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지은 닭장장인어른과 이틀 꼬박 걸려 새로 만들었다
서재호
그래도 나는 더 욕심이 생긴다. 그 욕심은 '토종닭'을 키우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여러 날 전부터 합천 삼가에서 토종닭을 키우는 분께 각별히 부탁해 놓았던 터다. 부탁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조르고 또 졸랐다. 그렇게 조른 후에 기다렸는데 마침 기다리던 전화가 온 것이다.
내가 다른 건 몰라도 토종닭에 대해서는 좀 집착을 하는 편이다. 몇 년 전부터 재래육계도 키워보고 토종닭도 키워봤다. 자연히 비교가 되었다. 덩치는 토종닭이 훨씬 작다. 손님이 와서 닭백숙이라도 할 경우에는 양이 적어 좀 아쉽긴 하다. 근데 아쉬운 건 딱 그것 하나, 덩치가 좀 작다는 것 말고는 육계와 토종닭은 비교가 안 된다.
뭐가 다르냐고? 캬~ 이거 뭐. 어떻게 이야기해야 하나. 어떤 광고처럼 "정말 좋은데 뭐라고 설명할 방법이 없네!" 정도다. 그래도 좀 표현하자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모두 다 나열할 순 없으니 오늘은 딱 두 가지만 말해보자.
첫째로 토종닭은 영리하다. 내가 영리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반문할지 모르겠다.
"뭐. 영리하다고? 그래 봐야 '닭대가리' 아닌가?"물론 닭대가리는 맞다. 그래도 수준은 좀 다르다. 그 수준을 예로 들면 이런 거다. 집에서 키우는 닭은 대체로 주인을 알아본다. 토종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똑같은 집주인이라도 사람 봐 가면서 대한다. 닭장 안으로 문을 열고 쓰~윽 들어갔다고 치자. 닭들은 여자 남자 구분할 줄 알고 어린이와 어른을 구분해서 대한다. 어떻게 해서 구분을 해내는지는 모른다. 그냥 구분한다.
애들이나 여자한테는 좀 만만하게 대한다. 어떨 때는 수탉이 은근히 엉겨 붙으려 할 때도 있다. 자기 '나와바리'라고 그런다. 그런 수탉도 남자 어른한테는 조심한다. 잘 까불지 않는다. 사실 토종닭, 수탉은 한 인물 하긴 한다. 크고 붉은 닭벼슬에 검고 긴 꼬리. 윤기나는 털. '화투장'에 나오는 그 캐릭터 그대로다. 목에 힘을 주고 "고, 고, 고" 소리를 내며 천천히 발을 내디딜 때는 제법 기품이 느껴진다. 목덜미에서 날갯쭉지를 지나 꼬리로 이어지는 라인이 살아있다. 폼 난다.
인물값 하는 이런 수탉은 보통 한 마리가 암탉 15마리 정도를 거느린다. 그게 닭들의 적당한 암수 비율이다. 만약 이 비율이 깨어지면 힘든 상황이 생긴다. 예를 들어 수탉 1마리에 암탉이 5마리뿐이면 난리가 난다. 수컷의 요구를 암컷 다섯 마리가 감당하기 위해 엄청나게 혹사당한다. 대단한 수탉의 정력이다. 좀 부럽다.
더 부러운 건 수탉의 영리함이다. 토종닭을 가만히 살펴보면(이건 내가 키웠던 토종닭들만이 아니라 토종닭은 키웠던 대개의 농가 공통의 평가임) 바로 알 수 있다. 이 한 마리의 수탉은 15마리 정도의 암탉을 기가 막히게 잘 관리(?)한다. 진짜 관리한다. 바람둥이 남자들 '어장' 관리하듯이 관리한다.
몇 년 전에 맛있는 김밥 찌꺼기 같은 걸 주고 살펴본 적이 있다. 수탉은 자기 앞에 먹이가 와 있어도 날름 바로 먹어치우지 않는다. 몇 번 먹이를 쪼아보고 '앗싸! 맛있는 거네' 하는 판단이 들면 독특한 행동을 한다.
주위를 살펴보고 소리를 내어 암탉들을 부른다. 그 소리를 듣고 암탉들이 모이면 자신은 암탉들에게 먹이를 양보하고 뒤로 물러난다. 이걸 본 아내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보다 낫네." "…. "내가 직접 본 건 아닌데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세상에 제일 심한 서열 싸움을 하는 놈들이 원숭이하고 닭들이라는 건 다들 알 것이다. 닭들은 서열 싸움에 더해서 약자에 대한 공격성까지 강한 놈들이다. 강자에게는 약하지만 약자에게는 잔인할 정도로 집요한 공격을 해댄다. 그런 공격 때문에 죽기까지도 한다.
원래 암탉들은 수탉을 사이에 두고 서열 싸움도 하게 되는데 그 와중에 왕따당하는 약한 암탉들이 반드시 생기게 된다. 이런 왕따 암탉들은 먹이경쟁에서도 밀려서 점점 야윈다. 수탉은 이런 왕따 암탉들도 따로 챙긴다. 맛있는 게 있으면 따로 불러 챙겨 먹게 한다.
이런 건 머리가 좋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거다. 나 같으면 이런 건 가르쳐 줘도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사람으로 치면 애인이 열다섯 명이 있다는 얘기다. 근데 이 열다섯 명을 체계적으로 다 관리한단 말이다. 한 번씩 외식도 시켜주고 각자 다른 영화 보여주고 성격에 맞게 선물도 해주고. 거기다가 삐치지 않게 스케줄도 관리하고….
아, 생각만 해도 머리가 아프다. 그 짓을 왜 하나? 나 같으면 열다섯 명 애인 이름도 다 외우기 힘들 거다. 나는 역시 일부종사요 일편단심이나 해야겠다(이 글을 아내가 봐야 할 텐데).
병아리는 아무나 낳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