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트위스트나이가 무색할 만큼 귀여운 이들 부부
박영미
군산노인종합복지관의 소문난 잉꼬부부 유동수, 태이순씨는 이곳에서 댄스스포츠 커플로 인기가 자자하다. 8년 전, 복지관과 인연을 맺은 이순씨는 평소 쾌활하고 활발한 성격 덕분에 거부감 없이 댄스스포츠를 배우게 됐고, 그 매력에 빠졌다. 배우면 배울수록 재밌고 흥겨워 남편과 함께 하고 싶었고, 6개월을 꼬드겨 동수씨도 춤추게 했다.
"바깥양반 꼬드기느라고 욕봤죠. 여기 오게 하느라 뜻도 다 받아주고. 바깥양반이 원래 원체 말이 없고 조용한 성격이었어요. 복지관 다니면서 자신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거죠."
'남자가 무슨 춤'이라며 노여워하던 동수씨. 이젠 왈츠, 탱고, 브루스, 룸바, 차차차 등 못 추는 춤이 없다. 게다가 아내보다 더 잘한다. 같은 공간, 서로 다른 취미로 살아오던 이들 부부는 예순이 넘어 같은 공간, 같은 취미로 얼굴만큼이나 많은 것들이 닮아왔다.
일주일이면 5일을 복지관에서 활동하는 이들 부부는 다방면에 팔방미인이다. 최근 중국어를 배우며 학구열을 불태우는 동수씨는 복지관 소속 '위풍당당 봉사팀' 팀장이다. 이순씨 역시 남편 못지않다. 남편과 함께 봉사활동을 하며 해신동 통장직을 맡고 있다. 게다가 구연동화 2급자격증을 수료, 어린이집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최근에는 요가강사로 활동하며 같은 연배의 어르신들에게 요가를 가르치고 있다.
"부부간에 싸우는 것만큼 아무 것도 아닌 게 없지"1968년 음력 2월 21일. 이날은 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날이다. 부부의 연을 맺은 날. 동수씨는 곱디고운 이순씨의 얼굴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동수씨 외삼촌의 중매로 만난 이들 부부는 얼굴 몇 번 못보고 결혼을 했다. 11남매 중 장남에게 시집온 이순씨는 그때 그 시절 삶이 그랬듯, 갖은 고생을 많이 했다. 노산인 어머니를 대신해 막내 시누이 젖까지 물린 이순씨는 대가족의 며느리로 고생을 고생인 줄 모르고 그렇게 살아왔다.
"안사람이 참 고생 많이 했죠. 내가 무슨 말을 해도 따진 적이 없었어요. 내 말이면 철썩 같이 믿고 잘 따라왔지요. 참, 고맙고 미안한 사람입니다.""아휴~ 미안하긴. 바깥양반 없었으면 저는 못 살았을 거예요. 제가 많이 의지하고 존경하는 사람입니다."아마 젊은 부부였다면 눈꼴(?)사나웠겠다. 하지만 이들 부부가 하는 말이라 믿음직스럽고 또 자랑스럽기까지 하다. 45년의 세월, 그 세월의 깊이를 어떻게 가늠할 수 있을까.
그 긴 세월, 왜 싸우지 않았겠는가. 흔히 말하는 성격차이 때문에, 자식들 때문에, 돈 때문에 싸울 일들은 허다했다. 그러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풀고, 화해하며 45년을 살아왔다.동수씨는 "부부간에 싸우는 것만큼 아무것도 아닌 게 없다"며 지난날들을 회상했다. 그리고 부부간에 제일 중요한 건, 신뢰라고 강조했다.
"신뢰가 무너지면서 부부의 연도 무너지는 경우를 많이 봤습니다. 부부간에는 절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부부는 거짓 없이 사는 걸, 철칙으로 지금껏 살아왔습니다."아내 이순씨에게도 부부 간에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배려다.
"부부간에 인내해야 할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인내를 참는 걸로만 생각하지 말고, 배려라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흔히 말하잖아요. 아내가 남편을 배려할 줄 알아야, 아버지의 높낮이가 결정된다고. 아내의 배려, 정말 중요한 덕목입니다."마치 결혼식 주례를 듣는 것인 양 엄숙하고 경건해진다. 어쩌면 주례보다 값진 말이다.
슬하에 3남 1녀를 둔 부부는 며느리, 사위를 들일 때마다 "아버지, 어머니처럼 살겠다"는 말에 눈물을 훔치곤 했다. 부모로 살면서 가장 큰 보람이 이때가 아니면 언제겠는가. 이들 부부는 가장 큰 자녀교육은 부부가 사는 모습이라며 부부애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늙으면 늙을수록 재밌고, 즐겁게 살겠다는 유동수·태이순 부부. 노년을 아름답게, 그리고 건강하게 보내는 이들 부부를 만나고 좋은 글귀 하나를 발견했다. 이 글귀를 모든 부부에게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