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진 정비지회 사무장14년 일하 ㄴ쌍용자동차에서 해고된 김성진 쌍용자동차 정비지회 사무장
이명옥
대한문 분향소에 가면 늘 밝은 얼굴로 분향 객에게 음료를 건네고, 먹을거리를 나눠주고, 주변을 정리하며 순박한 미소를 덤으로 얹어주는 한 사람이 보인다.
쌍용자동차 정비지회 사무장인 김성진(41)씨. 성진씨는 1996년 쌍용자동차에 입사해 만 14년을 일했다. 2009년 대량해고 때 파업에 동참해 해고노동자가 됐다.
당시 성진씨는 조합 간부였고, 정리해고 싸움이라 합의가 안 되면 파업이 불가피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옥쇄파업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도 산 자(남은 자)와 죽은 자(해고자) 모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며, 옥쇄파업까지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대해 "회사가 정말 노조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는지"라고 되묻는다고 말했다.
"사측은 노조를 꼭두각시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노조는 노동조합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라도 '정리해고' 문제만큼은 해결하려 힘을 다했지만, 회사는 '협의' 자체를 거부했어요. 노조는 배수의 진을 친 심정으로 옥쇄파업에 들어가 사측의 '협의'를 끌어내려 했지만, 사측은 완강히 거절했지요. 용역과 공권력의 이름으로 무자비한 진압을 통해 파업을 분쇄해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정부는 침묵했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정부는 단순히 침묵만 한 것이 아니라 사건에 직접 개입되어 있더군요."22번째 죽음 "그저 멍해지더라"... 위기감 밀려왔다정비지부 평택지회는 2009년 2월부터 파업을 위한 천막을 공장 안에 치기 시작했고, 회사의 강경한 태도로 파업에 동참하게 됐다. 투쟁이 깨지자 현장 밖으로 밀려났고, 재작년부터 자살 사망 등으로 돌아가시는 분이 생겨났다.
22번째 죽음에 대해 성진씨는 "그저 멍해지더라"고 표현했다. 처음부터 죽음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다. 죽음이 자꾸만 늘어가면서 조금씩 두려움이 밀려왔고, 점점 더 두려움이 커졌다. 무언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는 위기감이 밀려왔다. 재작년까지 투쟁다운 투쟁을 하지 못했다. 결국 그해 11월 산업은행 앞에서 15박 16일 노숙투쟁을 한 것이 전부였고,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었다.
작년 회계 부분에 부정 의혹이 나오면서 투쟁이 본격화됐다. 투쟁준비 과정에 죽음이 발생하면서 투쟁의 정체성이 가려졌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쌍용자동차 노조는 왜 죽어야만 투쟁을 하느냐"는 오해를 하기도 했다. 투쟁의 시기를 놓쳐, 투쟁준비 중에 죽음의 이어졌을 뿐인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아팠다.
"이상하게 우리가 투쟁을 준비하고 있으면, 그때 누군가 목숨을 버리는 거예요. 타이밍을 놓치는 거죠. 그래서 분향소를 차리게 되고…. 사람들이 "왜, 너희는 사람이 죽어야만 투쟁을 하느냐?"고 하는 말이 비난처럼 들렸어요. 비난은 아니겠지만…. 무엇보다 투쟁의 정체성이 '죽음'으로 인해 가려지는 것이 안타까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