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년 만에 한파? 이거 하나면 문제 없어요

추위야 물렀거라... 콩나물생굴 국밥 나가신다

등록 2012.02.04 11:31수정 2012.02.04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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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 고향 생굴입니다

우리 고향 생굴입니다 ⓒ 김동수


온 나라가 꽁꽁 얼어붙었습니다. 2월 2일 서울 최저기온은 영하 17.1도, 철원이 영하 24.6도까지 떨어졌습니다. 언론은 2월 기온으로는 55년만에 가장 추운 날로 기록됐다고 보도했습니다(일부 언론은 65년만). 우리 동네인 경남 진주도 영하 11.6도였습니다. 그리고 3일 아침은 더 추워 영하 14.3도였습니다. 


이런 날 밖에 나갔다는 가는 어떻게 될지 몰라, 하루 내내 '방콕'을 했지만 워낙 오래된 집이라 바깥바람이 솔솔 들어옵니다. 갑자가 따뜻한 국밥이 먹고 싶어 무엇을 먹을까? 머리를 이리저리 돌렸는데 아내가 콩나물 국밥을 추천했습니다. 추위를 녹이는데 최고입니다. 그런데 콩나물 국밥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혹시 생굴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남편은 콩나물생굴국밥, 아들은 김치국밥

"날씨도 추운데 따뜻한 국밥 없나?"
"국밥? 콩나물 국밥 어때요?"
"오늘같이 추운 날 콩나물 국밥 좋지요. 콩나물만 아니라 다른 것 없어요?"
"생굴있어요. 생굴 넣어면 더 시원한 맛이 날 것 같은데."
"나는 좋지. 콩나물에 생굴을 넣어 끓인 국밥 정말 최고지요."

하지만 아직 방학이 끝나지 않아 집에 있던 큰 아이는 생굴 넣은 콩나물 국밥 마땅치 않은지 시무룩합니다. 어쩔 수 없이 아내는 김치국밥까지 끓여야 했습니다.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입니다. 남편과 아들 때문에 손을 두 번이나 놀려야 하는 아내가 참 안쓰럽습니다.

a  싱싱한 콩나물

싱싱한 콩나물 ⓒ 김동수


"당신이 이해해요. 어쩔 수 없지. 인헌이가 김치국밥을 포기할리 없고, 나 역시 생굴 넣은 콩나물 국밥 먹고 싶은데 어떻게해요."
"두 번 손이 가야 하지만 나는 둘 다 먹고 싶어요. 생굴 넣은 콩나물 국밥은 추운 날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김장 김치가 지난 14년 동안 제일 맛있잖아요. 그러니 김치국밥도 좋고."


콩나물에 비싼 생굴, 물론 이 생굴은 고향에서 직접 캔 것이라 싱싱합니다. 마트와 백화점에서 시간 지난 생굴과는 신선도에서 비교 자체가 안 되지요. 콩나물에 생굴을 넣어 끓여 먹는 분들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아주 좋아합니다. 특히 딸 아이는 생굴회와 생굴 김치전 등 생굴이 들어간 음식은 다 좋아합니다. 마침 딸이 학교 가고 없으니 나 혼자 다 먹을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싱싱한 생굴에 콩나물 입안에 침이 남강입니다


"콩나물을 왜 넣지 않고 물만 끓여요?"
"물을 끓인 후 콩나물을 넣어야 사각사각해요. 콩나물이 많이 익어면 맛이 없어요."
"그런가? 끓는 모습만 봐도 입안에 침이 남강입니다. 오늘따라 더 맛있게 보이네. 보글보글 소리만 들어도 참을 수가 없어요."


a  보글보글 끓고 있는 콩나물생굴국밥. 콩나물+생굴+달걀+대파+고춧가루

보글보글 끓고 있는 콩나물생굴국밥. 콩나물+생굴+달걀+대파+고춧가루 ⓒ 김동수


'보글보글' 끓는 콩나물생굴 국밥, 아 입안에 침이 남강이었습니다. 서울 사람들은 먹을 수 없는 생굴에 싱싱한 콩나물, 이 정도면 서울 사람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아니 호텔 음식을 먹는 사람 부럽지 않습니다. 콩나물, 생굴에 대파와 달걀 하나를 넣었습니다.

"야 달걀 하나 더 넣으면 더 맛있겠네요."
"달걀 당연하지요. 콩나물 국밥에 달걀은 기본이잖아요."

"콩나물생굴국밥, 이것 보세요. 탱글탱글한 생굴. 이런 것 보고 침 안 흘리면 맛을 모르는 사람이예요. 두 사람이 먹다가 한 사람 죽어도 모를 맛입니다."
"칭찬도 참... 어느 정도 하세요. 나 보고 음식 솜씨 없다고 할 때는 언제고."
"물론 그렇지만 오늘 당신이 끓인 국밥은 최고예요. 싱겁지고, 짜지도 않으니까. 더 맛있어요."


a  먹음직한 콩나물생굴국밥입니다

먹음직한 콩나물생굴국밥입니다 ⓒ 김동수


콩나물과 굴,대파와 달걀이 들어간 콩나물생굴 국밥을 누가 끓였을까요. 숟가락에 한 술 떴습니다. 산해진미로 이뤄진 진수성찬이 부럽지 않습니다. 한 숟갈 뜨니 안경에 김이 서려 앞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김이 서려 앞이 안 보여도 숟가락은 자연스럽게 입안으로

"김이 서려 앞이 잘 보이지 않아도 숟가락이 자연스럽게 입으로 들어가네. 추위가 확 가시네. 속도 풀리고. 당신 콩나물 국밥 장사해도 될 것 같아요."
"콩나물 국밥 잘 끓이면 국밥장사, 닭강정 잘 만들면 통닭집, 장어국 잘 끓이면 장어국 장사 하라네요."
"그런가. 정말 그래요. 거짓말 아니예요. 생각해보니 음식 솜씨 없다고 했는데 내가 잘 못 알고 있었어요."

"이제 제 음식 솜씨 타박하지 마세요."
"그럴게요. 이 많은 밥 내가 다 먹을 수 있으니까? 당신은 숟가락 들지 마세요."

a  콩나물생굴국밥을 정신없이 먹고 있습니다. 안경에 김이 서렸습니다.

콩나물생굴국밥을 정신없이 먹고 있습니다. 안경에 김이 서렸습니다. ⓒ 김동수


큼직한 그릇을 뚝딱 해치웠습니다. 배가 산 만해졌습니다. 55년 만에 찾아온 2윌 추위도 아내가 끓인 콩나물생굴 국밥에 두 손을 들었습니다.

'추위야 물렀거라. 콩나물생굴 국밥 나가신다.'
#콩나물 #생굴 #콩나물생굴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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