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사회교과서에 실린 청소년 노동 관련 내용. 이 교과서에서 노동을 다루는 것은 사진의 <과제2>가 전부이지만 해당 내용과 관련한 설명은 단원 본문에 나와 있지 않다.
최지용
"과제 2 : <자료 2>와 같이 청소년의 노동 인권이 침해된 경우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는지 조사해 보자." 중학교 <사회1>(지학사, 이진석 외) 교과서 '인권 의식의 성장과 헌법'이란 제목의 소단원에 나오는 내용이다. 이 책에서 '노동'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건 이게 전부다. 또 과제가 주어진 만큼 해당 단원에서 관련한 내용이 있어야 하지만 <자료2>에 등장하는 사례는 이 단원에서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임금 체납이 왜 노동인권 침해인지, 최저임금제도는 어떤 취지로 만들어졌는지 설명하지 않고, 단지 구제 방법을 '조사하라'는 과제만 던지고 있다.
사회교과목 교과서, 노동 다룬 내용 1%도 안돼<오마이뉴스>는 사회 관련 과목 교과서를 다양한 각도로 분석해 제도권 교육과정에서 '노동 교육'의 현 주소를 확인해 봤다. 2012년 1학기 시중에 출판된 사회교과목 교과서 62권을 모두 조사한 결과 총 1만7260쪽 분량 가운데 노동을 다룬 내용은 159쪽으로 전체의 1%도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에는 위에 예를 든 사례처럼 별다른 설명 없이 '노동'이라는 단어만 나오거나 관련된 내용이 아주 일부분인 경우도 포함돼 있다. 또 대부분의 과목이 선택과목이라 실질적으로 교과서에 '노동'을 배울 수 있는 분량은 더 적다. '노동'을 단원으로 다룬 사례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고 대개는 '시민의식', '인권', '경제주체' 등을 배우면서 언급되는 수준이었다.
반면 시장경제에서 자본이나 기업의 역할과 권한을 다룬 내용은 전체 700여 쪽으로 교과서의 4% 가량을 채우고 있다. 단순 비교만으로도 교과서 분량에서 4배 차이가 나는 것이다. 노동과 시장(또는 기업)이 대립되는 개념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이러한 교과서 상의 비중차이는 사회 인식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기업과 사용자(자본가)는 그 중요성이 부각되는 반면 노동과 노동자는 그 가치와 권리에 비해 의무나 권한 행사 시 부작용이 강조되는 상황이다. 특히 노동조합의 경우 그 구성의 정당성이나 법적근거를 명시한 교과서는 단 3권뿐이었다.
이러한 현황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미래에 임금노동자가 되는 상황에서 상당히 모순이라는 지적이 노동계와 전문가들 사이에 있어왔다. 현재의 교과과정에서는 학생 자신들이 앞으로 누려야 할 권리를 충분히 배우지 못하고 오히려 그에 반하는 의식을 더 많이 익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는 중학교 <사회1>·<사회3>, 고등학교 <사회>·<정치>·<경제>·<사회·문화>·<법과 사회>·<법과 정치>·<생활과 윤리>·<상업경제>등 2012년 1학기 검증교과서를 대상으로 진행했다. 해당 과목 교과서 총 63권 가운데 중학교 <사회3>(금성출판사, 서태열)은 시중 서점에서 구하지 못해 제외됐다.
또 실업계 교과인 <기업경영>은 기술가정과목으로 분류돼 있어 이번 조사에서 빠졌다. 중학교 <사회1, 2>, 고등학교 <사회>를 제외한 나머지 과목은 모두 선택과목이다.
'노동'은 기업 활동에 종속된 요소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