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비닐 찢고 도망간 경비는 누구?

울산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 정문 앞 연좌 농성 중

등록 2012.04.11 14:35수정 2012.04.1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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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 노숙 농성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 노숙 농성변창기



"농성장 어제 사측의 침탈로 비맞으면서 농성장 지키고 있음. 투표 마친 해고자 동지들은 농성장 사수를 위해 빠르게 정문으로 모여 주세요."

11일 선거날. 오전 8시 38분 비정규직 노조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랍니까? 침탈? 투표하려고 나가는 길입니다. 투표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현대자동차 정문 앞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문 열고 밖에 나서니, 비가 내립니다. 다시 들어가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봄비가 내립니다. 이 봄비를 좋아할 사람도 있고, 달갑지 않거나 불편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봄비로 불편을 겪고 있는 사람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오전 9시 넘어 도착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 20여 명이 올라 앉아 있을 수 있는 자리가 깔려 있고, 그 위에 나무와 비닐이 널부러진 채 있었습니다. 6명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닫힌 경비실 앞에 기대 앉아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농성을 했고, 왜 했는지 지금 상황은 또 왜 이런지 궁금했습니다.

"9일(월) 아침 8시 30분경이었어요. 새로 임원이 된 지회장과 수석, 사무장이 우리 노조 사무실로 가서 업무를 보려고 들어 가는데, 경비가 못 들어가게 했어요. 왜 못 들어가게 하냐고 하니까, 해고자는 출입할 수 없다면서 들여 보내지 않았어요. 세 동지는 그때부터 정문 앞에 앉아 있었고, 조합원에게 문자를 보낸 거예요. 그 후 해고자 모두 정문 출입 보장하라며 이렇게 연좌 농성을 하고 있는 거죠."

어젯밤에 침탈이 있었다는데, 어떻게 된 거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저와 이야기를 나눈 비정규직 노동자는 피곤한 기색입니다. 감기에 걸렸는지,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어제 오후 비가 내려 우리는 비닐을 덮고 있으려고, 나무 토막으로 앉은 높이로 고정해서 안에 앉아 있었어요. 밤이 되니 졸리잖아요. 모두 누워 있었는데, 밤 11시 30분쯤 갑자기 후다닥 소리가 났어요. 비닐을 칼로 찢고 낚아채 듯이 확 잡아 당기고는 쏜살같이 경비실 쪽으로 달아나 버렸어요. 경비에게 항의했지만 소용 없었어요. 정문에 서는 경비랑 이런 일만 하는 알바 경비가 따로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밤새 이렇게 비만 피하고 있습니다."

 4월 10일 밤 11시 30분 비막이 비닐을 누군가 찢고 달아 났다. 그들은 쏜살같이 달려와 비닐을 칼로 그어 버리고는 경비실 정문 속으로 도망쳤다.
4월 10일 밤 11시 30분 비막이 비닐을 누군가 찢고 달아 났다. 그들은 쏜살같이 달려와 비닐을 칼로 그어 버리고는 경비실 정문 속으로 도망쳤다.변창기



지난번 서울에 상경했을 때, 일이 생각났습니다. 비정규직 노조에서 4박 5일 서울에서 노숙 농성이 잡혔다 해서 따라가 본 일이 있습니다. 저도 현대자동차 10년 비정규직으로 다니다가 정리해고당한 상태라 시간이 되면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 안 나지만 그때도 비가 내렸고, 날이 꽤나 추웠습니다. 우리는 비닐을 위에 치고, 침낭 속에 들어가 밤을 지새웠습니다. 밤 12시가 넘었는지 모르지만 누군가 달려와 칼로 비닐을 찟고 급히 도망가버렸습니다. 밤새 비를 피해 갈라진 비닐 속으로 들어가 앉아 있었습니다. 같은 일이 어젯밤 울산에서도 발생했습니다.

바로 옆에는 경비들이 나와 있었고, 문은 모두 닫혀 있었습니다. 옷이 남달라 올려다 보니 명찰에 '경비반장'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어젯밤 비닐을 자르고 도망 간 경비가 누구입니까? 또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 사람 누굽니까?" 저는 <오마이뉴스> 취재수첩을 보여 주며 물어 보았습니다. 그는 엄지 손가락을 보여 주며 말했습니다.

"이것 봐요. 보이죠? 난, 아침에 일어나 투표하고 출근했어요. 그래서 어젯밤에 일어난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요."  

함께 자리를 지키고 싶었지만 투표도 해야 하고, 야간 아르바이트도 가야 하니 안쓰러움을뒤로한 채 집으로 왔습니다. 12일 오후 1시 현대자동차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불법파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하청 연대회의'를 합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자동차 노조가 함께 나서서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불법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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