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남이가? '남' 맞다!

[서평] 에릭 호퍼의 <맹신자들>

등록 2012.02.25 19:01수정 2012.02.25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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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에릭 호퍼 저 <맹신자들>

에릭 호퍼 저 <맹신자들> ⓒ 궁리

에릭 호퍼 저 <맹신자들> ⓒ 궁리

2012년은 '선거의 해'다. 변화의 기로에 놓인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지을 두 차례의 큰 선거가 연달아 치러지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고 올해의 선거들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루어보고자 하는 열정 역시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해 보인다.

 

하지만 과연 '진정한 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을 지는 좀 더 지켜보아야 할 문제다. 한국 정치의 문제이자 궁극적으로는 '민주주의의 허점'이라고 할 수 있는 '극단의 정치'가 이번에도 형성되려 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네 편 아니면 내 편'이라든가 '우리가 남이가'라는 식으로 대변되는 패거리 중심의 배타적, 극단적 정치 문화는 2012년 주어진 두 차례의 선거에서 국민들이 갈망하는 진정한 '정치적 혁신'을 위해 반드시 넘어서야 하는 산인 것이다.

 

무엇이 '맹신'을 만들어내는가 

 

20세기 부두노동자 출신의 천재적 사회심리학자 에릭 호퍼가 저술한 <맹신자들>은 우리가 넘어서야 하는 바로 그 '산'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전체주의, 그리고 이 뒤에 오는 허무주의 등 당시의 극단적 사회심리에 주목한 저자는 무엇이 대중을 이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광신'의 길로 빠지게 만드는지 객관적으로 분석해낸다.

 

치솟는 혁명운동에 가담하는 많은 이가 자신들의 삶의 조건이 순식간에 극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전망에 이끌리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중략) 대중운동의 가장 강력한 매력의 하나는 그것이 개인적인 희망을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매력은 특히나 진보라는 신념에 고취된 사회에서 힘을 발휘한다.

 

그렇다. 표출되는 명분이나 이상은 각기 다를지 몰라도 본질적으로 '광신주의'로 대중을 이끄는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변화에 대한 갈망'인 셈이다. 이것이 나아가서 배타적 집단을 구성해내고 극단적인 정치 문화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이 시대적 상황과 맞물리며 20세기 초, 나아가 현대 사회의 비극을 낳은 것이다.

 

실제 한국 정치 역시 김대중, 박정희, 노무현 등의 특정 인물을 향한 강력한 맹신으로 구성되어 흘러온 측면이 크다. 혼란스러운 사회 현실 속에 이들 특정 인물들과 그들의 구호를 중심으로 대중이 각기 뭉친 결과이다. 이것이 사회 혼란이 끝나고 성숙된 민주주의를 낳아야 할 시점에 와서도 계속 유지되고 있기에 정치권이 답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남'이 아니면? 다 죽습니다

 

양대 선거를 앞둔 지금까지도 집단 선거문화가 사라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의 특정 대권주자나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등의 한국 정치사의 거목들을 중심으로 '맹목주의'에 빠져 있는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증오는 모든 단결의 동인 중에서 가장 흔하고 포괄적인 요소다. (중략) 대중운동이 시작되고 전파되려면 신에 대한 믿음은 없어도 되지만 악마에 대한 믿음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정치문화의 문제점은 '공존의 어려움'이다. 배타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극단주의이기에 다른 정치세력을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고 그들의 법안들에 대해서도 '맹목적 비토'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이다.

 

나는 독일인이다, 러시아인이다, 일본인이다, 기독교인이다, 이슬람교인이다 (중략) 혹은 어느 부족 혹은 아무개 집안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속한 집단과 떨어져서는 어떤 목적도, 가치도, 운명도 없으며 그 집단이 존속하는 한 결코 죽을 수 없는 존재다.

 

하지만 결국 이는 타인뿐 아니라 자신들에게도 심각한 문제를 낳게 한다. 소속 정당 및 정치세력과의 무조건적 일체화는 본연의 정체성이나 사고 등을 말살시키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결국 맹목주의 정치 문화를 버리지 않는 이상 한국 정치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적 의회 운영이 전혀 불가능한, '다 죽는' 상황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라는 배타적 구호는 실상 엄청난 문제인 것이다.

 

2012년, 새로운 정치를 위하여

 

그렇기에 올해의 선거들을 시작으로 변화 역시 시작되어야만 한다. 특정 패러다임에 갇혀 버린 '맹신주의' 에서 벗어나 올바른 이성적 판단에 기초한 정치 참여 풍토가 이루어질 때 만 한국정치가 진정한 '변화'의 길로 접어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그 어느 때보다 유권자들의 역할이 소중할 수 밖에 없다.

덧붙이는 글 <맹신자들> 에릭 호퍼 씀, 이민아 옮김, 궁리 펴냄, 2011년 9월, 256쪽, 1만3000원

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궁리, 2011


#에릭호퍼 #서평 #맹신자들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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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시민기자. 서울대 로스쿨 졸업. 다양한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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