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늪에 매몰된 노동자들 안타까워"

백기완 선생 민중미학 특강 3강 '버선발 이야기'

등록 2012.04.23 09:38수정 2012.04.23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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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백기완 선생님 버선발 이야기를 들려주고 계신 백기완 선생.

백기완 선생님 버선발 이야기를 들려주고 계신 백기완 선생. ⓒ 이명옥


"우리는 남의 나라 문학인 세계문학을 읽고 들으며 자랐잖아. 그 세계문학이라는 것은 민중들에게 필요한 민중의 정서를 깨우는 생명력이 없어 우리 무지렁이들이 살아 온 이야기 속에 진짜 민중의 예술이 있고 삶이 있다 이거야. 내가 이런 이야기를 스무 살 적부터 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았어. 그래서 여든이 넘어 처음으로 '민중미학 특강'이라는 것을 하는데 정작 들어야 할 노동자들이 잘 뵈지 않아. 노동자들이 힘들고 바쁘다는 거 알아. 밥벌이도 해야 되고 투쟁도 해야 하고. 하지만 그렇게 일상의 늪에 매몰되어 일상성에 너무 얽매어 있어서는 안 된다 이거야. 자기의 역사적 자리가 어디인지 모르는 단세포적 사고 가지곤 안 돼!"

백기완 선생은 정작 '민중미학 특강'을 들어야 할 노동자들이 바쁨을 핑계로 특강을 듣지 않는 현실을 무척이나 안타까워했다. 노동자들이 밥벌이와 투쟁에 앞서 정신적 뿌리를 튼실히 내리길 원하는 선생의 안타까운 심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4월 3일 첫 강의를 시작한 백기완 선생의 '민중미학 특강'이 어느덧 4번째 특강을 앞두고 있다. 선생은 특강을 시작하는 첫 시간부터 이 특강은 우리 노동자 농민 무지렁이들의 이야기며 민중들의 삶이고 우리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무지렁이라고 불리는 민중들, 지금 대한문 앞에,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에, 시청 앞 광장에서 힘들게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 선생은 그들에게  민중이 지닌 끈질기고도 아름다운 생명력, 들풀처럼 끈질긴 투혼을 불러 일으키고 뚤매(부활)의 정신을 일깨워 힘을 실어주고 싶어한다.

a 백기완 선생님 백기완 선셍님의 강의 모습을 박재동 화백이 담아냈다.

백기완 선생님 백기완 선셍님의 강의 모습을 박재동 화백이 담아냈다. ⓒ 이명옥


"우리 산과 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진달래꽃 말이야. 그 꽃이 생명력이 아주 강해. 씨앗 이 어쩌다 바람에 날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면 꼭 한 송이 꽃을 피우는 경우도 있어. 그런 꽃을 보면 새가 그 꽃을 따먹으면 어쩌나 겁이 난다니까. 진달래는 무지렁이들의 한의 정서가 담긴 사랑의 상징이거든."

투쟁 현장에서 호랑이 같은 기상으로 죽비를 내려치던 선생의 뚤매(부활) 정신과 투혼을 불러일으킨 힘은 선생이 지닌 민중적 정서와 무지렁이들에 대한 연민 속에 담긴 예술혼과  사랑의 힘이 아니었을까.

민중미학 세 번째 '버선발 이야기'는 무지렁이 중 가장 크지만 가장 서럽고 가장 쓸쓸한 버선발이라는 머슴 이야기다. 버선 한 켤레나 발싸개를 할 자투리 천조각 하나 없어 사철 내내 맨발(벗은발)로 살아야 하는 깡머슴의 서럽고 쓸쓸한 이야기인 것이다.

