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고 있는 사실 그대로를 보도하면서, 양쪽의 입장이나 이해를 균형 있게 대변해주는 것이 저희가 생각하는 공정보도입니다. 이를 추구하자는 차원에서 조합원들이 일어선 것입니다."
연합뉴스가 15일 오전 6시부터 총파업에 들어간다. 이번 파업은 1989년 편집국장 복수추천제를 주장하며 파업을 벌인 지 23년 만이다. 연합뉴스 노동조합이 대표적으로 내건 목표는 '박정찬 사장 연임 반대'다. "박정찬 사장 취임 이후 근로여건 악화, 정권 편향적 불공정 보도, 사내 민주주의 퇴보, 인사 전횡을 겪어왔다"는 것이 그 이유다.
파업 전야, 서울 중구 수하동 연합뉴스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마주앉은 정성호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 사무국장은 '공정보도'라 말하는 음절 하나 하나에 힘을 실었다.
"파업 돌입 과정, 순간순간이 놀라운 발견의 연속"
정성호 사무국장은 파업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을 "놀라운 발견의 연속"이라고 표현했다. "모든 사태의 출발점은 지난 해 12월 노조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낸 것"이라고 운을 뗀 정 국장은 "노조도 예상을 못 했는데, 그 이후 맨 아래 후배기수가 '지지하고 동감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고 이것이 선배 기수로 번져나갔다"고 했다.
이례적인 연쇄 성명에 이어, 노조 주최로 진행한 경영진 평가 설문조사에서도 71.7%의 조합원이 현 경영진의 연임에 반대한다는 뜻을 나타냈다. 정 국장은 "(결과를 보고) 노조도 이러한 의사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것이 1인 시위와 연가투쟁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정 국장은 "연가투쟁 당시 많이 참여하면 100명에서 150명 정도 (조합원이) 참여할 거라 생각했는데, 240여 명이 참여했다"며 "이 정도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많더라는 걸 확인했다, 노조도 놀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연가투쟁은 2월 27일부터 3월 2일까지 이어졌고, 이러한 내부의 반대에도 29일 연합뉴스의 대주주인 뉴스통신진흥회는 이사회를 열고 박정찬 현 사장을 차기 사장 후보로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결국 노조는 총회를 열고 총파업을 결의하게 됐다. 그리고 3월 7일부터 13일까지, 조합원을 대상으로 총파업 투표를 진행했다. 그리고 얻은 총 투표율 93.45%, 찬성률 84.08%라는 결과는 "'입이 딱 벌어진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정 국장은 "결의는 했지만 (노조) 내부에서는 얼마만큼의 찬성률이 나올지도 불안했는데, 경이로운 결과였다"며 "이 모든 과정들이 (연합뉴스) 구성원들이 '공정보도'와 '박정찬 사장 연임 반대'에 대한 공감대가 컸다는 걸 순간순간 확인하는 놀라운 발견의 연속이었다"고 말했다.
"언론으로서의 기본 자체 저버린 수준의 기사 여럿 나가기도"
이토록 이들이 '박정찬 사장 연임 반대'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정성호 사무국장은 "현 경영진이 들어서면서 보도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았고, 사내 민주주의도 퇴행했다"고 지적했다. 노조가 지난 2월 발행한 노보에서도 "부서 간, 상하 간 소통이 원활하지 않다" "언론의 사명감을 가져라" "박정찬 체제의 연합뉴스는 MB정권의 축소판" 등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찾아볼 수 있다.
정 국장은 '공정보도 훼손'의 사례로 노조가 3월 들어 발행해 온 특보를 통해 지적한 것을 언급했다. 정 국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 과정과, 서거 정국에서 특정 정파나 세력의 목소리만을 담는 기사들이 많이 나왔다"며 "이런 것들에 대해 내부적으로 보도 방향에 대한 통제와 지시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국장은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가 검찰로부터 뇌물수수 혐의로 수사를 받을 때에도, 검찰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대변하고 혐의를 기정사실화한 상태에서 (연합뉴스가) 기사를 썼다"고 말했다.
