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를 받고 있는 방송인 고영욱이 15일 오후 서울 용산서에서 재수사를 받기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정민
최근 한 연예인의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가 드러났다. 이 사건의 전개 과정은 한국사회의 인권의식이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보여준다. 혐의자인 '룰라'의 전 멤버 고영욱만이 아니다.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한 검찰의 안일함에서, 가해자 편을 드는 법체계, 이 중대한 사건을 흥미위주로 보도해 온 한국 언론 모두가 그렇다.
지금까지 밝혀진 대개의 사실은 이렇다. 혐의자가 18세 미성년자에게 연예계에 줄을 놔 주겠다고 접근해 술을 먹인 후 성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피고인은 자신이 '공론화된 것만큼 부도덕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으나,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행위를 했다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놀라운 것은, 앞의 혐의가 모두 사실로 드러나도 피고인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피해자가 미성년자라 하더라도 13세 이상이고, '합의에 의한 성관계'면 처벌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13세 미만이어도 피고인이 '몰랐다'고 주장하고, 그 반대사실이 입증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다.
지난 달 12세 초등학생을 성폭행한 30대 남성의 재판이 열렸다. 피고인은 2009년 일어난 성폭행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당시 피해자의 키가 커 15~16살 정도로 보였고, 자신도 14살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수원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이동훈)는 "피해자가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임을 알았다고 입증할 증거가 없다"며 검찰의 공소를 기각했다.
결과적으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로는 처벌할 수 없고, 오직 형법상 강간죄로만 처벌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가해자는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풀려난다. 강간은 본인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가 가능한 친고죄인데, 피해자와 부모는 합의 후 고소를 취소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와의 성행위는 모두 '강간'이다 현재 고영욱은 이후 2건의 다른 성폭행 혐의로 추가 기소된 상태다. 그리고 2010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 개정되어 미성년자 상대 성범죄의 처벌이 상대적으로 엄격해졌다. 하지만 과거 판례대로라면, 피고인을 처벌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가 '미성년자임을 몰랐고, 강제성도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부터 2012년 사이에 미성년자와 장애아에 대한 성폭력 관련 형법이 강화된 건 사실이다. 예컨대 제 16조(피해자의 의사) 개정으로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13세 미만 장애아에 대한 강간 및 준강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법률 강화가 처벌 강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기존의 형법 305조로도 13세 미만 부녀의 간음을 합의 여부와 상관 없이 처벌할 수 있지만, 수원지법의 판결은 12세 여아를 강간하고도 처벌을 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고영욱 사건처럼 피해자가 13세 이상인 경우는 해당하지 않는다. 이 경우 적용할 수 있는 법률은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7조 '폭행 또는 협박으로 아동·청소년을 강간한 사람은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협박이나 위계 사실을 입증하지 못하면 처벌이 불가능하다.
옳은 것일까? 미성년자를 상대로 성행위를 해도 '몰랐다'고 주장하고 '협박'이나 '위계' 사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처벌이 어려운 현실 말이다. 하다 못해 무단횡단을 하다 적발돼도 '몰랐다'는 주장으로 빠져나가기 어렵지 않은가. 딱지를 떼려는 경찰에게 '이 도로에 무단횡단이 적용된다는 사실을 내가 사전인지했다는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는 사람을 보았는가.
한국의 검찰과 법원은 혐의자가 미성년자와 성행위를 한 게 명백한 상황에서도 '무죄냐 유죄냐'를 따진다. 하지만 한국 이외의 나라에서는 미성년자와의 성행위 자체를 엄벌하는 게 상식이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상대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았는지, 합의에 의한 관계인지 여부를 따지지 않는다. 미성년자와의 성행위는 무조건 '법정강간(statutory rape)'으로 처벌한다.
코네티컷, 앨라바마, 델라웨어 등에서는 13~16세(한국 나이 14~18세) 미성년자와의 성행위는 최고 20~30년 징역형을 받는다. 피해자의 나이가 더 어린 경우, 종신형에서 100년형까지도 선고한다. 가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에 한해 예외조항을 두긴 하지만, 성인의 경우에는 엄벌을 피할 수 없다.
이럴 때면 항상 듣는 이야기가 있다. '나라에 따라 법체계와 적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어떤 문화적 전통과 특수성이 미성년 대상 성범죄를 관대하게 다루게 만드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국제적 법상식이나 미국을 무조건 따르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한국의 법체계와 집행 방식이 보편적 법상식에 어긋나 결과적으로 성범죄를 권하는 꼴이 되니, 획기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성년자와 '합의 성관계'?... 책임을 떠넘기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