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 태안 읍내 한 곳태안읍 동문리의 한 부분 같은데, 아무리 보아도 지금의 어느 곳인지를 알 수가 없다.
지요하
한 번은 우리 집 모퉁이 깊은 구석의 덫에 걸린 왕쥐를 잡은 적이 있습니다. 찍찍 소리가 나서 들어가 보니 커다란 쥐가 덫에 걸렸는데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고 있었습니다. 덫에 정통으로 걸리면 단박 숨이 끊어지기도 하는데, 워낙 큰 놈인 데다가 정통으로 걸리지 않았는지 숨이 오래갈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순간 불쌍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하게 두려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다음 순간 쥐약 먹고 죽은 우리 집 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집 개가 죽은 것은 쥐약 때문이었고, 모든 원인은 쥐에게 있음을 되새기자니 다시금 증오심이 끓어오르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절굿대를 찾아가지고 들어가서 메주를 찧듯이 내리찍어서 왕쥐를 죽여 버렸습니다. 그리고 왕쥐를 물고 있는 덫을 들고 나오긴 했는데, 역시 꼬리 자르는 일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토방 한쪽에 그대로 두었더니 저녁때 귀가하신 아버지가 그 일을 해주었습니다.
쥐잡기 운동 초기,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쥐꼬리를 잘라 오라는 숙제를 내주었을 때의 일 한 가지가 떠오릅니다. 그때는 '국사'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거의 매일 한 시간씩 국사 공부를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국사 시간이 내게는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내 중학생 시절, 국사 과목 선생님의 모습을 잘 기억합니다. 죄송스럽게도 함자를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안(安)씨 성을 가지셨던 분이고, 키가 크고 안경을 쓰신 분이셨지요. 가끔은 허리가 아프신지 열강을 하시다가도 의자에 앉아 허리를 두드리시기도 하는 연로한 분이었는데, 한 번은 교실로 들어오는 교장 선생님을 보고 그 선생님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자 교장 선생님이 미안한 듯 그냥 앉아 계시라고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교장 선생님도 그 선생님을 어려워하신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쥐꼬리를 잘라오는 일이 어렵지 않으냐고 물으셨던 것 같습니다. 일부 학생들이 어려움을 토로하며 불평도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대로 그 일이 재미있다며 괜히 과장하여 신바람을 내는 녀석들도 있었지요.
잠시 후 선생님이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쥐 상 도요토미 히데요시 생각하며 숙제하니 한결 수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