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방해하는 휴대전화... 일괄 관리가 '불법'이라고?

[학생부장 일기 7] 학생인권조례 정착 위한 학생부장 연수 다녀와서

등록 2012.03.18 17:55수정 2012.08.24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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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학생인권조례가 삐걱거린다. 올 초 발효된 학생인권조례를 정착시키기 위한 학생부장 등 담당교사 연수 때마다 항의가 빗발치고 고성이 오가기 일쑤다. 물론, 교육청 장학사들이 일방적으로 지시하면 교사들은 맹목적으로 받아썼던 과거의 방식에 견준다면 나쁠 것 없고 외려 바람직하다고 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인권조례 자체를 탓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사실 시교육청과 일선 교사들의 갈등은 인권조례 때문은 아니다. 연수에 참석한 대부분의 교사들은 조례 제정의 취지와 내용에 공감하고, 현실적 여건 상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다소 있을 뿐 이른바 '대세'라는 점을 인정한다. 정작 문제는 교사들을 배려한 교육청의 정책적 '디테일'이 부족하다는 데에 있다.

교육청, 쌩뚱맞게 세계인권선언으로 인권조례 당위성 읊어

교사들은 하나같이 인권조례 시행에 따른 업무의 과중과 실효성의 부족을 지적하는데, 교육청은 업무의 편중과 과중함에 공감한다면서도 생뚱맞게 세계인권선언과 유엔 아동권리선언 같은 얘기를 들먹이며 인권조례 시행의 당위성만 읊어댄다. 누가 그걸 모르나. 그러다 보니, 교사들의 가슴에 와 닿는 대책이 나올 리 없다.

일례로, 실무자인 학생부장들을 배려한답시고 학기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2월 일선 학교에 뿌린 공문을 보면, 과연 장학사들이 얼마 전까지 학교에 근무했던 교사가 맞나 싶을 정도다. 기실 학교폭력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학교마다 담임과 학생부장을 기피하는 분위기가 역력해 담임수당을 인상하고 학생부장에게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는 취지였을 것이다.

학교에서 출장이 가장 잦다는 학생부장의 수업 결손을 막는다고 특정 요일의 오후 수업을 빼라는 것과, 업무 과중을 보완하기 위해 수업시수를 대폭 줄일 것을 학교에 '권장'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학교마다 교사별 수업시수를 공평하게 배분하기 위한 이른바 '티오'라는 게 있는데, 학년 초 시간표를 짤 때 학생부장이기에 앞서 특정 과목을 가르치는 똑같은 교사일진대 학교가 그들을 배려할 것이라 믿었던 걸까.

과문한 탓인지, 당시 주위에 모여 앉은 십수 명의 학생부장들 중 수업시수를 배려 받았다는 교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면, 결국 특정 요일의 오후 수업을 빼는 통에, 다른 요일의 경우 네다섯 시간 스트레이트로 수업을 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셈이다. 필자의 경우, 수준별 수업 등으로 해당 요일 오후 수업을 뺄 수 없어서, 출장이 잡힌 날은 어쩔 도리 없이 수업 결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래서일까. 적지 않은 학생부장들의 담당 교과목이, 수업 결손의 보강이 비교적 손쉬운, 체육이었다. 연세 지긋하신 어느 분은 학기 초 밀려드는 업무 탓에 지난 주 수업을 불과 몇 시간밖에 들어가지 못했다며, '과연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 맞나' 싶더란다. 뭔가 배려는 해야겠고,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보니 하나마나한 '권장' 공문만 마구 뿌리게 되는 것이다.


장학사, 학생부장 연찬회 계획... 그게 아니잖아

장학사들의 '동문서답'이 계속되고 교사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거세지자, 아니나 다를까 히든카드로 숨겨둔 듯한 '당근'을 꺼냈다. 방학 중 하루 이틀 시간을 내 위로를 겸한 학생부장 연찬회를 계획하고 있다는 거다. 일부에서 나름의 호응을 보였지만, 무슨 시골마을 동네 어르신 효도관광 보내주듯 하는 식상한 그 방식에 어이없었고, 업무 경감 방안을 더 깊이 고민해보지는 않은 채 참석한 교사들 모두를 그렇고 그런 속물로 여기는 것 같아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식상하나마 학생부장들을 위로할 방안을 마련하는 데에는 신경 쓰는 시늉이라도 한다지만, 정작 그들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인권조례를 학교 현장에 정착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마냥 겉돌고 있다. 교사들의 인식과 의지가 부족해서라고 탓하기 어려울 만큼 조악하다.

예컨대, 학교마다의 학생생활규정을 인권조례에 합치하도록 개정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생활규정을 개정하기 위해서는 족히 한두 달은 소요되는 복잡한 절차가 뒤따른다. 생활규정개정위원회를 꾸려야 하고, 학생과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개정 취지와 내용을 소개하고 동의를 얻는 절차를 밟아야 하며, 학교운영위원회에 상정하여 심의 의결한 후, 학교장이 공포한다.

대강의 절차가 그렇다는 거지, 위촉 과정과 준비해야 할 서류와 가정통신문, 회의 자료, 토론과 합의 과정 등을 감안하면 수업이고 뭐고 다 접고 '올인'해야 할 업무다. 그런데, 교육청은 규정된 절차에 따라 5월까지 학교마다 개정을 완료하라고 강조했다. 인권조례의 정착을 위해 빠를수록 좋다는 판단에서다.

