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쌀국수.
조을영
한편으로 국수는 먹는 것 이상으로 다층적인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다. 국수가 멋들어지게 표현된 왕가위 감독의 영화 <화양연화>를 보면 그런 점이 잘 드러난다. 영화 속 시간인 홍콩의 1960년대는 2차 대전 후에 최고의 현대화가 도래한 시기로서, 국수는 그런 바쁜 도시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패스트푸드의 기능을 했다.
영화에서 장만옥은 퇴근 후 대충 때울 저녁거리인 국수를 사러 매일 시장통으로 내려간다. 멋들어진 치파오를 입고 하이힐을 신은 그대로 좁고 어둠침침한 계단을 내려가서 복잡한 시장통에서 사 온 국수를 간단히 먹고, 외로움과 더불어 하루를 마감한다. 그리고 그녀가 즐기는 국수는 어느덧 양조위와의 사랑으로 연결된다. 현대화와 서구의 물결이 급속도로 파고드는 그 시절의 바쁘고도 역동적인 분위기를 뚫고, 국수는 하나의 방점을 찍는 이미지로 영화 속에 부드럽게 버무려진 셈이다.
누구에게나 친근한 음식 국수지만 그 여세가 만만치가 않다. 라면과 더불어 현대인에게 익숙한 패스트푸드 중 하나로 당당히 이름을 올려서 세계화 음식으로 등극한 것이다. 더욱이 베트남 쌀국수인 포가 오늘날 이 나라를 상징하는 음식이 된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 이것은 근래에 만들어진 퓨전식이란 점에서 특이점을 찾을 수 있다.
베트남인들이 오래전부터 국수를 먹긴 했지만, 프랑스 식민지 시절을 통해 소고기를 먹게 되면서 지금의 베트남 쌀국수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는 사실이 이 같은 점을 잘 말해준다. 음식이란 것이 반드시 정통만을 고집해서 세계화의 산물이 되는 것만은 아님을 이를 통해 알게 된다.
우리에게도 국수는 매우 각별한 음식이다. 결혼식에 먹는 국수, 열차가 막 떠나려 할 때 화다닥 내려서 한 그릇 먹는 우동 등 이럴 때 국수가 딱 제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