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입학식에 참석한 학생과 교사 학부모 기념사진
주영덕
1945년 해방이 됐지만 당시 70만 명의 재일동포가 한으로 돌아올 기회를 놓쳤다. 이들은 자신들이 돌아갈 고향이 '통일된 조국'이라고 생각하고 일본 땅에서 살아갈 후손들을 위해 자비로 버려진 땅에 터를 잡아 우리학교를 세웠다.
하지만 이들은 일본 국적이 아닌 맥아더 군정시기에 통칭됐던 '조선적'이라는 난민의 지위를 유지하면서 무국적자 상태로 살아 왔다. 일본에 동화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본 정부의 차별은 극심했고, 일본 우익단체들은 우리학교 여학생들의 치마저고리를 찢는 등 수시로 폭력을 가하고 있다. 현재 조선학교 구성원의 60%는 대한민국 국적이며, 20%는 일본 국적, 나머지 20%는 '조선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입학식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박지나 학생 본인도 울고 내 딸도 울고, 딸의 친구들도 울고, 나도 울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며 "서로 안타까운 심정에 울고 또 울었다"고 말했다.
박지나 학생은 "고급부 3년간, 몸과 마음을 튼튼히 키워 동포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유능한 인재로 성장하기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현재 우리학교는 일본 우익세력과 일본정부의 차별정책으로 540여 개에서 현재 80여 개의 학교만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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