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청사 유리문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검찰 깃발이 비치고 있다.
유성호
19대 국회의원을 뽑는 4·11 총선을 앞두고 검찰이 망신을 당해도 단단히 당하고 있다.
대검찰청 채동욱 차장 검사는 민간인 불법사찰 관련 1일 오후 연 긴급 브리핑에서 "앞으로도 검찰은 '사즉생'의 각오로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하여 그동안 제기된 모든 의혹을 철저히 규명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수사를 한다니 본인들이 한 1차 수사가 잘못된 것을 알기는 아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사즉생'이라는 극단적인 단어까지 써가며 나서는 이번 2차 수사는 믿어도 될까?
객관적으로 검찰 수사가 '불신의 늪'에 빠졌다는 것은 검찰의 우군으로 생각되는 청와대와 새누리당, 그리고 <조선일보>도 잘 알고 있다. 새누리당이 먼저 특검을 제안했고, 청와대는 이를 즉각 수용했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역대로 발의된 특검 중에서 여당과 청와대가 이처럼 순식간에 특검을 제안하고 받아들인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미 검찰이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잃었다는 것을 정부·여당이 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검찰의 존재 이유마저 의심받는 상황이다. 야당이 아니고 정부와 여당이 나서서 국민들이 검찰 수사를 믿지 못할 것이니 특검을 하자고 나서는 상황을 누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무리 검찰을 이해의 눈으로 보고 감싸주려 해도 감쌀 수가 없으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오죽했으면 가장 친MB적이라고 평가되는 <조선일보>마저
'이 상황에서 검찰의 '불법사찰' 수사 누가 믿겠나'(4월 2일자)라는 제목의 사설을 올렸을까 싶다. 지극히 지당하신 말씀이다. 이 마당에 누가 검찰을 믿겠는가?
민간인사찰 은폐 사건의 '주요 용의자', 권재진 '사즉생'의 각오로 민간인 사찰에 대한 재수사에 매진한다지만, 검찰은 장진수 전 주무관의 폭로가 있은 지 열흘도 더 지나서야 재수사에 들어갔다. 검사가 몰랐던 범죄 혐의가 나타났을 때는 하루빨리 수사를 진행하는 것이 기본이거늘, 검찰은 민간인 사찰과 관련해서는 관련자들이 증거를 인멸할 시간과 여유를 매우 친절하게 제공했다.
게다가 정부 기관 중에서 군대와 함께 모든 구성원을 서열 순으로 세울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직 중에 하나인 검찰 최상층부에는 권재진 법무부 장관이 있다. 그가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던 시절에 민간인 사찰이 벌어졌다.
즉, 권재진 장관은 실패한 1차 수사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인물이다. 거기다 권 장관이 검찰 출신임을 상기한다면, 당시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었을지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다. 객관적인 눈으로 보자면 권재진 장관은 이번 민간인 사찰 은폐 사건의 주요 '용의자'가 되어야 할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이번 수사를 맡고 있는 검찰의 최상층부에 있다. 물론 그 위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있다. 대통령이야 선출직이니 사소한(?) 근거를 갖고 그 직을 물러나게 할 수는 없지만, 법무장관은 이 정도의 정치적 의혹이면 자리에서 물러나 주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이다.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중립적 인사로 법무장관을 인선하여 이 사찰 사건을 객관적으로 수사해야 한다.
검찰의 정체성 의심하게 만든 민간인사찰 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