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모습. (자료 사진)
청와대
급기야 '학교폭력 없는 학교 만들기'가 국정 최우선 과제가 됐다. 최근 경북 영주와 안동에서 연이어 발생한 중학생 자살 사건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일갈이다. 그 때문일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일선 학교에는 공문 폭탄이 쏟아지고 있다.
학교폭력에 관한 학부모 교육을 강화하라는 것과 아이들을 대상으로 생명존중(자살예방) 교육을 실시하라는 것, 그리고 학교 내 위기학생관리위원회를 열어 고위험군 학생을 철저히 관리하라는 것 등인데, 공문의 말미마다 어김없이 기한 내에 실적을 보고하라는 내용이 덧붙여져 있다.
경험으로 미루어, 최소한 현재 들끓고 있는 여론이 잠잠해질 때까지는 일선 학교는 적잖은 공문에 시달려야 할 것 같다. 또, 당분간은 이번 사건들의 근본적인 원인과 해법에 관한 언론 등의 '훈계'가 뒤따를 전망이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 이내 수그러들겠지만.
한국 교육의 현실, 영혼 없는 교사와 자존감 잃은 아이들그런데, 국민 모두가 '교육 전문가'인 우리나라에서, 학교폭력과 학생들의 자살이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논쟁하는 건 언제부턴가 학교 안팎에서 식상한 주제이자 시나브로 부질없는 짓이 돼 버렸다. 심지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만큼 뒤엉켜 있다는 자포자기의 심정마저 읽힌다.
그러나 굳이 꼽자면,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학벌 구조, 가정교육의 부재, 사회경제적 양극화, 맹목적 소비를 부추기는 광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대중 매체 등. 어느 것 하나 간과할 수 없고 서로 연관된 탓에 쉬이 매듭을 풀 수 없는 것들이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관료도 교육청도 교사들마저도 따라서 '춤 춰야' 하는 획일적인 학교문화를 첫 손에 꼽고 싶다.
학교마다 적용받는 교육과정도 동일하고, 아이들이 배우는 교과서의 내용도 천편일률적이고, 평가 방식과 시기, 내용도 보편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똑같다. 학교에서의 하루 일과도 동일하고 입는 옷도 머리 모양도 잘못을 저질렀을 때 받는 벌조차도 거의 똑같다.
아이들만 그럴까. 교사들의 일상도 다를 바 없다. 상급 관청에서 내려온 공문에 따라 움직여야 하고, 주어진 지침에 조금이라도 엇나가면 징계를 감수해야 하는, 어느덧 상명하달에 익숙한 '영혼 없는' 존재가 돼 버렸다. 고백하건데 상관의 명령에 죽고 사는, 관료보다 더 관료 같은 교사가 부지기수다.
획일적인 학교문화에 시나브로 길들여진 아이들은 습관도 행동도 심지어 목표도 꿈도 거의 비슷하다. 부모가, 교사가 그려준 지도 밖으로 탈주하기는커녕 곁눈질조차 하지 못한다. 어릴 적부터 홀로 설 능력을 완전히 거세당했다. 어디에 속해 있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아이가 낯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기란 애초 불가능하다.
'영혼 없는' 교사들과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이 없는 아이들이 모인 학교에서 학교폭력이 끊이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곧, 관료제에 찌든 교사들과 자존감과 자기 효능감을 상실한 아이들을 치유하는 것이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본질인데, 정부는 매번 일방적인 지침을 학교에 강제하는 식으로 대응하려 한다.
획일화로 인해 생긴 문제를 획일적 방식으로 풀려는 것이다. 학교 현장의 복잡다단한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그저 '어명'이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정부 딴에는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고 정책에 반영한 것이라고 떠들어대지만, 그 말을 믿는 현장의 교사들은 단언컨대, 없다.
천편일률적으로 내놓은 정부의 '학교폭력 대책'설령, 정부가 강조하듯 수시로 공청회를 열어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면, 학교급과 도농 지역 간의 차이, 학군 등 지역적 특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디테일'한 대책이 나왔어야 한다. 학교마다의 특성에 맞는 다른 지침이 내려져야 하지만, 늘 그렇듯 형식도 내용도 똑같다. 말하자면, 학생보다 교사가 많은 농어촌 학교에 '강남' 학교에 부합할 만한 지침을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꼴이다.
아무리 검증된 제도라도 모든 학교에 다 좋을 수는 없다. 이태 전 아이들의 학습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로 전국적으로 의무 실시된 교과별 '집중 이수제'가 꼭 그렇다. 무조건 한 학기에 8과목 이상을 개설할 수 없도록 못 박은 것인데, 국영수처럼 매 학기 이수해야 하는 도구과목과 체육을 제외하고는 3년 동안 배울 것을 한 학기에 끝내도록 돼 버렸다.
지속적인 훈화와 연습이 필요한 도덕과 음악, 미술 과목이 한 학기로 끝나면서, 한때 아이들과 교사들 사이에 '예술적 감성의 속성 재배'라는 우스갯소리가 떠돌아다니곤 했다. 교과 특성과 학교의 실정에 따라, 또 아이들의 기호와 성향에 따라 충분히 융통성 있게 운영할 수 있었음에도 '필수'로 못 박아버린 탓이다.
이로 인한 이런저런 부작용 또한 예측됐는데 철저히 묵살됐다. 서슬 퍼런 학벌구조가 온존한 상태에서 과연 아이들의 학습 부담이 줄어들까라는 회의는 그렇다쳐도 집중 이수제로
담임제 역시 학기 단위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 교사들의 수업 시수가 들쭉날쭉해지고 여러 학교를 돌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겸임 교사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 등 이들로 인한 학교 안팎의 혼란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제 버릇 남 못 주는 법. 지난 2월 6일 정부가 모든 학교에 내린 '학교폭력 근절 종합 대책'도 언뜻 그럴 듯해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실효성이 없는 것들 태반이다. 그 중 대책의 핵심이랄 수 있는 '복수 담임제'는 실효성 운운하기조차 부끄러울 만큼 생뚱맞다. 이를 접한 교사들 대부분은 쓴웃음 지으며 황당무계하다는 반응이다.
'한 학급 두 담임'의 역할이 제대로 나눠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국의 모든 학교에 느닷없이 도입되다 보니 혼선이 이만저만 아니다. 담당 교과도, 연령도, 성향도, 심지어 성별도 모두 다른 두 담임이 일사불란하게 팀워크를 이뤄야 하는 건 그렇다 쳐도, 아이들이 겪을 혼란과 담임 업무의 배분과 책임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없다.
차라리 복수 담임에게 줄 담임수당을 학교마다 전문 상담교사를 확충하는 데에 활용하고, 단지 몇몇 학교에서 만큼이라도 학급 당 학생 수를 줄이는 데 쓰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아직 상담교사는커녕 상담실도 마련돼 있지 않은 학교도 적지 않은 판에, 뜬금없는 '복수 담임제'라니. 많은 교사들의 비웃음을 사고 있다는 걸 정부는 정녕 모르는 걸까.
정부 대책, 실효성 없는 '엉뚱한 것'들이 태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