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세 어머니 요양원 보낸 불효녀입니다"

전영애씨의 어머니 전상서

등록 2012.05.31 19:21수정 2012.05.3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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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모녀 나들이 믿기 힘들겠지만 이들 모녀 나들이 50년만이란다. 사는 게 뭔지...항상 기다리게만 한 어머니에게 딸 영애씨 죄송하고 또 죄송한 마음이다.

모녀 나들이 믿기 힘들겠지만 이들 모녀 나들이 50년만이란다. 사는 게 뭔지...항상 기다리게만 한 어머니에게 딸 영애씨 죄송하고 또 죄송한 마음이다. ⓒ 박영미


지난 9일,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정말 오랜만에 받아보는 손편지였다. 밑줄 쳐진 옛 편지지에는 가녀린 필체로 사연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제가 제일 불효녀입니다…."

시작부터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어떤 사연이 있기에 자신을 '불효녀'라 소개하는 것일까. 사연의 주인공 전영애(65·군산시 경암동)씨와 전화통화를 했다. 그녀는 97세의 어머니를 9년 전 요양원으로 보냈다. 그리고 지난 50년 동안 제대로 된 외식도, 교외 나들이도 없이 살았다고 고백했다. 배운 거 없이 힘겹게 살다보니 살뜰한 마음 한 구석 쓰지 못했다는 그녀는 후회와 눈물로 자신의 죄를 시인했다.

"사는 게 뭔지… 제 마음에 어머니는 항상 뒷전이었습니다. 애들 키우는 게 먼저였고, 자식들 입에 들어가는 게 먼저였습니다. 후회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 어머니는 아직도 우리가 먼저입니다. 세상에서 저만큼 불효녀가 또 있을까요…."

97세 어머니(강부열)에게 전하는 편지. 어찌 불효녀가 영애씨뿐일까. 세상의 모든 불효자들을 대신해 지난 23일 영애씨를 만났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 강부열씨도 모셨다. 그 흔한 나들이 한번 못했다는 이들 모녀를 위해 기자가 일일 손녀딸을 자처했다. 인터뷰 장소도 가까운 곳이지만 한 번도 가지 못했다는 군산의 대표관광지 은파유원지를 택했다. 믿기 힘들겠지만 이들 모녀의 나들이 '50년'만이란다. 상기된 표정의 두 모녀. 가슴 벅찬 심경을 영애씨 숨기지 못했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알면서도 안 했으니 제가 불효녀죠. 누가 믿겠어요. 50년 만의 외출이라는 걸. 다른 게 효가 아닌데…. 어머니 좋아하시는 딸과 나들이 가고, 맛있게 드시는 칼국수 한 그릇 사드렸어야 했는데…"


말을 잇지 못하는 영애씨. 왜 그렇지 않겠는가. 1년도 아닌 50년 만인걸. 영애씨는 또 다시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후회했다. 말없이 딸의 손을 잡는 어머니는 연신 괜찮다는 말로 딸을 위로했다.

1916년생. 97세 고령의 나이에 치매기 하나 없이 너무도 정정하신 어머니. 곱디고운 어머니는 아직도 옛 기억이 생생하다.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8남매의 맏며느리가 된 어머니. 그때 그 시절 고생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평생을 도박으로 산 남편, 가슴으로 품어야 했던 아들들, 효를 모르고 산 딸까지 어머니의 삶은 인내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아쉬운 소리 한 마디 못하시고 산 어머니는 아직도 여리고 여린 고운 소녀 같으시다. 그런 어머니를 9년 전, 요양원으로 보낸 영애씨는 어머니에 대한 마음의 빚이 크다.


"평생을 일만, 고생만, 설움만 받았던 어머니를 다 늙어서도 외롭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어머니를 버렸다'고 했지만, 버린 게 절대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사는 게 힘들어 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65세가 넘어 깨달았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가장 큰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이젠 어머니 사시는 날까지라도 뒤늦은 효를 다하려 합니다. 어머니, 너무 늦어서 죄송합니다."

a 불효녀는 웁니다 세월이 아무리 빗겨나가도 이들 모녀 서로 닮았다.

불효녀는 웁니다 세월이 아무리 빗겨나가도 이들 모녀 서로 닮았다. ⓒ 박영미


'나무가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이 봉양하고자 하나 어버이는 기다리지 않는다(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라는 말이 있다. 어쩌면 영애씨는 행복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효를 행할 수 있는 어머니가 계시니 말이다. 가정의 달 끝자락, 다시금 효를 생각한다. 효…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것 같다. 딸과 함께 있어 마냥 행복하다는 강부열 어머니를 보면 말이다. 

편지 전문


"제가 제일 불효녀입니다."

97세의 친정어머님을 지팡이에 의지하여 9년 전 요양원에 가시게 한 불효녀입니다. 저는 허울만 딸이고, 꼬리표만 달고 살아갑니다. 오순도순한 분위기 속에서 외식조차 못했고 고운 말씨로 '사랑합니다' 라는 흔한 말 한 마디도 못했습니다. 어머님은 요양원 창가에서 밖을 구경하시고, 하고 싶은 말조차 못하시면서 제가 보고 싶다며 기다린다고 합니다. 97년을 사시면서도 요구르트 하나 사오라고 말도 못하시고, 시골에서 홀로 사시다가 죽음의 문턱에 종착역을 요양원으로 선택하게 한 제가 죄인이고 불효녀입니다.

어머님 오갈 곳 없으시고 아들도 없이 사시면서 얼마나 힘드실까요. 그토록 부러워하시던 여행 한번 못 보내드렸으며 가까운 금강하굿둑, 은파유원지도 가지 못한 것이 이제 와서는 참 죄송합니다. 자가용 없다는 핑계만 했고, 미루기만 한 저는 불효녀입니다. 어머님 한번 보살펴 드리지 못하고 뭐가 그리 사는 게 팍팍했을까요. 자식들 다 키우면 맛있는 음식 사주겠노라고, 여행 가겠노라고, 효도하겠노라고… 지키지 않는 거짓말만 늘어놓았습니다. 어머님은 97년을 기다리고 또 기다리시네요.

어머님, 이젠 자가용 없어도 휠체어 타고 좋은 날씨에 나들이 갑시다. 옛날 살던 집도 모셔다 드릴게요. 어머님, 오랜 시간 요양원에 사시게 해서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이렇게까지는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사는 게 뭔지 죄송한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어머님, 이 세상 다하시는 날까지 딸의 불효를 원망하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천사표 어머니로 사세요. 어머님, 처음으로 말하네요. 정말 사랑합니다.

- 불효녀 영애 올림
#전영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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