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농자 '고물 궁궐' 상량에 쓰인 글씨. '내가 살고, 서로 사는, 밝은세상'이라 써놨습니다.
최방식
자가 치유부터 해야겠습니다. 운전대를 잡았으니까요. 집착을 먼저 내려놓아야죠. 어떻게든 찾아가면 되지 뭐… 맘을 고쳐먹으니 그제야 석양녘 풍광이 눈에 들어옵니다. 연휴 첫날 늦은 오후라 그런지 길도 수월합니다. 밑져야 본전. 갱신(업그레이드) 실패한 저장장치를 꽂아 다시 시도해 봅니다. 안 되면 말고… 서너시간을 달려야 하는데, 그냥 한 번 해보기로 했죠.
실패를 대여섯 번 거듭. 세상에, 내비가 환하게 밝아옵니다. 디지털 문맹? 아니 디지털 맹신이 인간을 어떻게 황폐화할지 절감하는 순간입니다. 어른세대는 '디지털 소통'을 못한다고 구박받는데, 청소년은 만나면 제각각 쭈그려 앉아 저만의 '디지털 소통'을 하느라 '얼굴 맞대는 소통'을 할 줄 모르는 희한한 세상. 지독한 아이러니입니다.
세 시간여를 달렸나 봅니다. 현지로부터 주문이 하나가 날아들었습니다. 읍내 어딘가에 맡겨둔 게 있는데 그걸 찾아오라는 것. 내비가 작동하기에 망정이니 안됐으면 정말 고생 좀 할 뻔 했습니다. 물건을 찾고 보니 바로 앞이 농협매장. 막걸리며 음료수 등을 사들고 다시 차에 오릅니다.
대전-통영고속도로를 벗어나 30여 분 달렸을까요. 드문 산골 농가의 전열 등을 얼마나 지나쳤을까요. 명덕리 나들목입니다. 칠흑 같은 산길. 콘크리트로 신작로를 따라 10여 분 굽이굽이 산길을 오릅니다. 내비가 목적지에 당도했다고 하는데, 눈앞 서너 가구 중 어느 집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때마침 전등불이 들어오고 키가 큰 사내 한 명이 얼굴을 내밉니다.
엔진을 끄고 차 문을 여니 그제야 자연의 소리가 귀 한가득 밀려옵니다. 개구리와 소쩍새 울음소리, 집 앞 계곡 물소리, 정신을 맑게 하는 시원한 바람소리. 드디어 여생 추진위원들에게 '강렬한 끼'를 날렸던 그 주인공의 집 마당에 당도한 것입니다. 가장 반가운 건, 구수한 된장 냄새. 잠시 잊었던 시장기가 돕니다. 김혜정 추진위원(온라인 이름 뚜란)이 지리산 밝은마을에서 내려와 저녁을 준비 중입니다.
엔진을 끄니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