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열 신문사의 불법도청 사건으로 영국 의회 청문회에 나와 증언하는 루퍼트 머독.
<가디언>
지난해 여름 비슷한 시기에, 언뜻 보면 상당 부분 유사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던 스캔들이 한국과 영국의 주요 언론사에서 일어났다. 둘 다 불법적인 뉴스 취재와 관련된 사건이다.
그로부터 계절이 몇 번 바뀌어 다시 찾아온 봄, 당시 높은 관심을 끌었던 두 사건이 그 후 어떻게 처리되어왔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건 당시만큼이나 사후 처리에서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두 나라 언론과 사회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여전히 조사 중인 <뉴스오브더월드> 도청 스캔들취재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도청 사건으로 해당 언론사의 사주인 세계적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부자가 의회 청문회에 소환되어 전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밝히며 용서를 구했던 건 작년 7월 19일이었다.
대중적 타블로이드 신문을 발행하던 머독 일가의 <뉴스인터내셔널>은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여러 건의 휴대전화 도청, 경찰 뇌물 스캔들 등으로 비난과 고발을 당하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부적절한 취재 행위가 유명인, 정치인, 왕실 일가에만 한정되었다던 이전 조사 결과와 달리, 억울하게 살해된 어린 소녀 밀리 다울러, 심지어 런던 버스 폭발 테러 희생자 등 민간인들의 휴대전화까지 무차별적으로 도청한 것으로 폭로되자 대중들의 엄청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168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전통의 대중지 <뉴스오브더월드>가 스캔들의 책임을 지며 전격 폐간 조치되었고,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의회 차원의 특별조사위원회 구성을 명했다.
그 후 레베슨 경을 위원장으로 하는 레베슨 위원회가 구성되는데, 레베슨위원회의 임무는 <뉴스오브더월드> 스캔들의 심층 조사와 이로 인해 촉발된 영국 언론 전반의 취재 윤리 실태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레베슨위원회는 9월부터 사건 배경 이해에 필요한 분야의 저명인사 초빙 특강을 시작으로 <뉴스인터내셔널>, <가디언 미디어 그룹>, BBC 등 주요 언론, 런던 경찰청, 저널리스트 전국노조 관련자들, 그리고 그동안 미디어로부터 사적 침해를 당했다는 51명을 모두 출석시켜 강도 높은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조사대상자 명단에는 정치인, 스포츠스타, 대중적 인물, 일반인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휴대전화 도청사건 피해자인 다울러 양의 부모와 언론에 의한 사생활 침해를 주장해온 유명 배우 휴 그랜트도 출석했다.
총 4단계로 진행되는 조사위 활동은 첫 단계로 언론과 개인들의 사적영역 침해 부분, 2단계에선 언론과 경찰의 부적절한 공모 관계를 조사하게 된다. 향후 진행될 3단계에선 언론과 정치인 문제를 다루고, 마지막 단계는 영국 미디어의 불법적 취재 관행과 문화를 정리하면서 최종적으로 언론 보도에서의 '자율 규제'와 윤리적 기준 강화를 위한 제언을 할 예정이다.
올 2월까지 1단계 조사를 마쳤는데, 개인 정보 접근에 대한 이슈, 기술, 미디어법, 제도 등에 대한 강연과 '언론 보도 경쟁이 저널리즘에 미치는 영향', '언론의 권리와 책임', '언론 자유와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을 주제로 한 세미나들이 제임스 커런, 스티브 바넷 같은 저명 언론학자들과 함께 진행되어 또한 주목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