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MBC가 2009년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MBC 파업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

등록 2012.02.06 11:43수정 2012.02.06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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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8일 뉴스투데이 화면 MBC는 17일 뉴스데스크에서만 사용하기로 약속하고, 18일 아침 뉴스에서도 사용했다. 또한 신상 정보 노출이 염려되어 참고용으로만 사용하기로 받은 화면 역시 무단으로 사용했다. MBC 로고 뒤로 원래 로고를 지운 자국이 선명하다.
2009년 8월 18일 뉴스투데이 화면MBC는 17일 뉴스데스크에서만 사용하기로 약속하고, 18일 아침 뉴스에서도 사용했다. 또한 신상 정보 노출이 염려되어 참고용으로만 사용하기로 받은 화면 역시 무단으로 사용했다. MBC 로고 뒤로 원래 로고를 지운 자국이 선명하다.MBC 뉴스 갈무리

2009년, MBC는 국민에게 그야말로 소중한 방송이었다. MB정부에 쓴소리하는 유일한 공중파 방송이었고, 언론매체 신뢰도에서 항상 수위를 차지했다. 국민들은 MBC 뉴스의 공정성이 지켜지길 바라고 또 지지했다. 물론 2010년 2월 김재철 사장 취임 이후 신뢰도는 떨어졌고, 'MB씨 방송'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최근 MBC 파업은 김재철 사장 이전의 국민에게 사랑받았던 '영광의 시기'로 돌아가려는 노력일 것이다.


그런데 난 MBC가 '영광의 시기'에 자사의 보도로 피해를 입은 이주노동자에게 침묵과 거짓으로 일관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래서 내가 기억하는 김재철 이전의 MBC는 공정보도는 하지만 약자에게는 강한 기득권 집단일 뿐이다.

2009년 8월 난 이주노동자와 한국인이 함께 이주노동자 소식을 영상으로 만드는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에서 고용허가제 5년을 맞아 이주노동자 노동실태 보고대회 때 쓸 영상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 중소기업중앙회와 노동부는 최저 임금을 받던 이주노동자들에게 숙식비를 공제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주거환경에 대한 기준 없이 숙식비 공제는 부당하다는 입장에서 현재 이주노동자의 주거환경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보여주는 영상이 필요했다.

내가 단체에서 하는 일은 다국어 뉴스를 만드는 것이었는데, 당시 고용허가제로 들어와 있던 베트남어 앵커 K는 나와 동갑내기로 영상에 관심이 있어 어울릴 기회가 많았다. 주말에는 그의 숙소에 놀러가 베트남 요리를 대접받기도 했었다. 난 K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는 흔쾌히 동의했다.

사실 그가 일하는 회사는 노동자가 100여 명이 넘는 규모가 꽤 큰 곳이었고, 그나마 주거환경이 좋은 편에 속했다. 그렇지만 공장 기계 바로 옆에 칸막이로만 만들어져 소음이 심하고, 창문이 없어 공장 기계의 열기가 그대로 전해온다는 것, 무엇보다 부엌이 없어 샤워실에서 조리를 하는 모습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이었다.

그렇게 촬영된 영상은 2009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상영됐고, 그곳에서 한 기자에게 MBC 뉴스데스크에서 비슷한 취지로 보도를 하겠으니 상영된 영상물 원본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우리 단체는 내부 회의를 거쳐(물론 K의 동의를 구하고) 영상물을 보내줬다. 그때 우리 단체가 요청했던 것은 절대로 K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블라인드 처리를 확실히 할 것과 보도 말미에 자료제공 자막에 우리 단체의 이름을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방송된 뉴스는 좋았다. 그런데 그 파급 효과는 엉뚱하게 터져나왔다. MBC에서 블라인드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K가 일하는 회사 이름이 노출됐고, 그것을 본 고용주는 K를 호출했다. K는 모든 내용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고, 고용주는 자신의 회사에 엄청난 손해가 났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나섰다. 그런데 K에게 '생사'가 걸린 이 문제 앞에서 MBC 기자는 처음 한두 번의 통화 후 연락이 끊어졌다.

