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유토마을에 가장 먼저 터를 잡은 박말녀씨. 경기도 성남에서 내려왔다.
이돈삼
'귀신나올 것 같던 마을'...그로부터 60년 지난 지금은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곳은 평온한 산골 마을이었다. 전쟁이 터지자 천혜의 지리적 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빨치산 사령부를 불러들였다. 전쟁의 광풍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 전쟁이 끝난 뒤 빨치산을 도왔다는 이유로 초토화됐다. 마을주민들은 정든 고향을 등져야 했다. 주민이 떠난 마을은 폐허로 변했다. 주변 마을 사람들조차 '거기엔 귀신이 나온다'며 접근을 피할 정도였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지금, 이곳에 새로운 마을이 들어서고 있다. 그 중심에 마을 대표를 맡고 있는 박말녀(55·여)씨가 있다. 그녀가 이곳에 들어온 건 지난 2003년. 경기도 성남에서 자영업을 하던 그녀는 교통사고로 1급 장애를 입은 딸을 위해 이곳에 내려왔다. 물 맑고 공기 좋은 곳을 찾아 전국을 헤매다가 우연히 이곳을 만났다.
그녀의 남행 길엔 장애인 자녀를 둔 세 가정이 동행했다. 이들 역시 소외된 삶에서 벗어나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희망을 꿈꿔오던 터였다. 하지만 불모지인 산 중턱에 새로운 마을을 만들기란 녹록지 않았다. 물은 고사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다. 맨손으로 집터를 다지고 끊긴 도로를 연결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다리가 부러지고 지네에 물리기도 했다. 온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어갔다.
박씨는 "천막을 지어놓고 살다가 뱀이 나와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공사 중에 다리가 부러지거나 지네에 물린 사람도 숱하게 있었다"면서 "하지만 이런 고생보다 속사정도 모른 채 '먼(무슨) 죄 짓고 농촌에 왔소', '혹시 북에서 넘어 온 사람들 아닌가'하고 말하는 이웃 마을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것까지도 그나마 참을 만 했다. 더 고통스러운 건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겠냐"며 풀려다 만 짐을 챙겨 떠나는 이들이 생길 때였다. 서로를 위로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렇게 손수 지은 집들이 완성되고 끊겼던 전기와 전화를 끌어들였다. 제법 마을의 모습이 갖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