교육청이 말한 '절차'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위원회를 꾸리고 학생, 학부모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가 무척 까다로운데, 굳이 이 과정이 필요하냐는 것이다. 의견을 수렴한다고 내용이 바뀔 것도 아닌데, 그냥 생활규정의 세부 내용 중에 어떤 것이 인권조례에 위배되는지를 찾아내 삭제하고 일괄 공지할 수 있게 해달라고 건의했다.

교육청은 그럼에도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교사들의 의견을 일축했다. 대체 그들이 말한 절차란 뭘까. 기껏 모양새를 갖춰달라는 것밖에 달리 해석할 방도가 없다. 그럴 바에야 이참에 학생생활규정을 학교마다 아예 인권조례 조항으로 대체하자는 억지스런 주장이 제기될 만큼 '불통' 상황이 지속되었다.

휴대전화 사용 문제 교육청 지침.. 되레 혼란 부추겨 

 자료사진
자료사진 권우성

이런 문제 제기도 있었다. 휴대전화 소지 및 사용 문제에 대한 교육청 차원의 지침이 되레 일선 학교에 혼란을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인권조례에 위배되지 않는 한 학교가 알아서 하라는 것인데, 인권조례를 보면, 휴대전화를 비롯한 전자기기의 소지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 되지만(12조 6항), 교육활동과 수업권을 보장하기 위해 학생들의 의견을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수렴한 학교 규정을 만들어 규제할 수 있다(15조 3항)고 명시돼 있다.

"아침 등교 직후 아이들의 휴대전화를 일괄 수합하고 하교할 때 나눠주는데, 불법입니까?"
"안 됩니다."
"반 아이들과 학부모들 다수가 동의해서 만든 학급 내 규정인데도 안 됩니까?"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는 있지만, 일괄적으로 모두 내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100% 동의하지 않는다면 학급 내 규정 자체가 있으나마나잖습니까."
"휴대전화를 압수하는 등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방식이 아닌, 교육적 지도나 징계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언뜻 들으면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명쾌한 답변이다. 그러나 질문을 던진 교사는 수업시간 벌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들을 융통성 있게 제어하려다 보면 조례와 일부 충돌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하소연하는 것인데, 마치 내용을 잘 모르거나 조례 제정 자체를 반대하는 교사라며 나무라는 것처럼 들린다.

자녀에게 휴대전화를 마련해 준 학부모들과, 심지어 한시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하는 아이들조차 대부분이 주머니에 들어있으면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공공연히 말하는 마당에 교실에서 소지하지 못하게 하는 게 과연 그들의 명쾌한 답변대로 '불법'일까. 많은 교사들은 차라리 아이들에게 개별 사물함을 마련해주고, 도난을 미연에 예방하기 위한 대책이 훨씬 더 현실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아침마다 아이들의 휴대전화를 수합해 보관하고, 점심시간과 하교 시에 배포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교사를 귀찮게 만드는 잡무다. 그런데도 그러한 수고를 기꺼이 감내하려는 건 휴대전화가 수업에 얼마나 심각한 방해가 되는지를 절감하기 때문이다. 조례대로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규정을 만들었다면 융통성 있게 적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줄 수는 없는 걸까.

제정 자체에 몽니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면, 인권조례를 정착시키기 위한 교육청의 눈물겨운 노력을 폄훼하는 교사는 없다. 다만, 방식이, 거칠게 말해서, 지나치게 교조적이고, 너무 조급하다. 조례라는 '법'을 무기로, 해설서를 배포하는 등 학교장과 학생부장을 정점으로 하여 일사불란하게 행동지침을 하향식으로 주입하면 될 것이라는 확신은 촌스럽다.

말하자면, 휴대전화 소지를 금지하는 걸 두고 사유재산권 침해 운운하는 건 틀린 해석은 아니지만 교육 방식 치고는 우스꽝스럽다는 거다. 외려 그 문제를 두고 아이들과 학부모, 교사가 함께 머리를 맞대 고민하고 토론하고 정하고 승복하는 일련의 과정이, 설령 인권조례에 명시된 조항과 다소 어긋나더라도 더 교육적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교육은 제도 아닌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인권조례의 적용에 있어 이른바 '융통성'을 허용하면 결국엔 지금까지의 관행대로 이끌려 갈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는 것쯤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의 의견은 철저히 묵살되고, 관행에 찌든 교사의 입장이 그대로 관철될 것이라는 우려, 분명 일리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바로 거기에 해답이 있다.

교육은 제도가 아닌 사람이 하는 것이다. 일선 교사들의 공감과 자발적 실천 의지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인권조례는 그 취지와는 무관하게 교사들에게 또 하나의 잡무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모든 걸 인권조례 탓으로 돌리기 십상이다. 요컨대, 제도로서 사람을 통제하기보다 사람이 자발적으로 제도에 공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사족 하나. 올해 광주광역시교육청 3대 역점 추진 과제 중 교원 업무 경감이 빠지고, 민주인권교육 강화가 새로 추가되었다고 한다. 어쩌면 업무 경감 사안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교육적인 주제이지만, 교사들의 입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추진 과제에 따른 수많은 업무가 쏟아질 테고, 이 역시 학생부장의 몫이 될 수밖에 없으리라는 생각에서다.

"문제는 학생부장들의 업무 과중이야. 바보야!"
#광주 학생인권조례 #학생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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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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