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민주당 지지자가 '4번'을 외치는 이유

'투표율 꼴지' 인천 남구, 야권단일화 덕 볼까

등록 2012.04.09 17:42수정 2012.04.1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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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남구갑에서는 통합진보당 김성진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인천 남구갑에서는 통합진보당 김성진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김성진 선본

4.11총선이 코앞이다. 정권심판을 내건 야권연대는 힘을 발휘할까. 인천지역에서는 유일하게 통합진보당 후보가 야권단일후보로 나선 인천 남구갑 선거구가 야권연대 성패의 바로미터가 될 거라는 전망이다.

전형적인 구도심으로 보수성향이 강한 인천 남구갑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열풍이 불던 16대 총선을 제외하고는 계속해서 새누리당(과거 한나라당)이 당선됐던 지역이다. 게다가 새누리당 후보는 현재 지역구 의원인 홍일표 국회의원으로 인천시 정무부시장까지 지내 지역기반이 탄탄한 편이다.

이에 맞서는 야권단일후보는 김성진 통합진보당 전국운영위원이다. 김 후보는 인천지역에서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해왔고 지난 지자체선거에서 송영길 인천시장 공동선거대책위원장도 맡았지만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다. 마지막 발표된 여론조사도 약간 뒤지는 것으로 나왔다.

36년 민주당 지지자가 '4번'을 외치다

만만치 않은 현실조건에서 '야권단일후보'라는 프리미엄은 얼마나 작용할까. 지난 8일 오후 방문한 김성진 후보 선거사무실에서부터 그 가능성이 점쳐졌다. 사람들 이름과 연락처가 빼곡히 적힌 수첩을 보면서 계속 전화를 걸던 한 50대 여성 자원봉사자는 민주당 골수팬임을 자처했다.

"남구에서 산 36년 동안 계속 민주당이었는데 이번엔 4번 찍으라고 만날 전화하고 있어요. 민주당 중앙당에서 단일후보로 결정했으니 따라야죠. 요즘 밤에 자다가도 '우리 후보님이 돼야 하는데…'하면서 잠이 깨요."

그의 수첩엔 500명이 넘는 명단이 적혀 있었다. 친목계 등 36년 동안 맺어온 인연들이다. 매일 도시락까지 싸갖고 와서 3~4시간씩 전화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동네에서 알게 된 통합진보당 구의원의 청렴한 모습에 "표를 찍지는 않았지만 100% 신뢰하게 됐다"면서 통합진보당 후보의 선거운동을 하는 것에 개의치 않아 했다.


함께 전화 홍보를 하고 있는 박수민(35·여)씨 역시 스스로 선본에 찾아온 경우다. 지역구에 나오는 후보들 약력을 찾아보고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관과 비슷한 후보를 위해 자원봉사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단다.

"김성진 후보에 대해 잘 몰랐는데 프로필을 보니까 엘리트처럼 살 수 있었는데도 가시밭길을 걸어왔더라고요. 제가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분처럼 약자를 대변하면서 살아온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작은 힘이나마 도움이 되려고 왔어요."


박씨는 원래 정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97년 대선 때 저희 아버지한테 네가 투표를 안 해서 이회창이 떨어졌다고 혼났었어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정몽준이 단일화할 때는 정몽준이 잘 생겼으니까 정몽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죠."

노 대통령 탄핵 때부터 정치에 관심 갖기 시작한 박씨는 "이 정부 들어서 4대강 등 세금도 엉뚱한 데 쓰이고 민간인사찰 등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이 정권을 심판해야 되지 않나' 생각했다"면서 "오죽했으면 나 같은 사람도 나설 정도로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 같다"고 답답해했다. 한편 그는 "전형적인 보수층인 우리 부모님도 이번 정권에 실망해서 이번에는 야권후보를 뽑겠다고 하신다"면서 "우리 엄마, 아빠의 모습에서 희망을 본다"고 선거결과를 낙관했다.

