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샌프란, 산호세, 프레즈노 한인들, 이민선조 고향을 찾아 캘리포니아 한인들이 '뿌리' 장소인 리들리, 다뉴바 시를 찾았다
LA이글포토 사진동호회 제공
차만재 회장은 "1903년 1월 13일 하와이에 첫발을 내딘 한인 이민 선조들은 노동계약이 끝난 1905년 5월부터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리들리, 다뉴바시로 새 도전에 나섰다"며 "당시 힘센 장정들은 탄광과 철도 현장으로, 농사일이 익숙한 분들은 리들리, 다뉴바, 리버사이드에 정착했다"고 설명했다.
다뉴바시는 지난해 한인들이 장로교회 터와 3.1절 행진거리에 세운 기념비를 '다뉴바시의 영원한 역사기념물'로 지정했다. 마이크 스미스 시장은 "모든 시민을 대신해 환영한다"며 "우리 시가 한인들의 뿌리 현장인 것이 자랑스럽고 그 '기억'을 영원히 지켜갈 것"이라고 말했다. 차만재 박사는 "100년 전 한인들은 농사꾼으로 각종 인종차별을 견디며 악착같이 일했다"며 "이제는 리들리시와 다뉴바시가 그분들 역사를 자랑스러운 시의 역사로 기념한다"고 반겼다.
우리는 일본인이 아니다 1920년 3월 1일, 중가주 다뉴바(Dinuba)시에는 아침까지 비가 내렸다. 한인장로교회(204 N O st, Dinuba)에 모인 300여 명의 한인 이민선조들은 비가와도 3.1절 독립운동 1주년 기념 행진을 강행하기로 했다. 그 시각 윌로우스 한인 전투비행사 양성소를 떠난 이용선 비행사는 폭우를 뚫고 프레즈노까지 날아오고 있었다.
한인 남성 노동자들은 모처럼 '양장'을 차려입고, 한복을 입은 아낙들은 자녀들과 행진 대열에 섰다. 한인 300여 명은 고된 노동으로 번 돈을 십시일반 모아 기마대와 차량 20여대를 동원했다. (당시 이민 선조들은 급여의 10분의 1을 독립자금으로 모았다. 3.1절 기념행진 당시 1000달러를 모금하기도...)
향후 독립군을 지원하기 위한 간호사들은 대형 태극기를 들고 행진 대열을 이끌었고 이민 선조들은 다뉴바시 메인거리 L 스트릿 약 1마일을 행진했다. 이들은 매년 3.1절을 기념하며 미국인들이 일본인과 동일시할 때면 끔찍이 싫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