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문화공동체 재생과 청년의 몸만들기

'OO은 대학' 연구소

등록 2012.03.18 22:01수정 2012.03.18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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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을 예로 들자. 거대 도시 서울의 대표 이미지를 기획하겠다는 일은 가당한가? 인공 청계천, 경인 아라뱃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등 대규모 토건과 건립으로 하겠노라 장담했지만 결과는 어떠한가? 자치구를 동원하고 사계절로 나눠보는 등 적잖은 실험을 거듭한 하이서울페스티벌은 서울의 대표 축제가 되었는가 혹은 되어가는 중인가? 관련 현장에서 수고한 이들의 노동에도 불구하고 지난 세월에는 속임수와 집단 최면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울을 대표하는 이미지와 축제는 '누구를 위해' 필요했던 것일까? 이것이 속임수다. 서울을 찾아오는 국내외 관광객을 위해서 서울의 이미지와 축제가 재발견되긴 해야 한다. 문제는 그것이 꼭 서울을 '대표'하는 유일한 이미지와 축제여야 하는가에 있다. 대표라고 못박아서  대형으로 몰고 대량으로 쏟는 토건, 건립, 이벤트의 눈속임이 잠시나마 통한다는 걸 알고 득을 누리려는 이해 당사자들의 과욕 외에 무슨 다른 욕구들이 가담했던 것일까?

그중엔 소박하거나 착한 욕구들도 끼어 있었다. 공공디자인의 질을 높여보려는, 공간의 융합적 활용도를 실험하려는, 참여형 축제의 모델을 빚어내려는 욕구들. 그러나 이 욕구들은 부동산 투기의 집단 최면에 휩싸여 제 좌표를 지켜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어쩌겠는가 뭐라도 해야지' 했던 문화 기획자와 예술가들의 푸념은 메인스트림과 언더그라운드 사이의 거대한 회색 지대, 즉 갈수록 얇아지는 시민의 문화와 나날이 푸석해지는 생활 현장의 무더기 앞에서 꽤나 무력했고 덤덤해지기까지 했다.

다시 돌아와 서울을 대표하는 이미지와 축제는 가당한가? 시민을 소비자로 단정하는 '시민고객'의 발상으로 랜드마킹하고 브랜딩하고 마케팅하면 된다는 신념의 소유자들에겐 안 되는 게 없다. 단지 복잡할 뿐이다. 복잡한 문제라면 쪼개서 단순하게 만들고는 이중에 뭐가 대표냐 물어서 하나를 거대하게 대가답게 휘황찬란하게 세우고 올리면 된다. 그러나 '시민고객'이 아니라 시정의 주인으로서 직접 참여하고 자율적으로 협력하는 '시민주체'에게 묻는다면 '대표는 없다'는 단호한 답변이 돌아올지 모른다.

고립, 분산, 방치된 도시에서 문화공동체는 가능할까?  

그간 서울시가 자의적으로 짜집기한 문화도시 또는 창조도시 발상의 기원 역시 '대표 없는 시민주체의 참여'가 출발점이다. 토건과 건립 위주의 물질경제에 의한 성장이 한계에 이른 도시들이 자연자본, 인간자본, 사회자본의 연결망과 순환을 혁신하는 정책을 개발하면서  시민 주도의 참여를 가능하게끔 협치의 시정을 펴는 가운데 제조자본과 금융자본의 살길을 새로 찾는 것, 이 과정에 각 분야의 문화 기획자와 예술가들이 도시의 신진대사를 맡는 마을과 지역의 재생 및 활성화를 매개하고 촉진하면서 바탕을 일구는 것이다.

이렇게 피드백을 혁신하는 전략적 대목에서 리모델링하고 브랜딩하는 것이 문화창조도시의 핵심이자 본체다. 그러나 지금 서울의 문제는 서울시가 혁신 정책을 내놓아도 이에 화답할 시민주체의 인간자본들이 고립․분산․방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서울광장의 촛불집회처럼 한꺼번에 스케일을 만드는 자발적 시민연대도 있지만, 평소에 시민과 시민이 연결되고 인간자본과 인간자본이 두텁게 겹쳐서 사회자본을 신뢰하는 상태는 갑자기 등장하는 법이 없다.


