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통합당이 선거패배의 악몽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다시 언론의 부정적인 보도에 휘청거리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4년 총선 이후 열린우리당 시절에도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던 일이다. 민주통합당은 다 이길 것으로 기대했던 이번 선거만 패한 것이 아니라 열린우리당 시절에는 전패한 기록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지지도는 2004년 총선 직후 외에 19%를 넘어본 적이 없다. 유일하게 이긴 선거가 MB심판론이 확산되었던 2010년 지방선거이다.
물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이 선거에 패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한나라당이든 새누리당이든 우리나라 보수정당은 신이 내린 정당이기 때문이다. 검찰, 사법부, 언론, 방송, 재벌, 국정원, 국세청 등 힘 있는 모든 세력이 새누리당을 중심으로 뭉쳤는데 민주당이 어떻게 이겨보겠는가. 그래도 요즘엔 시민들이 세력화되고 SNS로 무장하면서 새누리당이 점점 더 버티기 힘든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선거가 끝나면 유야무야 넘어갔던 부적절한 공천이 시민들의 끈질긴 문제제기로 바로잡아지고 있는 것이 참으로 엄청난 변화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무리 시민의 힘이 강해졌어도 민주당이 혁신하고 대안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시민들이 표를 줄 이유가 없다. 민주당이 합치고 또 합쳐도 지리멸렬한 가장 큰 이유는 거버넌스 구조에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한명숙 대표의 화합의 리더십이 위기상황이나 전투에는 부족함이 많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리더십의 문제로만 치부하기에는 더 큰 시스템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말이다. 이 문제는 열린우리당 소통구조의 문제와 언론전략 부재를 지적했던 <마법에 걸린 나라>에서도 미처 지적하지 않은 것인데, 필자도 이번 총선 과정에서 이 문제를 보다 명징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거버넌스(협치)란 "인간행위를 조정함으로써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신뢰, 규범, 네트워크와 같은 사회적 조직의 특성"이라고 정의된다. 한 마디로 정당이 일 잘하고 유능해지도록 만드는 시스템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새누리당의 선거 승리와 민주통합당의 선거 패배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거버넌스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비대위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비대위에서 전권을 가지고 당무와 공천, 선거전략을 진두지휘했다. 이런 거버넌스에는 통일성과 효율성이 따른다. 원래 보수집단은 1인 지도자를 정점으로 위계적인 구조를 갖추기에 효율적이다. 박정희의 근대화 신화도 이런 시스템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구조에선 일사불란한 상명하복의 기제가 작동한다.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의 유착관계는 당을 위한 의원 개인의 희생이 보상받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의원이 자신의 이미지만을 생각한다면 강성 싸움꾼으로 나서기보다는 합리적 이미지를 간직하는 게 낫다. 싸움꾼으로 변했을 때에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새누리당 의원들이 기꺼이 당을 위해 망가지는 걸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그렇게 하다 상처를 입으면 보수언론이 인터뷰를 통해 해명할 기회를 주고 충분히 이미지 회복을 시켜주기 때문이다. 당에서는 자리로 보상받는다. 전여옥도 박근혜 위원장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이번 총선에서 무난히 공천을 받았을 것이다. 이번에 공천에서 탈락한 친이 공격대들도 줄을 잘못 서서 공천에 탈락한 것이지 공격수 이미지 때문에 탈락한 건 아니다. 한마디로 새누리당은 개인의 이익과 당의 목표가 합치하는 보상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사익으로 뭉친 보수집단은 정권을 놓치면 어떤 이득도 취하지 못한다는 걸 알기에 이들에게 선거패배란 곧 죽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죽기 살기로 선거에 이기기 위해 매진한다. 당원뿐만 아니라 어버이연합을 비롯한 지지자도 그렇다. 물론 그 과정에 참여하면 물질적 보상도 따를 것이다. 서로 소통을 하지 않아도 각자의 자리에서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조선일보>를 필두로 하는 보수언론이 뛰어난 전략기획의 역할을 해준다. 보수집단은 지도자의 리더십과 추종자의 팔로십이 이상적으로 결합되는 거버넌스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즉, 새누리당에서는 당대표의 성공이 곧 의원 자신과 지지자의 성공이 되는 거버넌스를 갖췄다.