깡머슴(대물림 머슴)의 자식인 버선발은 어머니의 "땅 한 뙈기만 있으면 그 땅에 푸성귀라도 갈아먹을 수 있을 텐데...."라는 한 맺힌 잠꼬대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 버선발이 '어머니 마음을 아프게 한 맺힌 땅과 거친 돌 짝을 꾹꾹 눌러 밟고 다닐 때마다 흙과 자갈, 바위덩어리가 콩가루가 된다. 어머니의 한 맺힌 눈물 같은 냇물이나 강물을 만날 때도 어머니 눈에서 눈물을 흘리게 만든 한을 생각하며 꾹꾹 눌러 밟다 보니 물조차 말라버려 맨 땅이 된다. 버선발은 모든 싸움과 눈물은 땅을 많이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땅에 한 맺힌 사람들 한을 풀어주려고 한다.


땅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서해를 마주 바라보고 한 줄로 서시오. 단 손에 작대기 하나만 들고 오시오. 내가 서해 바다를 땅으로 만들어 줄 터이니 가지고 싶은 만큼 땅에 작대기를 꽃아 땅을 가지시오'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작대기를 가지고 와서 한 줄로 늘어서지 버선발이 바닷물을 '콱' 하고 밟으니 바닷물이 하늘로 솟구쳐 올라 서해바다가 넓은 땅이 되었다. 땅이 생기자 힘 센 머슴과 부자들이 땅을 많이 차지해 농장도 만들고 나라도 만들면서 힘이 약한 사람들을 다시 머슴으로 만든다.

실망한 버선발은 고향의 어머니를 찾아갔지만 고향의 옴팡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노비였던 버선발의 어머니는 부자 황가에게 한마디 따지려다가 목이 잘려 죽은 것이다. 너무나 원통한 버선발의 어머니가 차마 눈을 감지 못하고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치솟아 오르자 황가네 집이 불타버렸고 한을 품은 어머니 시신은 목이 없는 돌조각이 되어 있었다. 버선발은 사람들 속에 들어가서 사람들과 함께하며 사람을 변화시켜야 세상이 변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버선발은 힘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사람이 변해야 하는구나. 내가 먼저 하나의 씨앗이 되고 씨앗의 목마름을 축여주는 한 송이 눈송이가 되자 하며 눈물을 흘리자 얼음이 녹아 다시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 된다.

a 백기완 선생과 우희종 교수 민중미학 특강 3강 '버선발 이야기'가 끝나고 두 분을 모셔 사진을 찍었다.

백기완 선생과 우희종 교수 민중미학 특강 3강 '버선발 이야기'가 끝나고 두 분을 모셔 사진을 찍었다. ⓒ 이명옥


백 선생의 버선발 이야기를 들은 우희종 교수는 "백기완 선생의 이야기에는 진정한 아름다움이 들어 있다"며 다음과 같은 글로 놀라움을 표현했다.

'내가 오늘 백선생님의 버선발 이야기를 들으면서 놀란 것은 마치 '백년동안의 고독'으로 잘 알려지고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사람인 마르께스의 소위 마술적 리얼리즘의 또 다른 이야기를 듣는 듯 했기 때문이다. 무지렁이의 분노의 눈길로 인해 돈만 아는 졸부의 집이 불타버렸다던지, 강물이 하늘로 거꾸로 흐르고 저항의 미학이 목잘린 석상으로 상징되는 등, 수많은 상징과 은유들... 백선생님의 문학적 면을 경이로운 마음으로 발견하고. 또한 내가 그동안 백 선생님에게 느끼던 종교적 모습(당신은 기독교건, 불교건 종교에 대해서는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지만)의 정체를 보다 명확히 알게 되다. 이 땅의 저항의 역사와 맥을 이어가는 적자로서 그는 민중을 중앙 둔 종교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가 이처럼 인간을 사랑하사 급기야 예수의 드라마가 펼쳐지고, 불교가 제석천의 간청으로 고통받는 중생에 대한 석가의 자비/애정으로 펼쳐졌듯이, 불의와 억압에 대한 백 선생님의 불굴의 저항 정신은 '힘없고 소외된 무지렁이 민중에 대한 애정'으로 이루어진다. 백선생님의 민중미학(내가 보기에는 민중종교)은 그런 면에서 종교적 맥을 지니고 있다.'