특기 같은 묘책도 찾아야 하되 평범한 일상의 기본기를 되살리는 수밖에 없다. 그러자면 서울시 정책의 큰 방향과 틀을 바꿔나가면서(위로부터, 앞으로부터) 동시에 마을과 지역 단위마다 시민주체를 발굴․연결․집결할 수 있게 문화공동체를 재생하는(아래로부터, 뒤로부터) 운동의 투 트랙을 병행해야 한다. 아울러 양 흐름이 수시로 만나서 엮여야 한다. 안 그러면 서로 딴 소리하거나 함께 혁신할 적기를 놓치는 우를 범하게 된다.

이것은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인 문제다. 로켓을 달나라에 쏘아올리는 문제가 아니라 아이를 돌보며 기르는, 기가 죽은 청년에게 자신감을 찾게 하는, 자신의 재능과 잠재력이 무엇인지 잊어버린 시민의 힘을 재생하는 문제다. 즉 수없는 상호 작용을 통해서만 가능한 변화다. 이 상호작용은 먼저 생활권에서, 자치구 단위로, 다시 서울의 4대 권역으로, 그리고 서울시 전체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는 사방 주변에서 중심을 채우며 들어오는, 그럴수록 중심의 좌표와 역할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퍼즐 맞추기처럼 해야 효과적이다.


킁킁대고 발발대는 2030 청년들을 주목!  

지역 문화공동체의 재생은 서울의 경우 이처럼 생활권의 마을(만들기)과 자치구의 행정구역 사이에 방치되어 있는 회색 지대(gray area)를 점점점 창의거점(creative zone)으로 발굴하고 연결하며 시민주체의 집결을 활성화하는 전략을 요청한다. 물론 이 또한 기획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고 계획 잘 세웠다고 그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킁킁대고 발발대면서 시민을 만나고 시민과 시민을 연결하는 현장 밀착형 매개자이자 촉진자(micro agent)의 새로운 출현이 절실하다.

마을과 지역의 바닥과 구석에 밀착하여 활동하는 매개자․촉진자의 '새로운 출현'을 강조한 이유가 있다. 이미 그렇게 활동해온 기존의 활동가들이 방방곡곡에 있다. 대체로 30대 중반을 넘긴 중장년들이다. 그만큼 경험과 경력이 있다. 반면 각자 속한 조직이나 인맥 혹은 그간 쌓인 사회적 지위나 명예 때문에 고려 사항이 많고 소통 비용이 많이 든다. 익숙하고 노련한 만큼 그간의 빈틈을 메울 창의적 감성이나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고 낯설게 접근하는 태도에서 둔하고 완강하다.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구로는 예술대학> 모집 공고문 중
<구로는 예술대학> 모집 공고문 중사회적경제센터

이점에서 나는 2030 청년에 주목해야 한다고 믿는다. 기성 세대에게 익숙해진 것들이 문제의 온상으로 변화한 시대이기 때문에 미숙한 청년들이 재미 삼아 킁킁 열심히 탐색하고 의미 거리를 찾아 발발 돌아다니면서 마을 만들기의 작은 빌미와 지역 문화공동체 재생의 온갖 빌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여기서 빌미란 표현을 쓴 것은 사람 간에 '빌미를 주지 않기로' 작정하고 살아온 소비주의 생활양식에 반하자는 역발상 모색의 소치다. 서로 신세지며 살아가는 빌미의 긍정을 찾아보자는 그런 취지다.  