그러나 이런 효율적인 집단에도 문제가 있으니 1인 독재가 성행해 자정능력이 없다는 점이다. 엄청난 권력과 자원을 가진 거대 집단은 장애물이 나타나면 가던 속도를 멈추고 방향을 틀기 어렵다. 그동안 해온 관성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기에 이들은 치명적인 위기에 부닥치면 침몰하게 되어 있다. 특권구조상 치명적 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나는 한나라당을 타이타닉에 비유한 바 있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엔진이 고장 나지 않는 한 웬만한 장애는 아랑곳하지 않고 질주한다. 민주당이 이들에게 결정타를 안기기 전까진 타이타닉은 쉬운 항해를 계속할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새누리당을 따라잡기에는 역량이 한참 뒤떨어진다는 데에 있다.
민주통합당은 열린우리당 때부터 집단지도체제를 채택했다. 당시 모든 학자들의 주장은 대통령이 당을 사유화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러한 주장을 존중해 대통령 당선 직후 치러진 2004년 총선의 공천에도 일체 개입하지 않았고 당정분리를 존중했다. 물론 당과 정책적 협의를 하는 당정협의는 매주 1회 이상 했을 만큼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당과 협의를 강화했다. 당정분리 때문에 열린우리당이 힘이 없었다는 주장은 더 이상 하지 않기 바란다. 노대통령은 당권을 의원과 당원들에게 돌려주었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은 창당에서 해산되기까지 4년 남짓한 기간 동안 무려 11명의 당의장과 5명의 원내대표를 배출했다. 이런 정당에서 당의 리더십이나 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가 리더십의 실패를 가져온 것이다.
거버넌스의 디자인이 애초부터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집단지도체제는 당대표 경선에서 패배한 경쟁자들이 최고위원이 되어 함께 지도부를 구성한다. 아무리 민주주의 정당이라도 소소한 당무마저도 경쟁자와 협의해야 한다면 되는 일도 안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에서 정당의 탄생은 사람의 생각과 의견이 다양해 협의가 불가능하므로 돌아가면서 집권하라고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주류, 비주류, 계파 할 것 없이 당대표 경선에 참여해 1등과 차점자들이 모여 집단지도체제를 꾸리니 지도부가 동상이몽에 불협화음을 내는 건 당연하다.
원래 집단지도체제란 당대표와 최고위원이 한 배를 탄 공동운명체가 되어야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1인에게 집중된 권한을 최고위원과 나눴으니 공동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고 실패하면 공동으로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집단지도체제는 당대표가 사임하면 2등 최고위원이 당대표를 계승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최고위원들이 당대표의 성공을 위해 협조할 동기가 없어진다. 당대표가 실패하면 2등이 자동으로 당대표가 되는 상황에서 겉으로 표현은 못해도 최고위원들은 당대표의 사임을 은근히 기다리게 되지 않을까. 인간이라면 이런 욕심을 갖는 게 자연스럽다. 민주당의 최고위원의 입장에서는 당대표의 실패가 곧 자신의 성공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따라서 최고위원이 당대표를 도와 헌신하는 게 아니라 기회만 닿으면 당대표를 흔드는 해당 행위를 하게 된다.
의원도 마찬가지이다. 당을 위해 새누리당의 공격수가 되면 수구언론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된다. 그러면 어느 덧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빠진 진보언론에게도 공적 1호가 된다. 그러면 당내 의원들이 당을 위해 헌신한 공격수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선 긋기를 하게 된다. 김용민의 정치실험이 실패로 끝난 건 바로 이런 구조 때문이었다. 내가 홍보수석으로 있을 때 보수언론과 싸운 이유는 아무도 보수언론의 부당한 보도와 싸울 생각을 하지 않아 대통령이 직접 싸우고 있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나는 돌아갈 대학이 있으니 나의 이미지는 망가져도 진보진영을 위해 헌신하자며 내가 그 싸움을 대신 맡았다. <조선일보>와 한나라당은 누구를 무너뜨리면 게임에서 이기는 지를 정확히 알고 있다. 내가 '조동문'의 주 타겟이 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들이 나를 공격한 보도 중 정확한 건 단 한 건도 없었다. 모두 왜곡 오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언론을 그걸 기정사실화하는 기사를 썼고 열린우리당에선 공개적으로 나의 사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김용민에 대한 민주당의 태도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진보진영에선 진영을 위해 희생한 사람은 바로 그들에 의해 마녀사냥을 당하기 때문에 아무도 희생하려 하지 않는다. 몸 사리기를 통해 좋은 이미지를 간직해야 살아남기 때문에 아무도 싸우려하지 않는다. 이번 총선에서도 새누리의 말도 안되는 물타기 공격에 민주통합당 누구도 나서서 싸우지 않았기에 패배한 것이다.