한나라당 지지자가 야권단일후보 선거운동원 돼

 선거 막판에 접어들자 새누리당은 '국가안보'를 내걸고 지지층을 집결하고 있다.
선거 막판에 접어들자 새누리당은 '국가안보'를 내걸고 지지층을 집결하고 있다.김성진 선본
주안2동 선거운동원 김명순(54·여)씨를 따라나섰다. 김씨는 "원래 우리 다섯 식구 모두 한나라당 지지자였는데 그 당이 서민생활에 도움되는 것도 없는 것 같아서 젊은 사람들을 위해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야권으로 돌아선 이유를 설명했다. 

20년째 주안동에서 살고 있다는 김씨는 동네 곳곳에서 지인들을 만나 "형님, 4번!"을 외쳤다. 그는 "7,8년 전부터 남편 월급의 10%를 떼서 자원봉사하는 데 써왔는데 그 덕에 아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동네 경로당에서도, 마을 고물상 주인도 그를 반갑게 맞았다.

하지만 상당수 주민들은 무관심했다. 전파상을 하는 40대 남성은 "사는 게 복잡해서 누굴 찍을지 모르겠다"면서 "선거에 별 기대를 안 한다"고 말했다. 동네 놀이터에서 만난 70대 여성은 "선거공보물을 보니 4번이 독거노인을 위하는 것 같다"면서 김씨에게 "4번 최고! 최고!"라고 엄지손가락을 뻗쳐 들었지만 "그런데 다들 되고 나서는 약속 안 지키고 딴 짓하는 것 같다"면서 정치인에 대한 불신도 드러냈다.

새누리당의 지지자도 쉽게 만났다. 길거리 붙은 선거벽보를 유심히 보던 50대 남성은 "야권연대쪽은 복지공약을 남발해서 젊은 사람들이 세금을 많이 내야하고 손해다, 또 우리 같은 사람은 반공을 중시하는데 통합진보당은 그런 부분이 약해 새누리당이 좀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홍일표 후보쪽은 이날 현수막의 주요내용을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주안역 통과'에서 '국가 안보, 남구 발전 꼭 지켜내겠습니다'로 교체했다. GTX 공약의 타당성 문제가 논란이 되자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전략이라는 평가다.

야권연대의 성패, 투표율이 좌우

물론 야권의 결집도 눈에 띄었다. 한 60대 여성은 "당 이름만 바꾸면 뭐해? 사람을 싹 바꿔야지. 안상수 전 인천시장 때문에 인천이 세금만 많이 내고 부도 직전이라고 하잖아. 제대로 된 사람을 뽑아야해. 난 무조건 4번 찍을 거야"라고 강하게 얘기했다.

신기시장 앞에서 진행된 김성진 후보의 유세를 유심히 듣던 정호진(21)씨도 "야권단일후보를 뽑겠다"고 했다. 정씨는 "이번 정권을 심판하는 것과 함께 복지나 강정해군기지 등의 통합진보당 정책기조가 마음에 든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는 "여론조사가 뒤진다고 하는데 여론조사결과를 믿지도 않지만 부동층이 분명 야권으로 움직일 거"라면서 "전국에서 나온 수많은 후보 중 낙선대상자 10명에 홍일표 후보가 들어있던데 현명한 남구 시민들이 옳은 선택을 할 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홍일표 후보는 영리병원을 추진(의료 민영화 지지)했다는 이유로 총선유권자네트워크에 의해 집중낙선대상자 10인에 선정됐다. 이에 대해 홍 후보측은 "의료 민영화를 지지한 사실은 없다. '경제자유구역 내 외국 의료기관 건립'에 찬성했다는 것을 두고 의료 민영화를 지지했다고 확대 해석한 것은 정치적 음해로 매우 유감스럽다"고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새누리당 고정 지지층의 결집이냐 야권연대 프리미엄의 승리냐의 결과는 투표율이 좌우할 거라는 전망이다. 역대 선거 때마다 투표율 '전국 꼴찌'를 기록했던 인천지역에서도 투표율이 낮았던 인천 남구다. 시민단체를 비롯한 누리꾼들의 투표 독려 캠페인이 어느 정도 빛을 발할지. 이제 30시간 후면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통합진보당은 기초노령연금, 보육 등 보편적 복지공약들을 선보이고 있다.
통합진보당은 기초노령연금, 보육 등 보편적 복지공약들을 선보이고 있다.김성진 선본

#인천 남구 #김성진 #야권연대 #통합진보당 #홍일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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