알다시피 서울에는 한손도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마을만들기 사례가 몇 개 안 된다. 한 마디로 서울은 마을 없이 살도록 재개발되고 자고 먹고 배우고 일하고 노는 장소가 분리되어 온종일 쏘다니며 스쳐가게끔 난개발된 거대 도시다. 애 어른 할 것 없이 장소성의 재미와 의미와 빌미가 사라진, 그래서 마을이 무의미해진 아파트 공화국의 무덤이다. 이런 곳에서 마을의 재미와 의미와 빌미를 찾는 것은 문화재 발굴과 보존일 수는 없다. 과거의 향수와 기억에만 의존해서는 답이 없다.

마을만들기는 '사람을 위해 도시를 변화시키는' 서울시와 시민들에겐 난제이자 더는 회피할 수 없게 된 숙제이다. 게다가 마을이란 베끼면 되는 모범 답안이 아니다. 제각각 생겨 먹으며 만들어지는 게 마을이다. 때문에 서울의 마을만들기가 성공하려면 미숙하게 바닥부터 구석마다 움직이는 현장 밀착형의, 아니 현장 거주형의 매개자․촉진자가 새롭게 출현해야 좋다. 나는 그 적임자가 2030 청년이라고 봤고, 그들의 미숙함이 서울 곳곳에서 마을만들기를 매개하고 촉진할 수 있는 장점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OO은 대학에서 꿈틀 거리는 청년들 

3년 전에 1개소를 열어보고 2년 전에 2개소로, 작년에는 4개소로 지역 맞춤형으로 모판 분양하듯 착실하게 늘려온 OO은대학 프로젝트를 통해 나는 2030 청년들이 어떤 재미-의미-빌미의 모듈을 만나면 얼마나 변화 성장하는지를 경험했다. 서울의 1천만 시민을 똑같은 소비자로 보고 영업 쟁탈전에 뛰어들어야 하는 취업 아니면 창업의 분법에서 활로와 자아를 잃어버린 청년들이 OO은대학을 통해 지역 곳곳에서 이름을 부르는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통해 마을만들기의 퍼즐 맞추기를 매개하고 촉진하면서 일삼기-일거리-일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는 생생한 가능성을 목도했다.

땡땡은대학, 공공은대학, 빵빵은대학 등으로 발음하는 OO은대학은 청년들이 삼삼오오 지역을 탐색한 후 생활권 안의 일터나 집터에 찾아가서 지역시민을 인터뷰하는 일삼기로 시작된다. 이 과정에서 지역시민은 낯선 청년들의 방문과 경청을 반가워하며 자신의 인생 콘텐츠와 노하우를 들려준다. 청년들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지역시민, 청년, 어린이 등을 찾아내 수업이란 일거리로 연결한다. 지역에선 누구나 강사고 어디나 강의실이 되는 것이다. 이로써 지역시민과 지역시민이, 앞세대와 뒷세대가 서로 도우며 연결된다. 아울러 청년들은 지역의 청년 반상회를 조직하여 장차 마을기업이나 마을의 사회적기업으로 나아간다.

 <온수리 대학>에서 진행하는 순무김치 만들기
<온수리 대학>에서 진행하는 순무김치 만들기사회적경제센터

이 과정에서 나는 청년들이 스스로 몸을 다시 만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것이 가장 인상 깊었다. 경쟁에 치이고 닫힌 몸에서 협동하는 몸으로, 내일의 낙오 공포에 찌든 몸에서 오늘의 만남이 주는 기쁨을 즐기는 몸으로, 타인을 배제하고 기피하는 몸에서 타인과 교류하고 공감하는 몸으로 말이다. 이 몸만들기가 한두 해 쌓이자 2030 청년은 마을을 상상하기 시하는 새로운 몸이 되어갔으며 고향 근처로 돌아가 정주하거나 자신이 응원하는 지역을 집중 왕래하면서 자기 고용의 일자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더불어 먹고 사는 길이 있으며 이게 나의 행복이라고 깨단한 체험을 또래 청년들에게 쏙쏙 알아먹게 전파하는 OO은대학의 청년들을 보면서 나는 작년 말부터 그들과 같이 지난 경험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OO은대학의 (1) 표준 모판(모델) 보급과 (2) 2030 주체 양성(술래학과) 그리고 (3) 준비된 시니어들과 합동으로 더 많은 시민들에게 마을만들기의 직접적 상상력을 복원하는 1박2일 프로그램(마을출장대학) 등.

