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치미의 배우들 연극 동치미의 배우들
파라디소극장
어느날 남편과 함께 병원으로 가던 중, 지독한 구두쇠인 남편은 덥고 추운 날에도 택시를 타지 않고 아픈 다리를 이끌고 늘 걸어서 병원에 다니는데 그날도 사실은 자신보다도 더 몸이 좋지 않은 부인을 데리고 자신의 병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가던 중, 갑자기 혼절한 부인을 병원으로 옮기지만 며칠 살지 못해 부인을 먼저 보내게 된다.
자신보다 더 많은 병과 상처 난 몸을 하고서도 철저히 숨기고 살아온 아내를 생각하며 눈물을 멈출 수 없었던 남편은 장례식에 찾아온 자녀들과 일을 치르고 난 후, 식음을 전폐하고는 자녀들이 보는 앞에서 죽음을 맞게 된다. 열아홉에 시집와 50년을 동거동락하며 그렇게 사랑했던 부인 곁으로 길을 떠난 것이다.
연극 <동치미>는 어쩌면 너무나도 평범한 이야기를 가장 한국적인 방식으로 풀어놓은 작품이다. 효와 사랑, 특히 아버지의 사랑은 끝이 없고 깊고 곰삭은 맛이라는 것을 동치미라는 제목으로 매우 잘 표현하고 있다.
결혼해 자식을 낳고는 평생을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살다가, 은퇴를 하고서도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하나 뿐인 집까지 담보로 잡혀 사업자금으로 지원하고는 현재는 임대 아파트에 살면서도 남지 않은 몇 푼의 돈 마저도 연극을 하는 막내딸을 위해 지원하며 겨우겨우 숨죽이며 살아가는 이 시대의 속 깊은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부인에게는 사랑하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해 본 적이 없고, 남편에게 고맙다는 인사말 한번 제대로 들어 본 적 없는 우리들 어머니의 이야기를 연극은 담고 있다. 그래서 너무나 눈물이 나고 또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우리들 부모님들의 인생과 일상을 너무 잘 그리고 있기에 말이다.
때론 강고하고 아내에게 함부로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정 깊은 남편의 모습에서 웃음이 나오고, 겉으로는 야단만 치는 것 같지만, 생활비에 방값까지 아내 몰래 지원해 주는 딸을 보면서는 눈물이 나기도 한다.
나는 아버지 역을 연기한 배우 박기선 선생의 눈빛과 빠른 호흡, 신들린 연기에서 여러 번 눈물이 나고 웃음이 나서 몇 번을 웃고 울었다. 8남매의 장남 장녀이신 고향 영주에 계시는 부모님 생각이 많이 났다. 수많은 동생들에 자식까지 어렵게 키우신 부모님 생각이. 특히 평생 어깨가 무거우셨던 아버님 생각이 유독 많이 났다.
연극 <동치미>는 정말 따뜻한 휴먼드라마다. IMF와 맞물려 대단한 인기를 얻었던 김정현 선생의 소설 <아버지>처럼 뜨겁고 애잔한 눈물이 숨어있다.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카타르시스가 있는 작품으로 누적 관객수가 20만을 넘겼다. 또한 1000회 이상 공연이 계속돼 예술치료의 수작이라 부를 만하다.
가족과 함께 특히 사랑하는 자녀들이나 부모님을 모시고, 대학로로 연극 <동치미>를 보러가는 꿈을 꿀 것 같은 행복한 겨울밤이다. 바깥은 영하의 날씨지만, 가족 간의 사랑과 부모님의 얼굴이 더욱 생각나는 깊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