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대 총선일인 지난 4월 11일 오후 서울 대방동 통합진보당 종합상황실에서 조준호, 이정희, 유시민, 심상정 공동대표 등 지도부 및 후보, 당원들과 함께 개표방송을 지켜보던 이석기 당선자(비례 2번, 이정희 대표 뒤 양복입은 이)가 일어나서 박수를 치고 있다.
권우성
이명박 정권, 5년의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릅니다.
2008년 2월 지엠대우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이명박 당선인은 비정규직의 절규를 들어라'며 한강 다리에 올랐고, 한강물로 뛰어내렸습니다. 그해 여름 KTX와 새마을호 승무원들은 서울역 40m 조명철탑에 매달렸습니다.
2008년 5월 2일부터 시작된 촛불항쟁에서 수많은 촛불들이 이명박 정권에 끌려갔고, 촛불항쟁에 연대해 7·2 촛불총파업을 벌였던 금속노조 30여 명의 간부들은 수배와 구속의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비정규직의 상징이었던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2008년 공장 옥상에 올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며 94일이라는 사상 최장 기간의 단식농성을 벌였고, 수많은 노동자들과 시민, 사회단체가 '기륭공대위'를 만들어 연대했습니다.
2009년 1월 망루 위에서 '살려 달라'고 절규하던 용산 철거민들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살인 진압에 맞서 수많은 이들이 용산으로 달려와 '용산 범대위'를 구성하고 꼬박 1년을 싸웠으며 박래군, 이종회, 김태연 등 많은 활동가들이 연대했다는 이유로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 해 여름 쌍용자동차 정규직 노동자 2646명, 비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1000명의 정리해고에 맞선 77일간의 공장 점거파업에 당시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노동자들이 평택으로 달려와 폭포처럼 쏟아지던 최루액과 물대포에 맞서 맨주먹으로, 때로는 짱돌을 던지며 싸웠고 감옥과 경찰서는 차고 넘쳤습니다.
용산,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2010년 여름 다시 시작된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포크레인 점거농성에도, 기아차 모닝공장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노숙투쟁에도, 공장 정문 아치에 올라 영하 30도 동상 걸린 발로 64일 고공농성을 벌인 지엠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64일 투쟁에도 노동자 시민들의 연대의 발길은 끊이질 않았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11월 15일부터 25일 동안 울산 공장을 점거하며 '모든 사내하청 정규직화'를 요구했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싸움에도, 14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송전탑에서 88일을 싸운 대우조선 하청노동자 투쟁에도,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점거 투쟁에도 연대의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노동자 서민들의 가난한 지갑을 털어 재벌의 곳간을 가득 채우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을 양산했던 이명박 정권에 맞선 노동자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연대의 마음은 마침내 희망버스에서 불꽃으로 타올랐습니다.
투쟁의 상징 85호 크레인 309일와 연대의 상징 희망버스는 자본의 탐욕과 정권의 탄압을 넘어 작은 승리와 희망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송경동, 정진우가 감옥살이를 해야 했으며, 수백 명의 노동자, 서민들이 유치장으로 갇혀야 했고, 수억 원의 벌금폭탄을 받았습니다.
4개월 전인 지난 1월,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이명박 정권과 새누리당, 재벌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는 어느 때보다도 높았습니다. 재벌의 '절친'인 새누리당조차 '경제민주화 실현'을 목표로 내걸었고, 여야가 앞 다투어 비정규직 공약을 약속했습니다.
이는 노동자, 민중들이 목숨과 구속을 두려워하지 않고 이명박 정권과 자본에 맞서 투쟁을 벌였고, 이 투쟁에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일처럼 연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의 반대를 외면하고 정리해고법, 파견법, 비정규직법이라는 3대 악법을 만들고, 신자유주의와 한미FTA를 강행했던 참여정부의 국민참여당과 통합하고 '묻지마 야권연대'에 몰두하였습니다.(관련 기사 :
묻지마 '야권연대', 한계가 명확했다)
당선만이 지상 최대의 목표가 되어버린 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의 후보들은 목숨을 걸고 가장 처절하게 싸웠던 노동자, 민중들이 아니라 각 정파의 대장들과 명망가들로 채워졌습니다. 결국 야권연대는 패배하고,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도시에서 외면당했습니다.(관련 기사 :
그날 이정희 대표는 왜 마이크를 잡지 못했나)
노동자-서민 위해 목숨걸고 싸운 후보는 누구입니까?4·11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에는 농민과 장애인, 환경운동을 대표하고, 2008년 촛불항쟁을 함께했던 분들도 있습니다. 등록금 투쟁을 비롯해 학생운동에 앞장섰던 이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리해고와 900만 비정규직의 고통을 양산한 이명박 정권과 자본에 맞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이들의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서 309일을 싸워 자본의 탐욕과 정리해고의 부당성을 알려낸 김진숙 지도위원과 송경동 시인에게 비례대표 후보를 제안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용산 철거민들과 연대했던 이들에게,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기륭전자와 현대차 비정규직을 비롯한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런 제안을 했다는 소문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부정선거와 후보사퇴 논란을 겪는 통합진보당에 많은 이들이 민주주의와 패권주의를 말하고, 당권파의 종파주의를 비난합니다. 절차적 민주주의와 함께 내용적 민주주의, 즉 노동자 서민의 고난을 짊어지고 함께 싸우는 정당과 후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통합진보당 부정선거 논란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통합진보당 이석기씨는 "노동자, 농민, 서민의 진보정치를 위해 온갖 불이익과 어려움을 감내하면서도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며 묵묵히 헌신해 온 이름 없는 평당원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사퇴를 거부한다고 밝혔습니다.
'노동자, 농민, 서민의 진보정치를 위해' 그는 누구와 함께 싸웠습니까? 이석기, 김재연은 어디에 있었습니까? 이명박 정권 5년, 노동자 민중과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통합진보당 후보는 누구입니까?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박점규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 전 금속노조 비정규국장입니다. 이 글은 프레시안, 레디앙, 참세상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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