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모퉁이 집> 헨리 제임스 단편선 <밝은 모퉁이 집> 앞표지
문학과지성사
마처는 자신에게 어떤 엄청난 일이 일어나리라고 예감하며 산다. 아니, 기대하며 살았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는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불안에 떨며 자기 자신의 진짜 감정을 똑바로 보지 못한다. 그의 곁에는 '메이 바트렘'이라는 자상한 벗이 있는데, 그녀는 마처 자신보다도 더 많이 그를 이해하고 사랑해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아직 일어나진 않았지만 언젠가는 일어나게 될 '그 일'에 대한 마처의 두려움을 알아주고 공감하며 함께 해결 방법을 생각해준다.
많은 세월이 흐르고 그들은 여전히 만나고 있었지만, 친구 이상도 이하도 아닌 모호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느새 늙어버린 그녀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온다. 그녀는 그가 현실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녀는 그에게 말한다.
"어떤 경우든 '그런 일'은 없어요. 어쨌든 현실은 현실이에요. 문은 닫혀 있지 않아요. 문은 열려 있어요." 이 말속에 모든 정답이 있었다. 항상 문은 열려 있었고 그 문틈을 내다보려고 조차 하지 않은 건 마처 자신이었다. 그는 그녀가 죽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미래에, 그녀가 사라진 후에는 추억이 존재하는 과거에 집착하며 살았다.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현실임에도 말이다. 그래서 그는 열정적으로 살지 못했다. 열정 없는 삶, 현실의 감정에 충실하지 못한 삶, 그로 인해 그가 얼마나 많은 것을 놓쳤는가?
마처는 메이의 무덤 옆에서 슬픔에 가득 차 있는 한 남자를 본다. 남자의 눈에 새겨진 깊은 상처, 그리고 슬픔. 마처는 감정에 충실한 그 남자의 눈을 보며 질투를 느끼고, 자신은 단 한 번도 저토록 열정에 휩싸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때서야 그녀를 놓쳤다는 사실을, 그 끔찍한 사실을 온 몸으로 느끼게 된다. 곧이어 마처를 덮쳐오는 야수…….
노팅힐의 두 주인공들은 제임스의 영화에서 재회했지만, 오해 때문에 또 다시 엇갈리고 그들의 사랑은 그렇게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된 남주인공이 여주인공에 대한 진실된 사랑을 깨닫고 용기를 낸 덕분에 두 사람은 이루어진다.
노팅힐의 두 주인공의 열정, 마처를 사랑한 메이의 열정, 메이의 무덤 옆 남자의 열정……, '밀당'이라는 말을 즐겨 쓰는 우리 역시 마처와 같이 숨기고 있지 않은가?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고, 더 많이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 애를 쓰면서 열정적으로 살아갈 순간을 포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자. 우리에게도 언제 야수가 덮쳐올지 모른다.
밝은 모퉁이 집 - 헨리 제임스 단편선
헨리 제임스 지음, 조애리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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