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수 초상화. 사진 출처는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삼화출판사
이만한 인물을 배출했으니, 박규수의 집안이 꽤 풍족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의 집안은 가난했다.
그래서 박규수는 남들처럼 가정교사의 지도를 받을 수 없었다. 아버지나 집안 어른의 가르침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고액 사교육은 박규수한테는 별세계의 일이었다.
그런데도 박규수는 어린 나이에 학문적으로 유명해졌다. 이조판서를 지낸 조종영이 망년지교(忘年之交) 즉 '나이를 초월한 친구'를 맺자며, 열네 살짜리 박규수에게 다가갈 정도였다. 개혁 성향의 효명세자(순조의 아들)도 자신을 도와달라며, 열아홉 살짜리 박규수에게 다가설 정도였다.
"그 정도면 타고난 천재였네"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위에서 언급했듯이 그런 단정은 성급하다. 물론, 박지원의 손자였으니까 어느 정도는 타고난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치열한 노력과 남다른 학습법 덕분이었다. 그의 학습법에는 네 가지 특징이 있다.
타고난 천재 박규수... 독특한 학습법 4가지첫 번째는 '두루두루 학습법'이다. 이른바 '학제적(學際的) 학습법'이었다. 가업인 유학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학문을 섭렵했다. 유학은 기본이고, 천문학·금석학·고고학·의상학·연금술·식물학·약학까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박규수는 미술 공부에도 시간을 할애했다. 그림에도 소질을 보였던 것이다. 문인이 그림까지 잘 그릴 경우, 사람에 따라서는 한 폭 그림을 그리는 기법으로 한 편의 글을 쓸 수도 있다.
박규수는 승려들을 만나 불교에 관한 지식도 습득했다. 나쁘게 말하면 '문어발식 학습'이지만, 이런 다양한 학습은 그를 박학다식하게 만들었을뿐만 아니라 통합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게 하였다.
두 번째는 '신·구 지식의 통합'이다. 이것은 박규수뿐만 아니라 사대부의 일반적인 학습법이었다. 새로 습득한 지식을 기존 지식과 접목시킴으로써 이해 및 기억의 효율성을 돕는 방법이다. 이것을 위한 도구 중 하나는 시 쓰기였다. 새로 습득한 지식을 시로 정리해 내면화하고 동시에 기존 지식과 융합될 수 있도록 했다.
일례로, 박규수는 열여섯 살 때 한양 도봉산 정상에서 하늘을 우러러 보며 시 한 수를 읊었다. 10대 시절에 남긴 시집인 <금유시집>에 나오는 작품이다. 다음은 시 일부다.
"세 개의 커다란 알약이 허공에 떠 있다. 하나(A)는 스스로 빛나서 밝구나.하나(B)는 덕성이 고요하여그저 생명을 자라게 할 뿐이구나.하나(C)는 컴컴하기가 거울과 같아서빛을 빌려 비추어주네."태양(A)·지구(B)·달(C)에 대한 천문학적 통찰을 시로써 정리한 것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과학탐구 영역'을 공부한 학생이 새로운 지식을 시로 정리하는 것과 유사하다. 시 쓰기를 통해 복습한 셈이다. 또 다른 시집인 <장암시집>에는 지구과학 지식을 정리한 시도 보인다. 이 시에서는 "아아! 큰 안목으로 볼 때, 지구를 만져보면 호두 속살 같을 거야"라고 했다.
이처럼 박규수는 배운 내용을 음미하고 시로 정리하곤 했다. 이렇게 공부했기 때문에, 새로 습득한 지식이 기존 지식과 잘 '접착'될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