이런 노력들이 각 지역의 마을만들기를 준비하는 지역단체와 만나고 지방정부와 만난다면 할 수 있는 것이 참으로 많겠다 싶다. 이를테면 2030 중심의 OO은대학이 희망제작소의 '지혜로 여는 대학' 어른들과 SVPSeoul의 멘토들과 만난다면 서울의 마을만들기가 난제이긴 하나 미제로 남지는 않겠다는 작은 확신이 든다. 이들 어른들이 사는 각 동네에서 OO은대학 청년들의 방문과 시도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는 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지역의 문화공동체 재생과 청년의 몸만들기'라는 주제의식을 OO은대학의 프레임워크이자 커뮤니티 비즈니스 모델로 구체화할 때마다 초심을 상기시켜주는 푯대를 하나 들자면 E.F.슈마허의 다음 이야기다. 그의 책 <굿워크>는 OO은대학 청년 기획자들의 필독서가 되었으며 "坊坊曲曲 Social Quiz OO은대학"의 표준 지침을 만들어가는 시행착오의 과정에서 언제나 좋은 귀감이 되고 있다.

"제 경험으로 보자면 작고, 간단하고, 자본이 적게 들며, 비폭력적인 기술 혹은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갖춘 기술을 만들어낼 수 있으면 개인이건 공동체이건 자기 힘으로 자립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기술은 보다 인간적이고 생태적이며, 화석연료에도 덜 의존하는 생활양식을 낳게 되고, 여기서 나온 생활양식은 거대하고 복잡하며 자본이 많이 들고 폭력적인 기술로 생긴 생활양식보다 인간이 지난 현실적 욕구에 더 다가갈 수 있습니다. 위의 지침이나 기준이 마음에 안 든다면 다른 지침이라도 제시해야 합니다. 지침이 없으면 대안을 찾는 일을 시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바라기는 OO은대학과 또 이보다 먼저 다양하게 방방곡곡에서 독창적인 모판을 만들고 분양하는 2030 청년 매개자․촉진자의 미숙하고 낯선 출현을 축하하고 응원하는 공공 정책이 제때에 나와서 적기에 서로를 만나는 일이다. 나는 그때가 지금 여기 서울과 수도권 그리고 전국의 주요 도시라고 본다. 마을만들기는 한꺼번에 이뤄지지 않지만 지역에서 마을을 상상하며 몸만들기를 시작한 청년들에겐 한번 몸을 바꿀 때 한꺼번에 여기저기를 동시에 바꾸는 폭이 클수록 일관성과 지속성의 깊이도 같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글을 맺으면서 첫 질문으로 돌아가자. 서울의 대표 이미지와 축제는 가당한가? 사리에 맞게 한다면 가당하다. 무엇이 사리일까? 서울의 지역마다 문화공동체 재생을 목표로 하는 마을만들기의 다양한 시도들이 교차하고 누적되고 시너지를 낼 때, 그래서 서울 곳곳에 문화의 개천이 흐르고 만나서 시민 중심의 문화창조활동이 거점별로 거리와 골목길로 연결될 때, 시민들이 스스로 단수가 아닌 복수의 서울 대표 이미지와 축제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나는 이것이 창조문화도시 서울이 지속가능한 발전과 경쟁력을 갖게 되는, 이전과 다른 진정한 신성장 동력이자 토대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김종휘 편집위원 (OO은 대학 2연구소장, whee212@oouniv.org)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희망제작소 사회적경제센터 누리집(www.center4se.org) 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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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 #OO은 대학 #사회적경제센터 #마을만들기 #청년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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