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차려 대한민국정신차려 대한민국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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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자라지 말아야 할 악성 종양들이 날마다 그 몸집을 키우고 있다는데 있다. 이는 필자가 앞서 말했던 정확한 진단이 결여되어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지금 이런 증상들에 둔감할 뿐만 아니라 이런 경고음들을 경솔하게 다루고 있다. - 책의 서문 중에서
이 책은 '우리가 아는 미국이 없다'로 국내의 독자와 언론의 반향을 일으킨 중견 사회학자 김광기의 저서이다. 전작이 미국이 왜 망해가고 있는지를 다루었다면 이 책에서는 세계의 위기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제시하고 있다. 일종의 전작의 속편인 셈인데 보다 더 구체적이고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최근 미국, 유럽발 경제 위기로 전 세계가 휘청거리고 있다. 이에 연동되어 있는 우리나라도 당연히 위기다. 우리처럼 대외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상관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런데 그 책임은 우리에게만 있을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의 1부는 지구촌을 휩쓸고 있는 위기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미국과 유럽이 왜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고 앞으로 다가올 위기로 세계통화의 문제, 식량위기, 민주주의의 증발 등을 들고 있다. 그리고 2부에서는 이러한 세계적 위기를 반면교사 삼아 대한민국이 정신 차리기를 호소하고 있다.
또 '미국 이야기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만큼 미국이 전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는데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의미이다. 저자는 왜 현재 미국이 무너지고 있는지 또 다른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미국이 망해가는 이유는 개인적인 잇속만 차리고 국가의 위기를 뒷전으로 생각한 '높으신 분들'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대형 은행을 감독해야 할 금융감독기관이 파생금융상품을 가지고 '장난을 칠'수 있도록 눈감아주고 저자가 악질 삼각편대로 표현한 대형금융회사, 해지펀드, 신용평가사 들이 갖은 속임수를 동원하여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도 외환은행 문제로 악명 높은 골드만삭스가 유럽의 여러 국가의 주요 요직을 장악하여 한 국가의 정책을 좌지우지 한다고 하니 이거 참 보통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대기업의 문제에 둔감한 공정거래위원회? 비슷하지 않은가? 이것이 어떤 나라나 있는 일이라고 넘어갈 수 없는 이유는 미국이 바로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국가이기 때문이다.
<정신차려 대한민국>이 매력적인 이유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진영논리에 기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저자가 서문에 밝힌 바와 같이 한쪽 진영에 묻어가면 아주 편할 수 있지만 학자의 양심 때문에 '불편부당'의 위치를 선택하고 있다. 학자답게 당연히 다양한 자료들을 인용하여 여러 현상을 분석하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정말 우리나라가 이대로 가면 큰일나겠다는 애정이 깔려있는 것 같다.
1부에서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전 세계적인 문제들에 대해 파헤쳤다면 2부에서는 세계화라는 명목 하에 무조건 '선진국'을 따라가려고만 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꼬집고 있다. 지금 현재 우리나라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문제, 즉 한미FTA, 식량주권, 부동산, 월세, 가계빚, 대학등록금, 사회복지제도 등의 문제를 총망라하여 다루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저자의 문제의식은 왜 외국 것, 특히 미국 것이라고 해서 그냥 따라가야만 하냐는 것이다. 이미 전작과 이번 책을 통해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은 물질적, 정신적으로 망해가고 있는데 왜 그 경로를 그대로 따라해야 하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에 붙은 프리미엄 때기를 강력히 권유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의료보험 민영화와 영리병원의 문제가 논의되고 있다. 이 둘의 명목은 더욱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 우리가 칭송하는 미국의 사례를 보자.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단순한 치통의 치료비가 없어 병을 키웠다가 사망하는 사례가 있고 저혈압으로 잠시 정신을 잃어 이틀만 입원해도 입원비가 1600만 원이 넘는 돈이 나온 사례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교포들은 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워 자녀들이 어딘가 아프면 빨간약을 발라준다는 소리까지 나온다고 하니 거참 웃지 못 할 일이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모든 것이 느리고, 복잡하고, 비싸고, 질이 낮은 미국의 방식을 따라하려고 하는지 저자는 의문을 품고 있다. 사실 이 문제는 미국의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이클 무어가 그의 작품인 <식코>에서도 지적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왜 굳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반대하는 이러한 정책을 채택하려고 할까. 무언가 수상하지 않은가? 모든 정책에는 수혜자가 있는 법이다. 모두를 포괄하는 정책은 불가능하다. 누가 이득을 얻는 것일까? 1%일까, 99%일까? 미국의 경우 병원과 약국의 로비스트들이 국회의원에게 법안을 찬성하는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뻔히 예상되지 않는가!?
연구자로서 가장 와 닿는 에피소드는 미국 것이면 사람이든 언어든 학문이건 환장하는 우리나라 대학의 문제이다. 이 책에 따르면 얼마 전부터 대학교의 국제화 등급을 올린답시고 각 학교들이 외국인 교수의 임용비율과 교수들의 외국 학술지 논문 게재율을 높이려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한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한다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 실상은 외국인 교수들을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에 일주일 정도 데려다 강의시키고 외국인 교수 강의율을 높이는 것으로 위장하고는 그들에게 한 학기나 1년치 월급을 통째로 주는 것이 현실이라고 한다.
필자의 의견을 덧붙이자면 영어강의도 문제가 아닐까? 도대체 하는 사람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학생도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강의를 왜 하는 것일까? 그게 정말로 학생들의 국제화에 도움이 된다고 여기는 것일까? 전공수업을 제대로나 들을 수 있는 것일까? 저자는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서 미국을 특별하게 보는 것이 너무 많이 존재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 책은 매우 전문적인 내용을 쓰고 있음에도 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와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이제 정말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허상뿐인 세계화가 얼마나 미련한 것인지, 우리가 주체성을 가지고 우리의 장점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어떤 위기에 처할 수 있는지 깨닫게 된다. 대한민국이 어떻게 정신을 차려야 하는지 왜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 되는지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