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제주 7대 경관 투표는 무늬만 '국제전화'

'001 번호' 유지하려 해외 서버 '꼼수'... 수백 억 혈세 낭비 불러

등록 2012.03.13 11:09수정 2012.03.20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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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석채 KT 회장과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지난해 4월 26일 제주도청에서 열린 사업 협약식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시 KT는 세계7대자연경관 투표를 위한 자체 시스템을 만들면서 001 식별번호를 그대로 유지하려 서버를 해외에 두는 무리수를 뒀다.

이석채 KT 회장과 우근민 제주도지사가 지난해 4월 26일 제주도청에서 열린 사업 협약식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당시 KT는 세계7대자연경관 투표를 위한 자체 시스템을 만들면서 001 식별번호를 그대로 유지하려 서버를 해외에 두는 무리수를 뒀다. ⓒ 김시연


KT 국제전화 식별번호인 '001'로 시작하는 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 전화가 사실상 '국내전화'였다는 의혹이 결국 사실로 드러났다. KT는 자체 투표 시스템을 구축하고도 001 번호를 계속 유지하려 서버만 해외에 두는 '꼼수'를 둔 것이다.

KT "국제망 이용했지만 일반적 국제전화는 아냐"

KT는 12일 <한겨레>에 보낸 답변 자료에서 "인접국에 투표 서버를 두고 국제망을 이용해 투표를 진행했다"면서도 "해당국 교환기를 거쳐서 특정 번호에 연결되는 국제전화 방식은 아니었다"라고 밝혔다. 서버만 해외에 뒀을 뿐 KT 전용망을 이용했기 때문에 사실상 국내전화와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7대 경관 전화 투표에 사용된 '001-1588-7715'는 애초 영국 투표지와 연결하는 '001-44-758-900-1290'의 단축 번호였다. 하지만 KT가 지난해 4월 1일 국내 전화 투표만 따로 '집계'하는 전용 서버를 만들어 '국제 전화' 연결이 필요 없어진 뒤에도 001 식별번호를 계속 유지했다. 오히려 전화 요금은 건당 144원에서 180원으로 올렸고 문자메시지 요금도 국제문자메시지 요금 100원보다 비싼 150원을 적용했다.

KT 홍보팀 관계자는 13일 <오마이뉴스> 통화에서 "통상적으로 집계되는 국제전화는 아니지만 국제망을 이용한 건 맞다"면서 "제주도와 범국민추진위에서 기존 투표 번호를 계속 유지해 달라고 요청해 001 식별번호를 계속 유지하려 해외에 서버를 두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요금에 대해서는 "초기 국제전화요금이 건당 1500원이었던 데 비하면 많이 내린 것"이라면서 "(가격이 오른 것은) 뉴세븐원더스 서버 대신 자체 서버 구축에 들어간 비용 때문"이라고 밝혔다. 

사설 기관인 뉴세븐원더스재단(N7W)이 주최하는 '세계7대자연경관' 투표는 단체 실체가 불분명한 데다 각 후보 국가 통신사에서 투표수를 자체 집계하는 것으로 밝혀져 투표 공정성도 도마에 올랐다. 더구나 이 단체 주 수입원이 유료 전화 투표에 들어가는 통화료로 알려지면서 7대 경관 투표에 올인했던 제주도와 정운찬 전 총리가 위원장을 맡은 범국민추진위 입지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실제 지금까지 공개된 제주도 차원의 '국제전화투표' 건 수만 1억 통이 넘고 행정 전화비가 211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됐다. 문제가 되자 KT는 지난 2월 전화투표 수익금 41억 원을 제주도에 돌려주기로 했다. 실체가 불분명한 '인기 투표'에 수백억 원에 이르는 혈세가 사용된 것이다. 하지만 전체 전화투표 수익금 25%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돈은 이미 KT를 통해 뉴세븐원더스재단에 전달됐다.


"후보국 가운데 한국만 국제전화 식별번호 사용"

a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작업을 진행하는 스위스의 뉴세븐원더스재단 설립자 버나드 웨버 이사장(가운데), 장폴 이사와 양영근 제주관광공사 사장이 지난 1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에서 제주도 선정과 관련한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세계7대자연경관 선정 작업을 진행하는 스위스의 뉴세븐원더스재단 설립자 버나드 웨버 이사장(가운데), 장폴 이사와 양영근 제주관광공사 사장이 지난 1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관광공사에서 제주도 선정과 관련한 의혹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세계 7대자연경관 투표 방식은 뉴세븐원더스 홈페이지를 이용한 무료 인터넷 투표와 국제전화·문자투표(인터내셔널 보팅), 국내전화·문자투표(내셔널 보팅) 등 3가지다. 현재 한국은 베트남, 필리핀,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들 다른 후보국들과 마찬가지로 '내셔널 보팅'으로 분류되지만 다른 나라는 모두 국내전화 회선을 사용하는 반면 한국만 유일하게 국제전화 식별번호인 001을 사용해 의혹을 낳았다.


시민단체와 언론을 통해 전화투표가 국제전화가 아니라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지만 KT는 '국제전화'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뉴세븐원더스재단 설립자인 버나드 웨버는 지난 1월 26일 <오마이뉴스> 단독 인터뷰에서 'KT는 국제전화가 아니라는 얘기인가?'라는 질문에 "국제전화 라인으로 세팅은 했는데 다른 나라는 걸지 못하고 한국에서만 걸기 때문에 '내셔널보팅'이라고 한다"고 '국내전화'임을 분명히 했다(관련기사: "세금으로 전화투표했단 얘기 처음 듣는다" ).

지난달 29일 방영된 KBS <추적60분>에서도 7대 경관 국제전화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쳤지만 KT는 "국제전화망을 이용한 투표시스템"이라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우근민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지난해 4월 26일 제주에서 열린 제주도-KT 업무 협약식에서 "KT가 국제전화번호를 단축하고 요금을 싸게 하는 등 7대 경관 선정 투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추켜세웠고 이석채 KT 회장 역시 "7대 경관 선정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수백 억 혈세를 들인 제주 7대 경관 투표의 허상이 속속 드러나면서 KT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뉴세븐원더스 #세계7대자연경관 #제주 #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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