그나마 저격수 정봉주 의원이 인기를 얻게 되고 곽노현이 부당한 검찰의 기소에도 불구하고 교육감직을 유지하게 된 건 SNS와 <나꼼수> 덕분이다. 아직도 민주당 의원은 여전히 보수언론의 눈치를 살피며 누구도 선뜻 나서 싸우려 하지 않는다. 철저히 자신의 이익에 충실한 것만이 민주당에서 살아남는 지혜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진영을 위해 헌신한 사람은 혼자서 그 상처를 다 뒤집어써야 한다는 보상구조가 민주당 내에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 뿐인가. 당 지도부를 비난하면 보수언론에 의해 칭찬받고 정치불신에 가득한 유권자들의 인기마저 얻는다. 당의 구조와 규범이 해당행위를 부추기는 것이다.
지난 총선 공천 과정에서도 민주당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것은 한명숙 대표의 잘못된 공천이 아니라 공천에 불만을 품은 최고위원들의 당대표 흔들기였다. 실제로 문성근 최고를 제외하고는 각 최고위원은 자신의 측근이 한 명 이상 공천심사위원으로 들어가 자기 계파를 열심히 챙기는 일을 했다. 이 나눠먹기 공천이 국민들에게는 혐오감을 주었다. 보좌관의 잘못으로 1심에서 유죄를 받은 임종석 의원의 공천이 반드시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재판결과가 상식에 부합하지 않고 정치탄압으로 이해할만한 여지도 있다. 문제는 이를 빌미로 다른 최고위원들이 뇌물전력이 있거나 청목회에 연루된 후보를 공천하겠다고 우긴 데에 있었다. 이 때문에 강철규 공천심사위원장이 심사를 중단하고 집으로 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 문제에 책임이 있는 최고위원들이 오히려 당대표의 공천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혔다. 민주적 절차가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나마 민주적 절차가 낫다고 믿기에 따르는 것이다. 그 결과에 불만이 있다고 최고위원이 직을 사임하거나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건 민주정당이라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최고위원들은 챙길 것 다 챙기고 오리발 내미는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공동책임의식이라곤 전혀 없었다. 이건 민주적인 게 아니라 정당이기를 포기한 방종의 극치이다.
정당은 민주적 절차와 규칙을 존중하면서도 동시에 최소한의 규율을 강제해 해당행위를 엄격하게 다스린다. 정당은 기본적으로 다른 정당과 경쟁을 하기 때문에 다른 목소리가 자칫 경쟁정당에게 이득을 주고 자당에겐 치명적인 상처를 안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원이 해서도 안될 일을 당대표와 공동책임을 져야할 최고위원이 한 것이다. 열린우리당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당대표가 상대정당의 공격을 받으면 보호해주기는커녕 내부에서 사퇴하라는 압박이 더 심했다. 보수정당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쉬운 상대가 없는 것이다.
이번 선거 패배 후에도 민주당은 한명숙 대표를 희생양 삼아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고 있다. 거버넌스를 개혁하지 않고 이대로 간다면 민주당은 올 대선과 그 이후 선거에서도 희망이 없다고 단언하다. 가장 중요한 건 당대표의 이익과 최고위원의 이익이 일치하도록 거버넌스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다. 그리고 당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보상해주는 규범을 만들어야 한다. 민주통합당은 6월 전당 대회 이전에 반드시 새로운 거버넌스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여기엔 세 가지 대안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당대표 경선과 최고위원 경선을 분리하는 것이다. 따라서 당대표가 경쟁자가 아닌 당선된 최고위원들과 지도부를 구성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원래부터 논의되었으나 당대표와 최고위원 경선을 합치게 된 이유는 정치자금법 때문이라고 들었다. 당대표만 선거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현행법 때문에 최고위원에 출마할 사람은 선거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법개정이 이루어지기 전까지 가능한 대안이 아니다.
