 전통의 음식점이 많지만 우리나라는 대기업 프랜차이즈점의 공격적인 횡포로 전통을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안타까워 했다.
"3개월이 되었든, 1년 후가 되었든 다시 이곳에 돌아오고 싶어요. 2~3평의 작은 평수이건, 하루에 만원만 팔리더라도 상관없어요. 사람들에게 홍대에 리치몬드 과자점이 있었다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추후 리치몬드가 있던 자리에는 생활용품 판매점인 다이소(1~3층)와 롯데 계열사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 엔제리너스(1~2층)가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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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떠나는 빵집 주인 "왜이리 눈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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