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1931~2011.1.22)의 문학, 그 뿌리를 알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소설이란 생각이 들었던 <부처님 근처>(가교 출판)이다.
작가 초기 시절인 1973년에 <현대문학>지에 발표된 이 소설은 박완서가 소설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로 알려진 '한국동란 때 이념 문제로 죽은 오빠'와 그렇게 죽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남겨진 두 여인이 상처를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작가가 될 수밖에 없는 과정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 화자가 그토록 하고 싶어 미칠 지경인 '그 이야기'는 '느닷없이 나타난 사람들에게 반동으로 몰려 우리 식구 앞에서 몇 발의 총알을 맞고 살점들이 너덜너덜해져 죽은 오빠'다.
그리고 오빠의 죽음 이후 '아들을 죽였는지라 빨갱이라면 이를 갈아도 시원찮을 것인데 좌익에서 한자리 하고 있는 친구를 스스로 찾아가 자리를 구걸하는가 하면 숨어 있는 친구의 아들까지 밀고하는 등 미쳐 날뛰다가 고발당해 맞아 죽은, 떳떳하지 못한 죽음인지라 쉬쉬하며 난리통에 행방불명 된 것으로 친척들에게 둘러 댄 아버지의 죽음'이다.
사실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이련만 남들이 알까, 아들(오빠)의 죽음에 통곡조차 못하고 너덜너덜해진 살점을 모아 인부를 사 쉬쉬하며 죽음을 감쪽같이 묻어 버린, '마치 새끼를 낳고는 탯덩이를 집어 삼키고 구정물까지 싹싹 핥아먹는 짐승처럼' 태연하게 피붙이의 죽음을 삼켜버린 후 아버지마저 빨갱이 짓하다가 맞아 죽자 남겨진 우리 모녀는 20년 동안 죽음이 남긴 상처 때문에, 피부처럼 밀착되어 있는 아픔 때문에 삶다운 삶을 살지 못한다.
어둑어둑해지는 저녁나절 집에 돌아올 때, 앞서가는 젊은 남자의 뒤통수가 잘 생기고 걸음걸이가 근사했다고 치자. 그 무렵의 나는 그런 일로도 감미로운 기대로 가슴 두근거릴 수 있는 그런 나이였다. 그러나 나는 무서웠다. 앞서가는 사람이 행여 돌아다 볼까봐, 돌아다 보는 그의 얼굴이 꼭 피투성이의 무너져 내린 살덩이일 것 같아 나는 무서웠다. 나는 지독스런 혐오감으로 몸을 떨며 온 몸에 식은땀을 흘렸다. 내 처녀 시절,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나는 이렇게 지긋지긋하게 보냈다. 무서운 게, 무서워하며 사는 게 지긋지긋했다.
…나는 그런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리고 애를 낳고 또 낳고 또 낳았다. 애에 대한 내 욕심은 채워질 줄 몰랐다. 알게 뭐람, 언제 또 어떤 시대의 횡포가, 광기가 검은 총구가 되어 내 아이의 가슴을 향해 겨누어질지 알게 뭐람. 뭘 믿고 아이를 둘만 낳을까. 셋도 적지. 넷도 적고 말고. 다섯 여섯…나는 몸서리를 치면서 자꾸 아이를 낳았다. 남편이 참다못해 불임수술을 할 때까지 내 출산은 계속됐다.
- <부처님 근처>에서
소설과 달리 박완서는 오빠와 함께 아버지가 아닌 백숙을 잃었다. 어쨌거나 스무 살 꽃 같은 나이에 목도하고 묵묵히 삼켜야만 했던 오빠의 처참한 죽음은 나의 삶을 통째로 흔들고 만다. 은폐해야만 하는, 숨죽여 슬퍼해야만 하는 죽음이라 더욱 고통스럽기만 하다.
사는 게 온통 무서운 것은 물론이요, 처음에는 동정과 슬픔이었던 두 사람의 죽음은 점점 원망으로 바뀌고 내 삶은 점점 피폐해지고 만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오빠에 대한 복수로 처자식을 먹여 살리는 밥벌이에만 신경을 쓸 것 같은, 자신이 속한 사회 문제에 섣불리 참여하지도 저항하지도 않을 그런 남자와 결혼을 한 나는 여럿 아이들의 엄마라는 사실도 잊고 꼭지 풀린 사람처럼 매가리 없이 하루 하루 무기력하게 살아간다.
실제로 1931년생 박완서의 오빠는 한국동란 때 죽었다. <부처님 근처>에서 좌익의 회유를 거절함으로써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총 맞아 죽는 것으로 묘사된 그의 오빠는 실제로 좌익에 가담했다가 전향했는데 이 때문에 양진영에서 반동과 빨갱이 소리를 들었고 1.4후퇴 때 총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와 몇 달 뒤에 죽었다. 이런지라 모두들 피난을 떠나던 1.4후퇴 때 박완서는 오빠 때문에 텅 빈 서울에 남아 무시무시한 공포를 경험했다고 한다.
당시 박완서를 견디게 한 것은 "이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언젠가는 이야기로 만들리라"는 것이었다고. 박완서는 결국 마흔 살에 <나목>이란 소설로 데뷔하는데, 이 작품을 비롯하여 <목마른 계절>,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틀니>, <카메라와 워커>, <엄마의 말뚝>,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 오랜 기간에 걸쳐 많은 작품들에 당시의 고통스럽고 끔찍한 체험들을 풀어 놓게 된다.
작가의 이와 같은 자전적 소설들 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아마도 한때 책읽기 운동을 주도했던 'MBC 느낌표' 선정도서였으며, 동화책으로도 출간된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아닐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속 '여리고 섬세한 나의 오빠'가 <부처님 근처>의 직접 배경이 되는 '반동으로 몰려 눈 앞에서 처참하게 죽어간 그 오빠'다.
마흔 살에 작가가 된 고 박완서. 20년 동안 친척들에게조차 꽁꽁 감춰야만 했던 비밀인 오빠와 아버지의 죽음을 세상에 떠벌림으로써 조금 편안해진 화자인 나. 작가는 가족의 죽음 때문에 상처 받은 두 여인의 처절한 몸부림과 고통 그 피폐한 모습을,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을 <부처님 근처>를 통해 담담하게 풀어 놓는다. 작가의 고통이기도 한 그 고통이 어찌나 절절하게 와 닿던지 '작가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도 미쳐버렸거나 지독한 우울증으로 온전한 삶을 살 수 없었을 수도 있었겠다'와 같은 일종의 연민까지 들 정도였다.
또한, <현대문학>을 통해 <부처님 근처>를 먼저 읽고 나중에 다른 작품들을 읽은 사람들은 박완서의 작품들을 일반 독자들보다 훨씬 절절하게 만났을지도 모른다는 부러움마저 턱없이 하게 한 소설이기도 하다. <부처님 근처>를 읽은 지금 오래전에 읽은(아마도 1993년쯤에)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다시 읽으면 어떨까?와 함께.
<부처님 근처>를 표제로 삼은 최초 출간인 이 책에는 11살 철부지에게 시집 간 17살 새색시가 첫날밤에 바지에 똥을 싼 신랑 덕분(?)에 시댁과 그릇된 풍습에 통쾌한 펀치를 날리는 <찌랍디다>도 실렸는데, 우리 옛 여인들의 애환과 슬기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자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이야기로 재미있고 유쾌하다.
부처님 근처
박완서 지음, 조문현 그림,
가교(가교출판),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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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박완서, 작가가 안 됐다면 우울증에 걸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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