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 국문 83 졸업 25주년 재상봉 기념 문집 <8312 우리들의 비밀번호>.
김희진
너와 내게 부치는 편지졸업 25년 만의 재회를 기념하기 위해 발간한 이 책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83학번 졸업생 70명 중 40여 명이 참여한 문집이다. 온라인 카페에서 근근이 소식을 이어 오다가 '졸업 25주년 기념 재상봉 행사' '국문83' 대표인 오연호(48, <오마이뉴스> 대표)씨의 제의로 발간한 책이다. 책 제목의 '8312'는 처음 만난 해, 1983년과 졸업 후 25년이 지나 다시 만난 해, 2012년을 기억하기 위한 추억의 숫자다.
오랜 친구들에게 자기 근황을 소개하고 안부를 묻는 일종의 편지글이랄까? 집 주변 나무 이야기에서부터 가족여행 등 일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풀어내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심오한 것도 아니다. 국문과 출신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문집에 실린 글 60여 편은 한결같이 수려하다. 시, 시조, 수필, 서평, 논문 등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도 '국문과스럽다'. 공통점이 있다면 페이지마다 친구들과 오래된 추억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는 것.
오월이다 다시피어나는여린 잎새로 노래한다푸른 목소리로눈시울 붉어지는 눈망울로페드라 만미투 육교집 형제갈비에서젓가락 두드리는 젊음 위로 막걸리소주같이 노래한다우리들의 청춘을해말갛던 당신을나를국문 83을가장 눈부시게 사랑했던 그 시절의 우리 모두를- <다시, 83은 노래한다>(유동걸) 중에서 '보여주기 민망한' 기억의 습작들 이 문집은 사적이고 내밀한 글로 가득하다. 안부를 묻는 인사에서부터 20여 년 전 낡은 노트에 끼적인 시, 감명 깊었던 글에 대한 감상, 소논문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가치관과 걸어온 길을 보여준다. 책에서 그들은 스스로 '남들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글'이라고 평하지만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기억의 습작들을 스스럼없이 내놓았다. 어쨌든 친구들이 기쁘게 읽어줄 것이란 믿음으로 오랜 우정의 특권을 과시라도 하는 양.
보이지 않는 것으로보이는 모든 것을 보게 하고들리지 않는 것으로들리는 모든 것을 듣게 하여사막 같은 자리에서도샘솟는 너를 만나고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환하게 뜨는 너를 보며나, 영원히외롭지 않은 한 사람이어라,사랑아- <사랑 1989>(전은미)엄혹한 시절, 윤동주시비 앞에서 도시락을 까먹고스무 살 시골 머슴애에겐 서울의 첫인상은 낯설고 시끄러운 도시였다.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 굴다리를 지나면 자동차 소리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시골 촌놈의 정신을 빼앗아 가고 낯선 얼굴들이 촌놈을 더욱 무표정하게 만들었다. 학교 앞 '횡단보도 건너'는 군중과 소음의 도시 그대로였다.(p.112 손영호)스무 살 청년들에게 서울은 거대하고 안주하기 어려운 도시였으며 처음 맞는 대학은 한없이 낯선 공간이었다. 손영호씨는 자신을 '촌놈'이라 불러주는 선배들 속에서 처음 독립군을 만난 듯한 기분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눈 내리는 어느 월요일 오후, 그들은 윤동주시비 앞에서 도시락을 까먹으며 윤동주의 <서시>를 이야기했다. 덕소 첫 엠티, 잔뜩 술에 취해 춤추고 노래하던 밤이 끝나면 아침 강가에서 나룻배를 타며 물장구를 치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