선생은 무지렁이들의 이야기야말로 대중을 깨어나게 할 수 있는 알짜(실체)이고, 맹마루(절정)이라고 말한다. 선생이 들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수많은 상징들이 들어있다. 물이 하늘로 솟구치는 것과 목이 없는 돌조각은 민중의 끈질긴 저항의식과 뚤매(부활)을, 버선발이 밟으면 콩가루처럼 부서지는 바위와 사라지는 물은 민중들의 투혼과 분노의 힘을 상징한다.

권력을 지닌 자들이 파괴하고 착취하는데 힘을 사용하는 반면, 무지렁이 버선발은 가난하고 힘없는 자들을 위로하고 불의에 맞서 저항하는 데 분노와 힘을 사용한다. 진정한 민중의 분노의 미학의 힘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선생이 왜 지금 투쟁의 현장에서 힘겹게 싸우는 해고노동자들과 수많은 비정규직들에게 민중미학 특강을 들으라고 하는지는 선생의 강의를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a 백기완 선생님과 박재동 화백 '백기완 선생의 민중미학 특강  3강 '버선발 이야기'를 들으러 온 박재동 화백

백기완 선생님과 박재동 화백 '백기완 선생의 민중미학 특강 3강 '버선발 이야기'를 들으러 온 박재동 화백 ⓒ 이명옥


강의를 들었던 박재동 화백은 선생의 모습과 이야기는 그 자체로 시적인 아름다움과 감동이 있다며 감동을 작품으로 담아 내기도 했다.

그날 선생은 자연색 그대로의 흰 무명 바지저고리를 입고 강의를 했다. 선생이 입고 계셨던 표백되지 않은 자연색이 바로 흰색의 바라지(원형) 이라고 한다. 아마 선생이 그렇게도 민중들에게 전하고 싶어하는 무지렁이의 삶, 슬픔. 한 속에 담긴 끈질긴 생명력과 투혼은  선생이 80 평생 입고 지낸 탈색하지 않은 흰 무명 저고리에 담긴 민중적 정서와 꿈의 바라지(원형)인지도 모른다.

a 백기완 선생 <민중미학 특강>  4강 '골굿떼 이야기'

백기완 선생 <민중미학 특강> 4강 '골굿떼 이야기' ⓒ 이명옥


제4강 일하는 사람들의 분노의 미학의 맹마루(정수)인 '꼴굿떼(온몸이 꼴리는 놈들이 모여 굿하는 떼거리란 뜻) 이야기'는 이 어두운 시대를 갈라 칠 만고의 빛나는 새뜸(새소식)이다.

분노의 미학이면서 민중이 띄우는 새뜸은 무엇인지 함께 땅불쑥하니(특히) 노동자, 노동운동하는 사람, 민중이 역사 발전의 주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꼭 들어야 한다.

노동자들은 왜 일을 해도 해도 제대로 살 수 없는지, 그 까닭을 '꼴굿떼 이야기'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제대로 분노하고 당당하게 노동자의 권리를 찾고 싶은 사람들은 모두 와서 듣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 백기완 선생님의 민중미학 특강 4강 < 골굿떼 이야기> 는 4월 24(화)일에 열립니다. 백기완 선생님의 <민중미학 특강> 은 모두 10강이며 매주 화요일 늦은 7시 30분 경향신문 5층에서 6월 12일까지 진행됩니다.
수강료는 없으며 노나메기 문화의 집 벽돌쌓기 (한장 -오천원)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백기완 선생님의 민중미학 특강 4강 < 골굿떼 이야기> 는 4월 24(화)일에 열립니다. 백기완 선생님의 <민중미학 특강> 은 모두 10강이며 매주 화요일 늦은 7시 30분 경향신문 5층에서 6월 12일까지 진행됩니다.
수강료는 없으며 노나메기 문화의 집 벽돌쌓기 (한장 -오천원)에 참여하시면 됩니다.
#민중미학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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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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