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들여 LP 수집... 트로트 연구자의 꿈은?

군산의 '트로트 박사' 소이영씨, 수집한 LP판만 6천여 장

등록 2012.03.27 13:26수정 2012.03.27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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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의 트로트 박사 소이영씨
군산의 트로트 박사 소이영씨박영미

'지직, 지직~.' 추억의 LP판이 돌아간다. 흘러나오는 노래는 한국 전쟁 이후 최대의 히트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이 노래의 주인공 남인수 선생이 좋아 LP판을 모은 지도 30여 년. 소이영(52·소룡동)씨는 자타공인 '군산의 트로트박사'다.


"진짜 트로트를 좋아한다면 원곡가수와 모창가수의 노래는 구별할 줄 알아야죠. 그래서 전 남인수 선생 LP판과 모창가수의 LP판 두 개 다 갖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비교해서 들려줘야 하거든요. 실제 들어보면 반주부터 다르다니깐요. 이 맛에 LP판을 모은답니다."

음악을 이야기할 때, 그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레코드 회사부터 음악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물론 가수와 작곡가의 특징까지 LP판 하나에 담긴 이야기를 쉴 새 없이 쏟아낸다. 연도별 분석은 물론, 가수의 시대별 변화도 세세히 파악하고 있다. 단순 수집을 넘어 트로트 연구자 다운 면모다.

"음반수집가는 그런 것 같아요. 아무리 음반문화가 발달해도 옛날 것들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원곡, 원곡'하게 되나 봐요. 같은 가수가 부른 노래라도 세월이 흘러 다시 부르면 마음에 와닿지 않잖아요. 가수가 한창 인기일 때, 그 음색 그대로 듣는 것이 제 유일한 낙입니다."

원곡가수 노래 듣고 싶어 모은 LP

    집안 가득 메운 LP판
집안 가득 메운 LP판박영미

LP판을 다루는 그의 손놀림이 능숙하다. 30년 넘은 LP판임에도 끊김없이 고운 소리를 낸다. CD 음질과는 다른 소리의 깊이감이 더해지는 듯 하다. LP가 돌아가면서 지직대는 잡음도 음악과 섞이니 그 자체로 멋스럽다. 노랫말도 어찌나 서정적인지, 빠른 비트의 대중음악에 길들여진 젊은세대의 감성까지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소이영씨는 그 옛날, 카페 DJ가 된 것 처럼 LP판을 턴테이블(LP 플레이어)에 올리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그가 LP판을 모으기 시작한 건,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그 시절, 야외 전축을 샀을 정도로 음악애호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음악과 가까이 지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수 남인수(1918~1962) 선생과 배호(1942~1971) 선생을 유난히 좋아했던 그는 모창가수가 아닌 원곡을 듣고 싶어 LP판 수집에 나섰다. 그때가 그의 나이 17세. 한 장, 두 장 취미삼아 모으던 음반은 현재 6천여 장에 이르렀다.


많은 음반 중에서도 그는 유독, 군산항과 관련된 음악에 관심이 많다.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곳이라 그런지 애착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그가 수집한 음반목록을 보면 1960년대 군산항을 소재로 나온 노래가 7곡이나 된다. 익히 아는 가수 이미자 선생도 군산항 관련 노래를 두 곡이나 불렀다.

이밖에도 <잘 있거라 군산항>(안다성·1963) <헤어진 군산항>(박제연·1965) <내 고향 군산항>(정애란·1974) <군산항 부르스>(최하우·1984) 등 낙후된 군산항의 모습을 회상하고, 그 옛날을 추억할 수 있는 노래들이 가득했다.

그가 수집한 건 한국 대중가요의 역사

    오랜된 LP판이지만 잘 보존돼 있다.
오랜된 LP판이지만 잘 보존돼 있다.박영미

"지금까지 LP판에 들인 돈만 1억 원이 넘을 겁니다. 하지만 이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죠. 음악은 제 인생에 가장 큰 활력소가 돼주고 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듣는 음악은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하기 충분하죠. 그리고 지금까지 수집한 음반들은 한국음악의 변천사뿐 아니라, 군산항과 관련된 자료로 활용할 수 있어 음악사적으로도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거실 가득, LP판으로 둘러쌓인 소이영씨의 집. 수집 초창기, 늘어나는 LP판 때문에 걱정했던 아내는 이제 든든한 지원군이자, 절친한 음악애호가이다. 군산 신영시장에서 20여 년 넘게 대광물산을 운영해온 부부. 둘은 일 마치고 보는 TV 보다는 음악을 듣는 게 낙이란다. 1남 2녀 자녀들도 아버지의 유별한 LP 사랑을 자랑스러워한다. 집에 손님이라도 찾아오는 날이면 그는 일일 DJ를 자처하며 LP 자랑에 신바람이 난다. 그런 그에게 꿈이 있다면, 자신이 수집한 음반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이다.

    직접 추억의 LP판을 틀어주셨다. 집안이 왠만한 카페 부럽지 않다.
직접 추억의 LP판을 틀어주셨다. 집안이 왠만한 카페 부럽지 않다. 박영미

"사실 실버세대가 즐길 수 있는 음악문화는 전혀 없다고 봐요. 제게 꿈이 있다면 실버세대를 위한 음악카페를 여는 것입니다. 군산 내항에 멋진 카페를 조성해 석양을 바라보며 음악을 듣는다고 생각하면 벌써부터 행복해져요. 트로트 연구를 계속하는 이유도 그때를 위해서입니다. 음악만 들려주는 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전하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그 옛날의 향수를 나누고 싶어요."

소이영씨가 수집한 것은 단순히 트로트 LP판이 아니다. 한국 음악사의 소중한 자료이자,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추억의 노래다. 그의 고집스러운 수집이 자랑스러운 건 그런 이유에서다.
#소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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