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완 선생 <민중미학 특강>열강 중인 백기완 선생
이명옥
선생은 노나메기 정신인 민중미학의 핵심을 '살티(생명), 해방(환희), 다슬(자비), 진보( 변혁)의 미학' 네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민중 미학은 '실티(생명)의 미학'이다. 민중들은 짓밟힐수록 더욱 강인하게 일어선다. 반 생명에 저항하며 참 생명을 얻기 위한 피눈물의 몸부림이 바로 살티(생명)이다.
"칠전팔기 성공의 미학이 살티(생명)가 아닙니다. 참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한 개인의 생명을 얻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에 생명을 불어 넣는 것입니다."장산곶매가 자신의 체온으로 생명이 살 수 없는 곳에 소나무를 싹 틔운 것이 살티(생명)고 찬우물이 자기 안에서 끊임없이 솟구쳐 올라 마름 땅을 적셔 풀과 나무를 자라게 하고 생명이 깃들게 하는 것, 자신의 온 몸으로 생명을 싹 틔우는 것, 그것이 선생이 말하는 살티가 아닐까.
둘째, 민중 미학은 '해방(환희)의 미학'이다. 민중 미학은 '신바람의 미학, 해방의 미학, 환희의 미학'이다.
"베토벤의 제9교향곡의 주제가 환희라면서요? 그럼 신바람은 뭐요? 여자들이 치맛바람을 휘날리며 일으키는 바람이 신바람이 아니야. 참 신바람은 노동자의 겨드랑이에서 나오는 것이요, 농민의 가랑이에서 나오는 겁니다. 노동을 하느라 땀을 흘리고 흘리다 보면 겨드랑이에서 바람이 나오는데 그것을 신바람이라고 하는 것이오. 그걸 알아야 해. 말을 알고 써먹어야 해."일하는 사람의 노동의 가치가 존중받고, 노동을 천시하지 않는 세상, 땀 흘린 사람들이 인이 되는 세상이 해방의 세상, 신바람나는 세상일 것이다.
셋째, 민중미학은 '다슬(자비)의 미학'이다.
"다슬은 자비의 미학인데 어떤 자비냐 이 말이야. '내가 가진 것을 베푼다' 그런 자비가 아냐. 그럼 '무소유가 답이 아닌가요'라고 말하는데 아닙니다. 무소유는 있긴 있는데 내가 안 가진다는 말이잖아. 심정적으로 가지지 않은 것일뿐, 그건 가진 것이오. 진짜 다슬은 뭐냐, '내 것은 없다'는 것이야. 땀으로 얻어진 모든 열매는 내 것이 아니고 자연의 것이니 내 것은 없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진짜 다슬이오.안 가지겠다는 것은 심정적인 결단이야. 심정적 결단으로 안 가지는 것이 아니라 다슬이라는 건 내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모든 것은 땀이 맺힌 것인데 땀을 흘린 자들도 못 가지는 것을 땀 흘리지 않은 자가 가져. 그게 바로 도둑질이고 강탈이잖아. 아, 그러면 옆에 못 가진 이들에게 미안하니 조금씩 베푸는 것. 이게 다슬인가? 아냐. 자기도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인데 나눠주는 것이 무슨 베푸는 거야. 다슬은 바로 땀이요 눈물의 미학입니다. 내가 왜 민중 미학을 들고 나왔느냐. 지금 청와대에 어디 눈물이 있고 땀이 있소. 흘려봤자 몽땅 빼앗기는 판인데 말이오. 그러면 '눈물의 미학', 다슬이라고 하는 것은 무엇이겠소. 그건 바로 감격입니다. 감격의 미학이라고.야구장에 가보세요 야구방망이를 딱 때려서 넘어가면 와 환호성을 지르지요. 예쁜 여자나 근사한 남자를 보면(난 근사한 남자는 못 되지요, 할아버지니까) '와!' 하잖아요. 그런 것이 감격이 아니오. 일하는 사람의 마빡에서 배어나오는, 땀방울 일하는 사람의 두 눈깔에서 흘러나오는 피눈물, 이것이 진짜 다슬이라 이 말이야. 이게 감격의 미학이 아니고 뭡니까."선생은 자본주의가 이상으로 여기는 복지국가의 이상을 뛰어넘어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피땀이 만들어낸 열매는 자연의 것이지 인간이 주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빌려쓰는 자연이니 인간, 다른 생명, 자연이 골고루 혜택을 누려야 한다.
민중 미학은 진보(변혁)의 미학이다.
"한겨울 추위로 모든 것이 얼었을 때 강물은 흐르지 않는 것 같아도 얼음 밑으로 흐릅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 연면성이라고 하는데요. 예를 들어 마르크스를 봅시다. 마르크스가 말한 사회주의는 수천 년 역사에 흐르는 연면성의 시대적 결과물입니다. 연면성의 핵심을 잘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우리가 진보적인 길을 가겠다고 해서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굽이치는 것입니다. 노나메기 미학이란 무엇이냐, 그냥 흘떼(강물)처럼 흘러 굽이치는 진보, 거부할 수 없는 흘떼(강물) 같은 변혁의 물결이다, 이겁니다." 선생은 도도한 역사의 흐름이 이제는 새로운 판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신자유주의로는 더 이상 인간이 추구하는 바랄(꿈)을 이뤄낼 수 없다.
가난을 체제화하는 자본주의 판을 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