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가 무엇이냐고?"..."똥덩어리다"

[서평] 간화선 수행의 교과서 <무문관 참구>

등록 2012.02.14 13:14수정 2012.02.14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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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양사 입구에 세워진 비에 새겨져 있는 '이 뭣고'는 도대체 무엇인지가 궁금합니다.
백양사 입구에 세워진 비에 새겨져 있는 '이 뭣고'는 도대체 무엇인지가 궁금합니다. 임윤수
백양사 입구에 세워진 비에 새겨져 있는 '이 뭣고'는 도대체 무엇인지가 궁금합니다. ⓒ 임윤수

한 승이 운문에게 묻는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운문이 말한다. "똥 덩어리(乾屎橛)."-문무관 참구 189쪽-

 

어떤 것이 부처냐고 묻는데 감히 '똥 덩어리'라고 답하고 있으니 이건 동문서답 수준이 아니라 되바라지기 이를 데 없는 뚱딴지같은 대답, 경을 칠 대답입니다. 불교관련 서적들을 읽다 보면 이처럼 상식, 지식, 논리 다 동원해도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글들과 마주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한자나 전문용어로 돼 있는 글이라면 좀 어렵고 딱딱하더라도 반복해서 읽고, 사전 찾아가며 새기고, 아는 이에게 물어 익히다   보면 웬만한 것들이야 아름아름 알아 갈 수 있지만 '똥 덩어리'니 '마 삼근'이니 하는 공안, '이 뭣고'나 '무'처럼 뜬금없는 말로 상징되는 화두라는 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상식, 지식, 논리 다 동원해도 알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공안'

 

몇 십번을 읽어도 문맥은 오리무중이고, 문장(대화)에 담겼을 뜻은 한밤중만큼이나 캄캄하기만 하니 이해는커녕 말 자체가 난공불락의 말장난만 같습니다. 

 

 참선을 위해 선방을 향해가고 있는 출가수행자
참선을 위해 선방을 향해가고 있는 출가수행자임윤수
참선을 위해 선방을 향해가고 있는 출가수행자 ⓒ 임윤수

좌선을 하고 지그시 감은 눈으로 바라보면 뭐라도 보일까하고 흉내도 내보지만 절벽강산을 마주하고 앉은 듯 답답함만 더해갑니다. 그래서 산사 입구에 세워진 비석에 '이뭣고'라는 글씨가 떡 허니 새겨져 있기라도 하면 무식함이 들통날까봐 지레 입을 다물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한밤중처럼 캄캄하고 절벽강산처럼 콱 막히기만 했던 '공안'이란 것을 강 건너 불구경이라도 하듯 어림할 수 있는 누대가 생겼습니다. 뭔가가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두툼한 벽에 가려 보이지 않던 방안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주던 창호지에 뚫린 구멍처럼 선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이해의 틈새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무문관 48개의 공안에 900여회의 독참을 덧댄 <무문관 참구>

 

일본 도쿄대학에서 화엄사상과 불교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수료한 장휘옥· 김사업 제창, 민족사 출판의 <무문관 참구>가 캄캄한 밤중 같던 공안, 어림할 수 없을 만큼 뚱딴지같던 화두의 세계, 선(禪)을 들여다 볼 수 있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머리만으로 한 공부, 내용으로만 쓴 글이 아니라 두 저자가 7년 동안 온몸으로 체득한 선 수행이 배경으로 깔려있어 어떤 화려한 문장이나 미사어구보다 현장감 있는 설득력입니다.  

 

 <무문관 참구> 표지
<무문관 참구> 표지민족사
<무문관 참구> 표지 ⓒ 민족사

한 승이 조주 화상에게 묻는다.

"개(狗子)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무가 말한다.

"무(無)." 무문관 참구 29쪽-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는 물음은 단순히 교리적 차원에서 지적(知的) 해석을 기다리며 던진 것이 아니다. 선문답의 목적은 지적 해석이나 이론으로 경직되어 있는 사람들의 머리 굴림을 깨부수고 자신의 체험에서 나온 살아있는 답을 제시하게 하는 것이다. -무문관 참구 30쪽-

 

한 승이 운문에게 묻는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운문이 말한다. "똥 덩어리(乾屎橛)."-문무관 참구 189쪽-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똥 덩어리." 단지 '똥 덩어리'이다. 비교 대상도 없고, 머리로 생각해 낼 수 있는 실마리도 없다. 아예 그런 것은 바라지도 말라. '똥 덩어리'에 대한 일체의 생각에서 벗어나 오직 '똥 덩어리' 그 자체가 되라. -무문관 참구 191쪽-

 

중국 남송 때 임제종 선승인 무문혜개(無門慧開)가 48개의 고칙(古則; 공안)을 선별해 자신의 촌평을 붙인 책인 무무관(無門關)에 두 저자가 각자가 한 900여 회의 독참(獨參)으로 거르고 얽어낸 내용이니 바느질만큼이나 섬세하고 그물코처럼 얼기설기하지만 끊임이 없습니다. 

 

<무문관 참구>를 읽는다고 해서 저절로 '무'와 '똥 덩어리'의 실체가 이해되고 파악되는 건 아닐 것입니다. 강을 건너려면 강으로 풍덩 들어가 개구리헤엄이 됐건 개헤엄이 됐건 헤엄을 쳐야 건널 수 있듯이 공안 역시 반드시 스스로 뚫어야 할 벽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바닥에서는 보이지 않던 강 건너가 누대에 올라서면 보이고, 오리무중처럼 캄캄하기만 했던 벽돌 속 방안이 틈새 난 구멍으로 어림되듯이 짐작조차 할 수 없던 공안, 엉킨 실타래처럼 가늠조차 할 수 없었던 화두 끝에서 찾는 선의 실체를 볼 수 있는 또 다른 감각이 열릴 것으로 기대됩니다. 

 

출가수행자처럼 용맹정진에는 돌입하지 못하더라도 <무문관 참구>에 실린 마흔여덟 공안을 하나둘 새기고 넘기다 보면 부처가 똥 덩어리로 보이고 개의 불성이 무로 설명되는 선의 세계를 경험할 수도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무문관 참구> / 제창 장휘옥·김사업 / 펴낸곳 민족사 / 2012. 01. 30 / 22,000원

무문관 참구 - 간화선 수행의 교과서, 무문관

장휘옥.김사업 제창,
민족사, 2012


#무문관참구 #장휘옥 #김사업 #민족사 #공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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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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