MBC 기자에게 보낸 편지 이메일과 문자를 통해 긴급한 사정을 알렸지만, 연락이 된 것은 방통위에 신고를 하겠다고 밝힌 후였다.
MBC 기자에게 보낸 편지이메일과 문자를 통해 긴급한 사정을 알렸지만, 연락이 된 것은 방통위에 신고를 하겠다고 밝힌 후였다.이기태

그러나 수신 확인이 된 다음에도 연락은 없었다. 고용허가제하의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이동이 3회를 넘기면 체류기간에 관계없이 미등록 상태가 되기 때문에 사업주가 '생사'를 쥐고 있다. K는 이미 1회 사업장 이동을 한 상태였고, 이번 사건으로 사업주에게 잘못 보여 해고되거나 그 이상의 처분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K는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들이 그렇듯 가족과 친지에게 빌린 돈으로 비싼 브로커 비용을 내고 한국에 들어왔다. 이번 일이 잘못돼 바로 고국으로 돌아갈 경우 피해를 보는 것은 K 혼자뿐이 아니었다.


결국 단체 대표와 함께 K의 회사를 찾아가, MBC 보도로 엄청난 금전적, 심리적 피해를 입었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고용주 앞에서 K를 속이고 그의 동의 없이 몰래 회사 내부를 촬영했다는 '거짓말'을 했다. 무조건의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연락이 끊어지기 전 MBC 기자가 고용주와의 통화에서 이야기했다는 '보도의 진실성'을 나 역시도 말하고 싶었지만, 그 당시 나에게 '진실'보다 중요한 것은 K였기 때문이다.

K의 고용주는 '괘씸하게' 전화를 끊은 MBC 기자의 사과를 받고 싶어했고, 우리는 어떻게든 MBC 기자와 연락해서 사과를 하게 하겠으니 K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기를 '애원'했다. 난 MBC 기자에게 할 수 있다면 무릎이라도 꿇고, 제발 한 번만 고용주를 만나서 미안하다는 시늉이라도 해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무릎을 꿇을 기회는 오지 않았다. MBC 기자는 끝끝내 연락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MBC 보도국 앞으로 항의 메일을 보냈지만, 우리가 받은 답변은 기다리라는 것뿐이었다. MBC 보도로 인해 한 사람, 아니 한 가족의 '생사'가 어찌 될지도 모르는 문제를 기계적으로 처리하는 것을 보고 느껴진 것은 분노였다.

MBC는 보도 과정에서 <뉴스데스크>에서만 사용하겠다는 영상을 화면제공 자막 없이 아침뉴스에서도 동의 없이 사용한 것과 정보 노출에 대한 염려로 참고로만 사용하겠다고 받아갔던 영상을 무단으로 편집해서 사용했다. 보도 피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을 포함해 세 가지 공정하지 못한 행위를 방통위에 신고하겠다고 최후통첩 메일을 보내고 나서야 MBC 기자의 그동안 바빠서 연락 못했다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최초 뉴스 보도가 나간지 20여 일이나 지난 뒤였다.

우리는 MBC 보도국 차원에서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를 알려달라고 요구했는데, MBC 기자는 자기 개인이 어떻게 사죄하면 되는지를 되물어왔다. 우리 단체의 요구는 K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고용주가 원하는 사과를 할 것과 보도 과정에서 기만했던 것에 대해 MBC <뉴스데스크>에서 공개 사과하라는 것이였다. 그러나 MBC 기자와 MBC 보도국은 다시 침묵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MBC 기자는 동계올림픽 현장을 누비기도 하고, 독특한 현장 체험 뉴스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K는 고용허가제 기간이 만료되어 고국으로 돌아갔다. 당시에 해고되지는 않았지만, 몇몇 한국인 동료들로부터는 한동안 심리적인 피해를 입었다. 나는 영상 만드는 일을 그만두고 한옥 짓는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MBC 보도국은 '조롱받는 뉴스'를 만들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바보 같지만, 그 시기 방통위에 신고하거나 여론화를 하지 않은 이유는 2009년의 MBC는 정말로 소중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이 사건이 빌미가 되어 공정성에 시비가 붙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나 수백 명의 인력과 값비싼 장비를 갖고 있는 공중파 방송이 상근자 4명이 전부인 작은 단체에서 화면제공을 받으면서 기본적인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자사의 명백한 실수로 인한 보도 피해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하는 모습은 아무리 공정한 방송을 만든다 해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MBC 파업의 목표가 김재철 사장 취임 이전의 MBC라면, 자신과 관계된 힘없는 자의 목소리에는 한없는 침묵으로 일관하는 MBC라면 그것은 스스로 우리는 기득권 세력일 뿐이라고 언제든지 다시 조롱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다름 없을 것이다.
#MBC #MBC 파업 #MBC 보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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