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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직업병피해자 한혜경 후원음악회 동영상 2012년 4월27일, 혜경씨를 응원하는 자리를 준비부터 담았습니다. 후원음악회를 채워주신 공연팀, 준비팀, 객석을 채워주신 모든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 일과건강
하루 전날부터 다짐했습니다. '울지 말자. 사회를 보면서 눈물 흘리지 말자.' 삼성직업병 피해 당사자와 그들과 함께하려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진행자가 눈물을 보이면 혜경씨를 응원하는 자리가 중심을 잃지 않을까, 라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지난달 27일 열린 '삼성직업병 피해자 한혜경 후원음악회-엄마, 더 행복해질게요'는 정말 한 분, 한 분의 따뜻함과 응원하는 마음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음악회에 출연하신 분들은 노래면 노래, 연주면 연주, 그림이면 그림, 자신들이 가진 재능을 기꺼이 후원하셨습니다.
삼성직업병 피해자와 유족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책 <삼성에 없는 단 한 가지, 사람냄새>의 김수박 작가와 <먼지 없는 방-삼성반도체 공장의 비밀>을 그린 김성희 작가는 미리 얘기되지 않았던 즉석 사인행사를 흔쾌히 받아주었죠. 후원음악회는 그렇게 '이야기, 한혜경'으로 시작했습니다.
▲4월 27일 삼성직업병피해자 한혜경 후원음악회에서 다름아름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다름아름은 2011년 연극 '반도체 소녀' OST작업에도 참여했다.
노현석
이야기, 한혜경의 첫 순서는 봄눈별의 인디언플루트 연주였습니다. 치유 음악회를 진행 중인 봄눈별은 이날 "특별히 마음의 고통을 덜어주는 음악을 준비"해 다치고 생채기 난 삼성 직업병 피해자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위로했습니다. 봄눈별은 트위터로 혜경씨 후원음악회에 함께 줄 분을 찾는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답을 한 분이기도 합니다.
뒤를 이은, 다름이 아름다운 세상을 노래하는 다름아름(박은영, 황현)은 오늘의 노래가 혜경씨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면 좋겠다"며 '턱을 헐어요'와 '다시는 아프지 말자'를 선사했습니다. 다름아름은 2011년, 삼성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다룬 연극 <반도체 소녀> OST에 참여한 분들입니다.
휠체어에서 내려 걸어서 무대에 오른 혜경씨
▲후원음악회에 참석한 한혜경(맨 왼쪽)씨가 박수치며 노래를 같이 부르고 있다.
노현석
주인공 소개가 빠질 수 없죠. 혜경씨와 어머니(김시녀), 혜경씨의 행정소송 변호인인 조지훈 변호사가 무대에 섰습니다. 휠체어에 앉아 있었던 혜경씨는 엄마의 도움이 있었지만 걸어서 무대 위로 올랐습니다. 휠체어를 뒤로한 혜경씨에게 "이제는 못 하는 게 없어"라고 한 어머님의 말에 뿌듯함이 묻어납니다.
혜경씨는 스스로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제가 산재인정 받길 위해 있는 한혜경입니다." 혜경씨 어머니는 "녹색병원에서 나갈 때는 두 모녀가 걸어서 떳떳하게 나가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인사를 합니다. 조지훈 변호사는 2011년 4월부터 행정소송 중인 혜경씨 상대가 왜 근로복지공단을 넘어 삼성인지를 얘기했습니다.
"이 소송은 피고가 근로복지공단인 소송인데, 삼성전자가 근로복지공단을 도와주기 위해서 피고보조 참가인으로 들어와 실제로는 한혜경씨와 삼성전자와의 소송이 진행되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싸움입니다. 1심, 2심 결론이 어떻게 나든 대법원까지 갈 소송입니다. 그 과정에서 한혜경씨의 건강도 소송의 승패도 좋은 결과가 있으면 좋겠습니다."세 사람이 내려간 무대는 영상이 채웠습니다. 영상 속의 혜경씨는 어눌해진 말, 중심을 못 잡는 몸을 스스로 '바보 같다'라고 표현하면서도 재활에 힘을 쏟고 삼성과의 싸움에도 빠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름다운 음악과 노래들로 가득 찬 음악회
▲직장을 마치고 후원음악회로 가쁘게 달려온 참여연대 회원노래모임 '참좋다'의 공연모습.
