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 <민중미학 특강>진짜 예쁜 이들은 나네 . 도랑네.너울네라고 이야기하는 백기완 선생님
이명옥
선생은 랭이(민중)들이 으뜸으로 치는 미인의 전형으로 나네, 도랑네, 너울네를 예로 들어 주셨다.
'나네'는 언 땅을 제치고 일어서는 새싹을 의미한다. 언 땅을 치고 솟아나는 새싹을 본적이 있는가. 언 땅을 제치고 솟구쳐 올라 강인한 생명력을 키워낼 수 있는 생명의 전령, 이 땅의 싸울 어미들이야말로 이 땅 민중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드는 미인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도랑네'는 칠흙같이 어두운 밤에 깜깜한 산골 화전민 집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을 말한다. 관솔불을 밝히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며 깜깜한 어두움을 몷아내던 화전민의 아낙 도랑네를 닮은 여성, 어둠을 몰아내는 관솔불을 닮은 여성이 민중들의 흠모를 받는 진정한 미인의 전형이 될 수 있었다.
'너울네'는 길이 없으면 찾아가고 그래도 기링 없으면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떼물(홍수)이 져서 길이 없어지고 강을 건널 수 없을 때 너울네는 이쪽 동네 천년 묵은 느티나무에 밧줄을 묵고 그 밧줄을 잡고건너가 저 쪽 마을의 천년 묵은 은행나무에 묶어 길을 만들어 마을 사람을 건너게 한 여성이다.
거센 비바람과 거친 물살을 뚫고 건너가는 사이 저고리와 치마가 다 벗겨져 벌거숭이가 된 너울네는 마을길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산에서 산으로 길을 만들며 넘어가야 했다. 그래서 너울네는 길이 없으면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개척자 정신을 지닌 여성을 의미한다.
이 땅의 랭이(민중)들이 손꼽는 미인들은 눈을 즐겁게 하고 잠시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아름다움을 지닌 여성이 아니라 '언 땅을 녹이며 생명을 낳고, 관솔불을 밝히 듯 따뜻한 품으로 생명을 가꾸고 길을 찾고 길을 만드는 여신과 전사의 면모를 두루 지닌 존재'였던 것이다.
선생은 또한 바비 인형을 닮은 기계적인 미인, 서구의 영화배우를 모방한 성형미인, 인간의 정신을 타락시키는 관능미에 대한 예찬에 대한 경계의 말씀도 더불어 해주셨다.
모방미는 개성을 죽이고, 본질을 잃게 만들고 정서를 죽이는 일이다. 남을 그대로 따라하는 일에 개성, 본질, 정서가 담길 리가 없다. 얼굴이 무엇인가. 얼이 담긴 꼴(형상)을 말한다. 그런데 기계적으로 턱을 깎아내고 코를 높이고 쌍커풀을 만들고 광대뼈를 낮춰 표정을 잃게 만들고 기계적인 미인을 만들어 내는 일은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는 일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정서, 개성, 본질을 잃지 말아야 하며 더욱 나네, 도랑네, 너울네가 지닌 진정한 랭이(민중)의 아름다움의 미학적 가치를 높이 사야만 한다.
선생의 이야기는 자본이 벽으로 굳게 언 땅을 녹이고, 사람들의 절망한 가슴에 희망의 관솔불을 밝히며 새로운 길을 내기 위해 크레인에 올랐던 이 시대의 나네, 도랑네, 너울네인 소금꽃 김진숙과 이땅의 수많은 또 다른 소금꽃들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송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