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민주통합당 'MB-새누리 심판 국민위원회' 박영선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열고 'BH하명'이라고 적힌 불법사찰 문건을 가리키며 "불법 사찰은 전임 정권에서 일한 사람의 약점을 잡고 충성맹세를 시킬지, 퇴출시킬지를 활용하기 위해 2종류로 분류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성호
혹자는 이번 총리실의 불법사찰에 대통령이 연관되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아직은 없지 않느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 민정수석실과 사회정책수석실과 검찰이 불법사찰과 증거인멸에 개입했다. 이것만으로도 대통령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보좌관이 돈을 받거나 여론조작에 가담했다는 이유만으로 야당의 정치인들은 국회의원 후보 자리를 내놓았다. 국정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의 책임이 이보다 가벼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직접적인 증거도 있다. KBS의 새 노조가 공개한 사찰문건에는 "BH(Blue House, 청와대) 하명"이 선명하게 적혀 있으며, 3월 31일 일부 언론이 확보한 사찰보고서에 따르면 '복무동향 점검보고 양식'에서 "보고서를 쓸 때 단순히 발생한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구체적인 해당 상황에 대한 평가와 대상자의 역할에 대해 기술. 본인이 대통령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기술하라"는 부분이 나온다(<한겨레> 3월 31일자
"대통령이라 생각하고 보고서 써라", <부산일보> 3월 31일자
"'불법사찰' 이 대통령이 직접 해명하라")
대통령이 보지도 않을 보고서를 "대통령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기술할 이유는 전혀 없다. BH, 즉 청와대는 대통령이 사는 곳이다. BH의 주인은 대통령이다. BH는 비서관이든 보좌관이든 경호원이든 그 모든 조직과 인원이 대통령을 위해서 존재한다. 따라서 'BH 하명'은 비서관이나 비서실장이나 여타의 다른 아랫사람의 하명이 아니라 바로 '대통령 지시사항'이 아닐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닉슨은 워터게이트 사건 때 메모지에 적힌 'WH(White House, 백악관)'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뿐만 아니라 증거인멸의 전말을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은 <이털남>에서 자신과 관련된 문제가 'VIP'에게 보고되었다고 들었다는 진술을 한 바 있다. 대통령이 증거인멸의 과정과 그 가담자들에 대한 회유사실도 알고 있었다는 정황이다. 실제로 청와대는 7명의 기소자들에 대한 변호사 비용을 대는 등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회유하고 재판에 개입했다. 대통령이 몰랐다고 하기에는 이 모든 사실들을 한꺼번에 설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MB정권, '나쁜정권'이란 결론 피할 수 없다핵심 관련자들의 녹취록이 낱낱이 폭로되고 사건의 전모가 시시각각으로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청와대와 관계자는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혹은 되레 호통을 치면서 적반하장의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국민들에게 큰소리치는 행태는 마치 범죄현장을 들킨 조직폭력배가 "뭘 봐!"하면서 대드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마침 범죄행위의 단골소품인 대포폰까지 청와대가 지급하지 않았던가.
급기야 청와대는 3월 31일과 4월 1일 청와대 논평을 통해 사찰문건의 80%는 노무현 정권 때의 것이고 그때도 민간인 사찰이 있었다고 대대적인 역공을 펴기 시작했다. 언론의 사명은 권력 감시라던 이른바 조중동과, '충성심 높은' 사장님을 낙하산으로 꽂은 KBS, MBC, YTN 등 방송사들은 이번 사찰사건 내내 소극적인 보도로 일관하더니 이날을 기점으로 청와대의 입장을 대문짝 만하게 보도하기 시작했다.
종편이라는 특혜까지 업은 전통의 조중동은 그렇다 치더라도, 방송사들의 경우 측근을 낙하산 사장으로 내리꽂고 불법사찰을 통해 이들의 충성심을 확인하는 한편 그에 반대하는 노조동향까지 면밀히 파악하면서 폭력적으로 '방송 장악'한 효과가 아직까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항변은 대단히 궁색해 보인다. 우선 사찰문건을 검토한 일부 언론과 KBS 새 노조는 전 정권의 사찰은 그 주체가 대부분 경찰이며 통상적인 사찰업무의 결과라고 밝혔다(관련기사 :
오마이뉴스,
한겨레,
뷰스앤뉴스). 이 점은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상황실 행정관을 지낸 전재수 전 비서관의 해명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전재수 비서관 해명글).
무엇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일이라면 없는 죄도 만들어서 폐인으로 만드는 능력을 지닌 이들이 노무현 정권의 그런 엄청난 범죄행위를 지금까지 알고도 덮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것도 대포폰까지 동원해 검찰과 짜고 증거인멸을 하면서까지?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지난 정부의 잘못이 현 정부의 잘못을 옹호하지는 못한다. 박정희가 쿠데타를 했다고 해서 전두환의 쿠데타가 정당화될 수는 없지 않은가? 만약에 전 정부에서도 불법적인 사찰이 있었다면 그와 관련된 사람들에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으면 되는 것이고 현 정부의 잘못은 또 그것대로 책임을 지면 될 일이다.
더욱 고약한 것은 만약 청와대의 논평이 사실이라면, 이명박 정권이 지난 정권의 불법행위를 알고도 이를 자신의 불법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방패막이로 쓰고자 무려 4년 동안이나 은폐하고 있었다는 말이니까, 그만큼 이명박 정권이 스스로의 사악함을 계속해서 자인하는 꼴밖에 안 된다. 이 문제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아무리 생각해도 이명박 정권은 정말 '나쁜 정권'이라는 결론을 피할 길이 없다.
한 국민의 삶 완전히 짓뭉개버린 이명박 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