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화장실 일부 모습.
연합뉴스
인도를 조금이라도 아신다면 숙지하고 계시는 바, 인도 사람들은 볼 일을 본 다음 휴지가 아니라 손으로 뒤처리를 한다. 그래서 변기 옆에 항상 수도꼭지와 작은 바가지(또는 항아리)가 있어서, 왼손으로 뒤를 닦고 물로 헹구는 과정을 반복하여 휴지 없이 모든 일을 끝낸다.
JTS사업장의 방침은 이곳에서 일하는 한국인도 모두 이와 같은 뒤처리 방식을 따르는 것이었다. 환경을 생각하는 생태적인 생활이라는 가치 지향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이었다. 우선 갑작스레 사업장을 방문한 수많은 사람이 쓸 휴지를 마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근처에 편의점은커녕 구멍가게도 거의 없고, 당연히 휴지를 팔지 않는다. 또 다른 문제는 그 이전에 휴지로 인해 변기가 막히는 '참사'가 계속 벌어졌기 때문에(인도 변기에서 물이 내려가는 목은 한국의 그것보다 좁은 편이다) 언제부턴가 휴지 사용 자체를 금지한 것이다. 물론 한국을 떠나올 때, 자원활동가들은 이 같은 사정을 미리 듣고 동의 하에 떠나왔다.
하지만 손으로 뒤를 닦는 건, 말만으로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사업장에 도착한 첫 날, 인솔자가 매우 상세한 뒤처리 방법을 알려 주었지만, 그것을 따르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어찌어찌해서 왼손의 새로운 기능을 조금씩 깨달아갈 무렵, 사고가 터졌다.
어느 날 아침 볼일을 보러 화장실 칸으로 들어갔는데, 누군가 사용한 휴지가 변기에 버려져 있었다. 그걸 본 나는, 아직 손이 꺼림칙한 사람이 버리고 갔으려니, 하고 그 위에 그냥 볼 일을 봤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다.
항아리를 이용해 뒤처리까지 깔끔하게 끝내고 기쁜 마음으로 물을 내렸는데 아뿔싸, 변기가 막혔다. 인도에는 아직 좌변기가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적어도 변기의 높이만큼 아슬아슬하게 물이 차오르다 넘치지는 않는 좌변기와 달리 금세 화장실 바닥으로 그것들이 퍼져가기 시작한다. 당황한 나는 황급히 숙소로 돌아와 변기가 울부짖는 응급한 상황을 전했다. 누군가 뒷수습을 하러 갔고, 나는 부끄러운 나머지 참사의 책임이 내게 있음을 알리지 않았다.
잠시 후 아침 공지 시간, 화장실 청소를 맡았던 동혁이 형은 "화장실이 자꾸 막히는데 자기가 그랬으면 그랬다고 조용히라도 얘기를 해 달라"고 말하면서 "책임을 물으려는 건 아니고, 미리미리 얘기를 해 달라는 취지니 모든 걸 용서하겠다"고 했다.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던 사람들, 웃음을 참지 못하고 쿡쿡거린다. 내심 찔렸지만 모르는 척 따라 웃는 나. 이제야 그 사건의 범인이 나임을 밝힌다.
가끔 신문에 동혁이 형 이야기가 나오면 그때 인도에서의 일이 떠오른다. 동혁이 형은 이북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태어나 23년간 살다가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거쳐 고초 끝에 한국으로 온, 수용소 출신으로는 유일한 새터민이다. 경찰이 꿈이라고 말했던 형, 요즘 무척이나 바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던데, 다시 만나 내 죄(?)를 자백할 기회가 다시 오기 바랄 뿐이다.
B.B.K. - 비밀은(B) 밝혀진다(B), 꼭(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