노현석
1부 '이야기, 한혜경'을 넘어 후원음악회는 2부 '희망, 더 행복해지기!'로 넘어갑니다. 행복해지기의 처음은 트럼펫 연주가 힘차게 열었습니다. 노동가요를 만드는 김호철씨가 "공연 제목처럼 한혜경씨가 행복해지길 바란다"며 '인터내셜가'에 이어 산업재해노동자 이야기를 다룬 '잘린 손가락'을 연주와 노래로 들려주었습니다.
직장인들이 모인 참여연대 회원노래모임 '참좋다' 팀과 우쿨렐레 공연을 한 '릴리와친구들'은 금요일 저녁, 개인시간을 포기하고 후원음악회로 달려온 분들이죠. 참좋다는 "빨리 퇴근도 못한데다, 지하철도 밀리더라"면서 늦을까봐 다급했던 마음을 전하고는 "열심히 응원하고 후원하는" 마음을 담아 '노래여 날아가라' '이 길의 전부'를 불렀습니다.
릴라와친구들은 "실력만 보면 이 무대에 서기가 부끄럽지만 마음만은 차고 넘치기에, 한혜경 님이 꼭 걸어서 춘천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득 안고 왔다"며 '봄이 오는 길' '너에게 난 나에게 넌' '나의 노래'를 경쾌한 우쿨렐레 선율로 전달했어요.
▲노동가요 작곡가이면서 음악감독인 김호철, 노동가수 박준, 산업재해노동자협의회 사무국장 양삼봉 씨가 함께 무대를 만들었다.
노현석
민족시인 이적 목사는 시 '꽃 한송이-한혜경씨에게'를 보내왔습니다. 이적 시인은 한혜경 씨를 "비틀어진 세상의 줄기가 되리라고" 다짐하는, "오늘도 이를 악물고 버팅기고 서 있는 겨울 들녘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꽃송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꽃 한송이 - 한혜경씨에게
민족시인 이적아직도 삼동 추위 성성한
겨울 들녘에
파르르 떨고 서 있는
겨울 꽃 한송이
봄은 왔다고
들녘 구석 구석
나무들의 수근거림이
따뜻한 그리움으로
다가오지만
겨울 들녘
쓰러지지 않고 서 있는
꽃송이는
사계절의 감각도 없이
쓸쓸히
쓸쓸히
처연히 서 있구나
거대한 태풍 같은
회오리 바람이 쓸고 간 들녘
아직은 넘어 질 수 없어
덩쿨으로라도 살아올라
비틀어진 세상의 줄기가 되리라고
다짐도 하고
하늘 어디쯤
빛으로 살아나
세상 구석 구석 비출날
그날 기다리며
오늘도 이를 악물고
버팅기며 서 있구나."엄마, 조금만 기다리세요... 사랑해요"
▲하와이 악기인 우쿨렐레 공연을 선보인 '릴라와친구들'
노현석
노동자가 있는 현장과 늘 함께 하는 가수 박준씨는 깜짝 이벤트를 선보였습니다. 노래에 앞서 "명동거리에서 만난 작은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다"며 명동성당 앞 거리공연에서 모인 성금을 혜경씨 어머님께 전달했어요. 객석과 함께 부른 '행복의 나라', '힘들지요'는 울림이 더욱 커졌습니다.
후원음악회는 점점 마무리를 향해 갑니다. '희망, 더 행복해지기!'에서 가장 기다렸던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혜경씨와 어머니가 서로에게 마음을 담은 편지를 읽었습니다. 어머님은 첫 마디보다 눈물이 앞질러 나왔습니다. "우리 딸 이름 세 글자만 불러도" 마음이 아픈 어머니는 "돈 주고도 못 사는 사람들을 알게 해준" 엄마 딸 혜경씨에게 "정말 고맙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재활치료 받아서 우리를 도와준 모든 사람들한테 걸어서 보답하자"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혜경씨는 짧지만 커다란 마음이 담긴 편지를 또박또박 읽었습니다.
"엄마, 항상 죄송해요. 제가 아파서 엄마가 고생이 많아요. 전 엄마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병원에서 7년이나 좁은 침대에서 주무시는 것도 항상 죄송하고요. 엄마 인생을 빼앗은 것도 미안하고요. 제가 빨리 걸어서 다 보답할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엄마, 사랑해요."
