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 책표지타고르 장편소설
범우사
72일간 인도 여행길에 함께 할 몇 권의 책을 배낭에 넣기 위해, 나는 서가를 살폈다. 비교적 다양한 책이 꽂혀 있는데, 읽지 않은 책도 많았다. 대부분은 누군가의 독후감을 읽고 혹은 광고를 보고, 강한 흥미가 생겨 인터넷으로 주문한 책들이다.
우선 10여 권의 책을 꼽아보았다. 한용운 시집, 이태섭 신부의 저서, 마더 테레사의 저서, 유종호 교수의 평론집, 그리고 <김광규 깊이 읽기>가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 책들은 제외, 다음 여섯 권을 여행 가방 안에 챙겨 넣었다.
<고라>(Gora, 타고르의 장편 소설), <Anger>(틱낫한 스님의 명상 서적), <산티니케탄>(하진희 교수의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곽재구 시인의 기행 산문집), 그리고 <빈곳>(김명희 시집) 등 6권이다. 왜, 이 여섯 권을 선택했는지 6회에 걸쳐서 책을 소개하기로 하겠다. 오늘은 우선 <고라>를 소개한다.
<고라>(Gora)는 타고르의 장편소설이다. 지난 2005년에도 인도 여행을 했는데, 그때 나는 영문판 <고라>를 노점에서 구입했다.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매우 두꺼운 책이었는데, 잠깐 읽어보니 내용이 수월하여 번역 없이도 읽을 것 같아 샀다. 시인 타고르의 저서 중에 그 책이 자주 눈에 띈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 책이 타고르의 중요한 저서이며 문학사에 빛날 명저라는 것은 훗날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이 책을 사서 한 달 동안이나 배낭에 가지고 다니다가 귀국했다. 몇 차례 책을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결국 읽지 못하고 책꽂이에 방치해 두었는데, 왠지 해야 할 숙제를 하지 못한 것 같은 마음이었다. 아마 그 방대한 분량에 압도되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이 연세대 유영 교수에 의해 오래전 번역된 것을 알았다. 우선, 번역본부터 읽기로 하고 다시 구입했다. 그 책을 읽으면 타고르의 산문체 문장과 그의 사상이 잘 드러나 있을 것 같았다.
또 한동안 읽지 못하고 있다가 이번 여행길에 가지고 가 틈틈이 읽기로 한 것이다. 특히, 이번 여행은 두 달 이상 타고르가 세운 대학이 있는 산티니케탄으로 일정을 잡았기 때문이다. 타고르는 이곳에 교육기관을 설립하고 거기에 살면서 많은 작품 활동을 했다. 지난 2월 3일부터 8일까지 캘커타에서 보내고, 9일 기차를 타고 산티니케탄으로 와 지내면서 틈틈이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타고르가 살았던 옛집을 방문하고 나서 나무 그늘에서도 읽고, 숙소에서도 읽었다. 이 책은 인도의 전통과 생활 방식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영국의 식민통치 아래서 인도가 어떻게 자활의 길을 개척해 나갈지 그 비전이 담겨 있는 책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그의 인간 세계의 집대성이요 또 인도 서사시의 현대적인 대표 걸작'(유영 교수), 그런가 하면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타고르 연구의 권위자인 크리팔리니 교수는 <고라>를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와 맞먹는 작품이라고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고라>를 타고르의 소설 가운데서 최고 걸작으로 보는 것은 거의 견해가 일치하는데, 그것은 다만 소설 분야에서 뿐만이 아니다. 이 작품은 또한 새롭게 태어난 지식층의 사회이식과 지적 각성이 큰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져있던 인도 근대사의 중대한 과도기를 형상화한 일대 서사시이기도 하다."번역자 연세대 유영 교수는 이 소설을 통해 타고르기 제시하고 인도가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몇 가지 인간상을 볼 수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청년상 (고라): 참다운 인간, 참다운 사나이, 참다운 지성의 전형, 자기희생과 진실의 결정체, 리더십의 압권어머니상 (아난다모이): 인자하면서도 포용력 있는, 또한 시대의 굴레를 벗어나면서까지 모성애를 살리는 뛰어난 통찰의 예지새 시대의 여성상 (스차리타): 눈은 바로 또 멀리 뜨고 주위의 공해에 찌들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찾아 인간으로서의 길을 가려고 하는 확고한 태도지도자상 (파레슈노인): 현실 속에서도 그 현실을 뛰어넘으며 신분종파의 올가미를 뚫고 조국의 전도를 개척하려는 선지자적 인물영국의 식민 통치 하에 있던 인도가 어떻게 독립을 해야 하는지, 영국의 부당한 간섭과 탄압에 강력하게 저항하는 <고라>는 바로 인도가 지향하는 참다운 인간상의 전형이다. 각 종파의 대립을 슬기롭고,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안나다모이와 파레슈 노인의 숭고할만큼 고결한 넋은 각종 종교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인도에 해결의 실마리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값진 인물로 부각되는 것이다. 인도의 상황은 이 책이 출판되던 시대나 지금이나 풀어야 할 난제들로 가득하다.
인도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한다. 언어가 그렇고, 종교가 그렇고, 생활방식이 그렇다. 그런 복잡한 사회를 이해하는 데는 그 나라 그 민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향을 제시하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중에서도 단연, 소설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우리가 일제 치하의 우리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록수>나, <흙> 같은 소설을 읽어야 하듯 인도의 당시 상황과 현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를 가장 잘 알고, 사랑하며, 끝없이 발전을 모색하고 방향을 제시한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만약, 여러분이 이 책을 읽으면 비로소 여러분은 인도를 조금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도에 대해 신뢰와 사랑이 싹틀 것이다. 무질서와 혼란으로 가득한 사회에 건강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지성이 있다는 데에 안도하게 될 것이다. 나는 미루고만 있던 숙제처럼 늘 부담을 안고 있던 이 책을 인도여행 길에 흥미있게 읽었다. 그것도 타고르가 세운 비슈바바라티 대학 경내에서, 그가 살던 옛집 집필실 곁에서 읽었다는 것이 한층 더 의미 있고 여행의 즐거운 추억의 하나로 만들어 주기도 했다.
고라
라빈드라나드 타고르 지음, 유영 옮김,
범우사,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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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이해하고 싶다면 이 시인의 소설을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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