"언론인의 시각에서 누가 봐도 '이건 지나치게 과하다, 편파적이다'라 할 만한, 언론으로서의 기본 자체를 저버린 수준의 기사가 여럿 송고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현장기자들이 불만을 표시하면서 실명으로 나가야 할 기사가 '법조팀'이라는 익명으로도 나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박정찬 사장의)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해 특정 인물과 관련된 기사를 쓰지 말 것을 주문하는 등 전혀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상명하달식 사내 문화가 생겨났습니다. (이번 파업은) 이런 것들에 대한 불만이 쌓였다가 분출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2009년 취임한 박정찬 사장은 34년간 연합뉴스에 몸담아온 기자 출신이다. 그런 그의 체제 아래서 '특정 세력의 목소리'가 더욱 많이 담기게 된 이유를 묻자 정 국장은 "짐작을 해 보자면 박 사장이 그렇게 하는 것이 회사에 도움이 되는 길이라 나름대로 판단한 것 같다"고 추측했다.
이어 그는 "당장은 수익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언론사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공정성·객관성·균형성 같은 가치와 맞바꿀 수는 없다"며 "연합뉴스는 뉴스소비시장에서 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어 왔고, '연합 찌라시'라는 표현에 집약된 것처럼 언론사로서 '사망선고'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정 국장은 보도채널인 '뉴스 Y'가 개국되는 과정도 연합뉴스의 '상명하달식'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연합뉴스가 보도채널에 진출할 것인가'를 두고 구성원들의 의견 수렴 과정이 없었다"며 "중간에 사원 설명회를 열고 구성원들에게 의견을 내보라고는 했지만, 사실상 회사가 일방적으로 정한 일정과 입장을 설명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남 따라하는 투쟁 아니야...절박한 문제의식 갖고 싸우는 것"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는 생산한 기사를 한국의 각종 신문·방송사와 정부 부처, 주요 기관, 기업체 등과 해외 계약 매체에 공급한다. 오는 26일·27일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의 주관통신사이기도 하다. 현재 연합뉴스 노동조합에 가입한 이는 520여 명. 총파업 투표 당시 제적인원인 504명보다 늘었다. 정성호 국장은 "남은 인력들이 기사 서비스를 하겠지만, 절대다수의 인력이 빠지면 아무래도 업무가 어려워질 것"이라 예상했다.
연합뉴스뿐만 아니라 MBC·KBS·YTN과 같은 방송사에 신문사인 국민일보까지, 이미 많은 언론사가 '투쟁'을 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일각에서는 연합뉴스의 파업을 두고 '너무 늦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에 대해 정 국장은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이해를 바라는 부분도 있다"며 입을 열었다.
"먼저 박정찬 사장의 연임이 유력해 보이는 와중에 이를 반대하는 것은 인사권을 틀어쥘 이에게 '그만두라'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점을 놓고 보자면 저희는 남들을 따라하는 것이라기보단 나름의 절박한 문제의식을 갖고, 피해를 감수하고 싸우는 겁니다. 또한 공정보도에 관한 문제는 꾸준히 내부에서 문제제기를 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밖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죠."
언론계의 동시다발적인 파업을 '총선을 앞두고 일어나는 정치적 파업'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정 국장은 "연합뉴스 파업은 외부 변수를 감안하지 않고 진행해온 것"이라며 "우리 스스로 놀랐다는 표현을 한 것에 비춰볼 때도, 계획된 청사진을 갖고 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박정찬 현 사장이 차기 사장 후보로 추천된 상태이긴 하나, 오는 27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최종적으로 이를 승인하는 절차가 남았다. 연합뉴스 노동조합은 일단 '연임 저지'를 목표로 하되, 주주총회에서 박 사장이 낙점될 경우 '퇴진 요구'를 포함해 또 다른 방향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정 국장은 "조합원의 뜻을 모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파업이 연합뉴스의 공정성이 한 단계 높아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싸움에 대한 두려움도 한편에 있는 게 사실이지만 제가 그려보는 미래의 연합뉴스가 그런 두려움을 상쇄시켜 줄 만큼 좋아 보입니다. 그간 국민들께서도 연합뉴스에 실망하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진통의 과정을 거쳐 새로 거듭날 연합뉴스는 실망과 낙담을 덜 드리는 조직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약속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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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 찌라시'란 말, 사망선고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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