둘째는 당대표와 최고위원의 러닝메이트제를 하는 것이다. 주류와 비주류이든 온건파와 개혁파이든 당내 파벌이 두 개 정도 있는 건 민주적인 정당운영에 바람직하다. 새누리당처럼 계파가 친이 친박과 같이 사람 중심으로 나뉜 건 전근대적이지만 두 개의 계파가 존재하는 건 지도부 견제를 위해서나 지도부가 실패했을 때 대안세력이 된다는 점에서 정당의 민주화를 위해 바람직하다. 이에 비해 민주통합당은 수많은 계파가 춘추전국 시대를 방불케 하니 오합지졸로 보일 뿐이다.
당대표와 최고위원 선출을 러닝메이트제로 하면 이념을 중심으로 각 계파의 질서 있는 합종연횡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수파가 당권을 잡게 되면 소수파는 지도부를 견제하는 일을 하게 된다. 다수파가 되기 위해 폭넒은 연합을 위해 경쟁할 것이므로 다수파와 소수파의 경쟁이 죽기 살기 싸움보다는 느슨한 연대가 될 수도 있다. 이렇게 해서 당권파가 선거에 실패하거나 책임질 일이 있으면 지도부가 함께 공동사임을 하고 다시 전당대회를 거쳐 소수파가 득세해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는 게 맞다. 이전 지도부가 중도사퇴하면 전당대회 없이 차점을 얻은 지도부가 자동으로 구성된다. 실패한 지도부는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집단지도체제에서 여론이 불리하면 당대표를 비판하며 중간에 혼자 사임해 책임을 모면하고 대중적 인기를 얻어 다음 지도부 선거에 출마하는 걸 허용한다면 무책임의 전형인 정당이 만들어질 것이다. 따라서 책임과 권한도 분명히 하고 다음 전당대회에서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집단지도체제의 거버넌스 구조가 필요하다.
셋째 대안은 전당대회에서는 당대표만 선출하고 지도부 구성을 전적으로 당대표에게 맡기는 단일지도체제를 택하는 것이다. 당대표에게 전권을 줘도 자기 사람으로만 지도부를 구성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염려할 필요는 없다. 민주적인 정당에서는 광범위한 지지기반이 있어야 당대표로 성공할 수 있기에 자신의 경쟁자였던 다양한 계파의 후보를 끌어들여 승자연합을 구성하려 할 것이다. 이 때 최고위원으로 지명된 사람은 당대표 사임 시 함께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당대표와 운명을 함께 할 사람들로 지도부가 구성될 것이다. 당대표 경선에서 2위를 차지한 사람(현 당대표의 경쟁자)은 백의종군 하다가 현당대표가 사임하게 되면 새로운 당대표가 되어 지도부를 구성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선거가 패할 때마다 임시 전당대회를 할 필요도 없고 당내 소수파는 당권파를 견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견제의 도가 지나쳐 해당행위까지 한다면 당윤리위에 회부하거나 여론의 비판이 따를 것이므로 당내갈등이 염려할만한 수준으로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대안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개인의 이익과 당의 이익이 일치하도록 보상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동안에는 당에 기여한 사람보다는 당을 비판하며 흠집 낸 사람이 보수언론에 의해 칭송받고 대중적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런 관행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한다. 앞으로는 SNS의 확산과 시민의식의 성장으로 과거와 같지는 않겠지만 정치불신이 높은 우리 풍토에서는 여전히 지도부를 비판하는 사람에게 시민들은 열광하게 되어 있다. 이런 행위를 당대표와 운명을 같이 하는 지도부에서 단호히 질책하고 당을 위해 헌신한 사람을 보상해준다면 민주통합당도 경쟁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문성근 대표대행은 지난 선거 승패요인을 분석하는 과제를 당 연구소에 주문한 바 있다. 민주통합당의 거버넌스 구조 개혁을 위한 연구도 시작하기 바란다. 따라서 민주통합당의 새 비대위원장을 맡게 될 사람은 6월 전당대회 이전에 당헌당규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거버넌스 구조가 합리적으로 만들어진다면 이번 대선에서 민주통합당이 새누리당을 이기는 것도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민주통합당이 유능한 정당으로 태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게 거버넌스 시스템의 개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blog.daum.net/leadershipstory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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