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멘토로 불렸던 정권 최고 실세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구속수감됐다.
유성호
최시중 전 위원장은 MB(이명박 대통령)의 '멘토 중의 멘토'였다. 그는 고향(영일-포항) 후배 MB를 일찌감치 대통령감으로 지목해 후견했다. 그는 또한 '형님'(이상득 의원)의 50년 지기다. 형님을 지칭하는 '영일 대군'에 빗대어 '방통 대군'으로 통했다. 그와 친구인 '상득이' 그리고 MB의 삼각관계는 다음과 같은 그의 어투에서 잘 드러난다(관련 기사 -
폭탄 맞은 MB 멘토들... '명박산성' 무너진다)
"1970년대 중반쯤에 상득이가 현대 다니는 똘똘한 동생이 있다고 해서 만났지. 정말 보니까 아주 명석해. 그래서 될 놈이다, 이렇게 생각했고. 본격적으로 우리가 꿈을 꾸기 시작한 건 (MB가) 1992년 전국구 의원으로 출마한 뒤라고. 그때부터 우리가 꿈을 꾸고 준비를 한 셈이지."그런 그가 개발사업자로부터 '검은 돈' 수억 원을 받아 대선 여론조사로 썼다고 실토한지 1주일만인 지난달 30일 밤에 구속 수감되었다. 대통령의 형님에 이어 멘토까지 돈봉투의 수렁에 빠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멘티'이자 동생인 MB로서는 '멘붕'(멘탈 붕괴 : 실생활에서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을 때 쓰는 신조어)일 수밖에.
위기에 대처하는 수법도 비슷한 '50년 지기'두 사람은 50년 지기답게 위기에 대처하는 수법도 비슷하게 노회했다. 특히 '검은 돈'을 받은 의혹이 불거지면 대개 부인하거나 검찰 조사에서 사실대로 밝히겠다고 말하는 것이 먼저인데, 검찰 수사에서 입증할 돈의 '입구'는 물론 '출구'까지 미리 밝혀 버렸으니 검찰의 수고를 덜어준 셈이다.
최시중씨는 처음 의혹이 불거지자 기자들에게 "중학교 후배한테서 개인적 입장에서 돈을 받았다"고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하면서 "㈜파이시티(서울 양재동 복합유통단지) 인허가 명목은 아니었다"고 부인했다. 그는 또 "2007년 한국갤럽 회장으로 있으면서 이명박 후보 대선 캠프에서 일했는데, 당시 대선 여론조사 자금으로 썼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자신의 발언이 언론에 '청와대 압박용'으로 비치자 다음날에는 "여기저기에 보태서 내 일상에 썼다"(중앙일보)고 두루뭉술하게 피해갔다. 30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면서는 돈의 사용처에 대해 "유구무언"이라고 답했다. 그는 돈을 받은 당시 '자연인' 신분이었다. 공소시효가 5년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의 알선수재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피해가면서도 불똥이 청와대로 튀는 것을 막기 위한 '꼼수'로 보였다.
그는 또 검찰 조사를 앞두고 대형병원에 심장혈관 수술을 예약하는 등 구속을 피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이런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파이시티로부터 인허가 청탁과 함께 8억 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30일 구속 수감되었다. 법원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인정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30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의 하이라이트는 이른바 '대가성'의 입증 여부였다. 검은 돈을 받은 당시 최시중 전 위원장은 '자연인' 신분이었다. 검찰은 최 전 위원장의 구룡포중학교 후배이자 브로커인 이아무개씨의 운전기사 최아무개씨가 최 전 위원장에게 보낸 협박편지를 공개하며, 최 전 위원장이 받은 돈의 '대가성'을 강조했다.
'시청에 말씀 좀 잘 해달라는 돈'이라는 협박편지운전기사 최씨는 지난해 12월 브로커 이씨가 최 전 위원장에게 건넨 거액의 현금을 찍은 사진과 함께 '합의금'을 요구하는 편지를 담은 등기우편을 최 전 위원장에게 내용증명으로 보내 이씨로부터 '입막음용' 돈을 뜯어냈다. 주목할 것은 협박 편지의 내용이다.
검찰이 밝힌 편지에는 '그 돈의 성격을 잘 아시겠지만, 시청에 말씀 좀 잘 해달라는 돈인 걸 알지 않느냐. 8억원의 현금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당시 서울시장은 이명박 대통령이었다. 최 전 위원장은 이명박 시장의 '멘토'로서 그런 문제를 이 시장에게 직접 청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었다. 편지 내용대로 8억원이 '시청에 말씀 좀 잘 해달라'는 대가였다면, 그 돈은 이명박 시장을 염두에 두고 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