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생머리를 자르겠다고 하는 딸 아이. 결국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김동수
집에 돌아오니 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아빠 저 머리카락 자르고 싶어요'라는 말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더 이상 어쩔 수 없었습니다.
"예쁜 아이. 머리카락 자르고 싶은대로 해.""괜찮아요.""괜찮아? 정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아빠, 정말 잘라도 돼요?""응."딸 아이는 부리나케 미용실로 달려갔습니다. 울먹이는 딸 앞에 딸 바보 아빠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솔직히 다른 것도 비슷합니다. 이상하게 딸 아이는 왠지 더 사랑하고 싶고, 더 챙겨주고 싶고, 더 잘해주고 싶습니다. 큰 아이와 막둥이는 매몰차게 혼낼 때도 있지만, 딸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빠들은 왜 딸에게 이렇게 약한 것일까요? 딸에게 한 번씩 이런 말을 합니다.
"서헌아!"
"아빠 왜 불렀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식에 신부와 신랑이 손을 같이 잡고 들어가지만 아빠는 꼭 너를 데리고 들어갈 거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당연하지. 우리 예쁜이가 아빠 곁을 떠나 다른 사람 품으로 가는데 마지막 그 길을 아빠가 보내주고 싶기 때문이야. 아빠 사랑이 남편에게 이어지기를 바라기 때문이지."그러면 딸 아이는 얼굴이 함박웃음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아려옵니다. 아직 중학교 1학년 밖에 안 됐는데, 20년 후가 될지도 모르는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이상ㅇ해집니다. 정말 딸 바보가 맞는 것 같습니다. 아무튼 예쁘고, 착하고, 의롭고, 거룩하게 자라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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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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