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22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2012년 체제, 이명박 이후를 준비하자'를 주제로 10만인클럽 특강을 하고 있다.
권우성
"내가 조중동 사주라면, 요새 잠이 안올 것이다."
진보진영의 원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74)의 말이다. 그는 22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오마이뉴스> 창간 12주년 기념 10만인클럽 특강을 가졌다.
백낙청 교수는 특히 종편 이후 조중동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조중동은) 종편을 받기 위해 안면몰수하고 정권에 아부하는 등 온갖 추한 짓을 다했다"며 "(이제 와서) 신문의 영향력도 줄고 종편도 어떻게 될지 모르게 됐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정권도 특유의 단기차익만 노린 나머지 (조중동이) 욕을 못하게 하려다 보니까 (종편을) 다 줬다"며 "도와주려면 욕을 먹더라도 한두 개로 몰아줬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받은 사람(조중동)도 속이 부글부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 바꾸는 데 만족하지 말고 세상을 확 바꿔보자"백낙청 교수는 최근 <2013년체제 만들기>란 책을 냈다. 2012년체제도 아니고 2013년체제? 그의 말에 따르면 "200페이지도 안 되는 얇은 책이지만 내가 낸 책 중 가장 도전적"이란다.
책이 나오자마자 진보진영에서는 토론회를 연일 개최하며 87년 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사회체제로서의 2013년 체제를 모색해나가고 있으나, 보수진영에서는 백 교수의 주장을 진보 집권을 위한 노회한 논객의 '꼼수'정도로 깎아내리고 있다.
그럼 백낙청 교수는 왜 '2013년 체제'를 주장하는 것일까?
"2013년이면 이명박 대통령 임기가 끝나고 새 대통령이 취임하는 해이다. 이때 대통령이 바뀌고 정부가 바뀌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세상을 한번 확 바꿔보자는 것이다. 시대의 전환을 꾀해보는 것이다."
그는 이어 "'체제'라는 말은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단어는 아니지만 이미 '87년체제'라는 말이 있고 앞날을 도모하자는 것이라서 2013체제라고 했다"고 부연했다.
백 교수는 "2013년체제를 제대로 하느냐 마느냐는 것은 금년 선거에 달렸으며, 양대 선거 중 사실 4월 총선에서 판가름이 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 이유로 "2012년은 총선이 대선보다 불과 8개월 앞에 오는 특별한 해"라며 "총선 이후 한참 있다가 대선이 있으면 '다수당으로 뽑아줬는데 하는 일이 맘에 안들더라'며 대선에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데, 간격이 좁으면 '대선 땐 (총선과 달리) 따로 뽑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느냐'고 하는 국민 심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더 중요한 것은 만약에 야당이 19대 국회에서 다수당이 되면 헌정 사상 없던 사태가 벌어진다"며 그 이유로 "잔뜩 쌓인 (현 정권의) 의혹 사건, 비리 사건을 다음 국회에서 파헤치면 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다음 여당 대통령 후보를 꿈꾸는 사람도 걷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래서 "야권이 총선에서 확실한 승리를 하면 대선 이기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야당이 다수당 되면 헌정 사상 없던 사태가 발생"백 교수는 또 "이번 총선에서 남북관계나 평화문제가 그렇게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는 않을 것 같다"면서도 "그러나 12월 대선과 특히 2013년체제의 성패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고 전망함으로써 남북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는 "남북관계는 남한 내부의 정치권력의 추세, 권력다툼, 권력 균형을 좌우하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핵심문제"라며 "남북관계가 나쁘면 나쁠수록 수구세력은 기득권 지키기가 편리하지만, 반면에 개선되면 기득권에 대한 위협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기득권에 대해 비판할 때 남북관계가 나쁘면, '넌 친북좌파, 빨갱이가 아니냐. 평양에나 가라'는 소릴 들을 것이다. 지금도 복지, 민주주의, 언론자유 등 싸움을 하다가 어느 단계에 가면 반드시 나오는 소리가 '저건 좌빨 친북세력이 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관계에서 남북관계가 핵심이다."백 교수는 "87년 체제는 군사쿠데타 정권은 끝냈지만, 한국전쟁이 끝나고 53년 휴전협정 이후 지속된 불안정한 상태를 바꾸지 못했다"며 "2013년체제의 첫 과제는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는 것이며, 그래야 복지, 양성평등도 제대로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분단체제와 국보법은 수구세력의 꿀단지"그는 특히 분단체제와 국가보안법에 대해 '수구세력의 꿀단지' '전가의 보도'라고 지칭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남북관계는 2013년 체제 하에서 '남북연합'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 5·24조치 때문에 예전에 해오던 남북교류도 거의 못하고 있는 판국에 꿈같은 소리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면서도 "그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다른 문제들보다 반드시 더 어려운 문제도 아니다"고 낙관했다.
그는 2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북미 3차회담을 거론하면서 "이미 김정일 사망 전 어느 정도 타결됐기 때문에 곧 6자회담과 핵시설 불능화로 돌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전제하고 만약 핵협상이 끝나고 더 이상 흥정거리가 없어질 경우 북한은 불안을 해소할 관리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국가연합'이라는 것.
그는 한편 7.4공동성명과 6.15-10.4공동선언을 차례로 열거하고 "앞선 공동선언들은 국민들의 힘으로 민주화를 이루고 정권교체를 해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시민참여형 통일'을 역설하고, "대북정책이 잘못됐다는 지적에 꿈쩍도 하지 않는 현 정권을 국민이 나서서 갈아치운다면 시민들의 큰 승리이미 이정표일 것"이라고 말했다.
백낙청 교수는 마지막으로, 책의 '색인'에 천안함 사건이 유독 많이 나오는 이유에 대해 "천안함 사건은 남북관계 이전에 남한 민주주의, 법치주의의 문제"라며 "이것을 제대로 밝혀내면 남북관계도 풀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핵심고리가 아닌가 한다"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내가 낸 책 중에는 잘 나가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