엄마가 혜경씨에게 보내는 편지 |
"사랑하는 내 딸 혜경이에게
혜경아! 엄마는 우리 딸 이름 세 글자만 불러도 왜 이리 마음이 아플까? 그리고 혜경이한테 항상 많이 미안하고 우리 딸이 이런 몹쓸 병에 걸린 게 꼭 엄마, 아빠 잘못만나서 생긴 것 같아서… 그래도 항상 엄마 원망 한 번도 없이 잘 견디어 주는 내 딸이 너무도 장하고 고맙다.
너는 항상 엄마한테 말하지. "엄마가 나 때문에 엄마 인생이 없어진다고." 그런 생각하지마. 우리한테는 또 다른 희망이 보이잖아. 네가 휠체어에만 의지하고 있다가 녹색병원에 와서 워커잡고 엄마가 잡아주지 않아도 중심잡고 지금은 잘 걷잖아. 이대로라면 머지않아 혼자서 걸을 수 있지 않겠니? 고맙다. 우리 딸! 때로는 엄마가 짜증내고 해도 엄마한테 신경질 한번 안내며 참아주는 우리 딸, 혜경아! 비록 우리가 가진 것은 없어도 우리와 함께 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부자인 사람들이 우리 옆에 많이 있지 않니.
혜경아. 엄마가 가장 가슴 아픈 이야기가 뭔 줄 아니? 네가 빨리 나아서 돈 많이 벌어서 엄마 다 줄게. 그러면 그때는 엄마는 집에서 살림하면서 엄마 친구들 하고 여행 다니라는 말 할 때야. 이미 우리 딸은 엄마한테 돈보다 중요한 걸 해준 거 너, 모르지? 물론 살아가는데 돈 정말 중요하지. 하지만 돈 보다도 정말 돈 주고도 못 사는 사람들을 알게 해준 게 엄마 딸, 혜경이, 너잖아. 정말 고맙다.
혜경아. 이제 우리 딸이 빨리 걸어서 친구들과 못다 즐겼던 추억도 만들고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그런 날을 만들어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지? 열심히 재활치료 받아서 우리를 도와준 모든 사람들한테 보답하는 마음으로, 걸어서 보답하자.
우리 딸, 혜경! 엄마가 정말 사랑해. 그리고 남들처럼 많은 걸 못 해 주어서 미안하고. 사랑한다. 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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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결기사 보기
[혜경씨를 응원합니다①] 삼성직업병 피해자 한혜경 후원음악회, 27일 녹색병원서 [혜경씨를 응원합니다②] '띠디디딕' 소리에 놀란 어머니, "따뜻한 사람 많은 세상"
혜경씨가 엄마에게 보내는 편지 |
장해 1등급인 혜경씨는 글을 쓸 수 없습니다. 혜경씨가 말을 하고 어머니께서 적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엄마. 엄마, 항상 죄송해요. 제가 아파서 엄마가 고생이 많아요. 전 엄마가 안 아팠으면 좋겠어요. 병원에서 7년이나 좁은 침대에서 주무시는 것도 항상 죄송하고요. 엄마 인생을 빼앗은 것도 미안하고요. 제가 빨리 걸어서 다 보답할게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엄마,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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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직업병 피해자와 유족은 물론 객석에 있던 분들에게 혜경씨와 어머니 마음이 고스란히 전달되었나봐요. 눈가가 붉게 물든 음악회 참석자들과 삼성직업병 피해자, 유족, 후원음악회를 준비한 사람들 모두가 혜경씨가 좋아하는 노래 '장미'를 불렀습니다.
"당신에게선 꽃내음이 나네요~♬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네요. …… 어여쁜 꽃송이 가슴에 꽂으면 동화 속 왕자가 부럽지 않아요. ……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 어쩌면 당신은 장미를 닮았네요~♪"혜경씨와 어머님이 더 행복해지기를, 걸어서 춘천 가자는 희망이 현실이 되기를 바라는 응원과 따뜻한 마음들이 후원음악회 공간을 꽉 채우며 '삼성직업병피해자 한혜경 후원음악회, '엄마, 더 행복해질게요'는 끝나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