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국문83 졸업 25주년 재상봉 기념 문집 <우리들의 비밀번호>.
권우성
"국문 83 친구들아, 안녕? 이 한마디를 하기까지 25년이나 걸렸네. 그동안 건강하게 잘들 살고 계셨나요? 나 스스로 동기들과 격조하게 살아서 다른 공간, 다른 좌표에 아무런 관련 없이 흩어져서 사는 줄 알았는데 우리는 역시 한 울타리, 같은 함수 속에 존재하고 있었네. 과 동기라는 투명 그물이 지난 세월의 수많은 변수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하나로 모이게 했구나."
올해 마흔 아홉인 박연희씨는 대학을 졸업한 지 25년 만에 친구들에게 인사했다. 이 편지는 연세대 83학번 국문과 동기들이 5월 10일 펴낸 문집에 실렸다. 문집 이름은 <8312 우리들의 비밀번호>. 8312는 '1983년 대학 1학년으로 시작된 인연이 2012년까지 이어졌다'는 의미다. 212쪽 분량의 이 문집엔 파릇파릇한 대학 신입생 43명이 중년의 아줌마 아저씨로 변화하기까지 살아온 이야기가 오롯이 담겼다.
전은미씨는 이 문집 참여가 "내 삶을 거울에 비춰보기"였다고 했다.
"재상봉 25주년이 나에게 거울을 내민다. 좀 보라구. 너의 모습이 어떤지. 겁났다. 내 삶이 성공하지 않은 듯해서. 두려웠다. 내 삶이 너무 초라한 듯해서. 뭐 하나 내세울 게 없어. 친구들은 괜찮다고 했다. 하나 둘 어서 들어오라고. 참 다정한 목소리였다. 알고 보니 그것은 거울이 아니었고, 추억의 둥지였다."5월 12일 연세대에서 열리는 졸업 25주년 기념 재상봉 행사에 앞서 그들은 문집이란 사랑방에서 먼저 만났다. 처음 몇 명이 만나 재상봉 의미를 국문과답게 살리자며 문집의견을 냈지만 걱정도 많았다. 고등학교 교사이면서 편집장 역할을 맡은 이미혜씨는 "자기 일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공동 작업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끊어졌던 네트워크를 복원하는 과정이어서 뿌듯하다"고 했다.
편집위원 문예경씨는 "우리 과 정원이 70명인데 7명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했어요, 카페에서도 보고 우리 아파트에서도 모이고, 그러다보니 한 권의 책이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처음 스무 명 정도의 참여를 기대했던 것에 비하면 문집은 성공한 셈이다. 한두 명이 먼저 임시로 마련한 온라인 카페에 문집에 실을 글을 올리자 반응이 뜨거웠다. "참 열심히 살았구나" "대학다닐 땐 네가 가난한 줄 몰랐는데" 등의 댓글은 "그럼 나도 써볼까"로 이어졌다.
문집에 실린 글들은 국문과 출신들답게 에세이부터 시, 시조, 서평, 논문 등 다양하다. 유동걸씨는 권두시에서 이렇게 지난 세월을 노래한다.
출발은 같았으나길은 같지 않았다.누구는 군대로, 누구는 광고로, 언론으로학교로, 외국으로, 가정으로그리고 두 친구는 먼 강 건너돌아올 수 없는 평화의 땅으로 승천했다.운동과 수배취업과 실업연애와 실연결혼과 출산일상과 탈주 속에그렇게 세월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