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사관 찍는게 테러행위인가요?

[추억의 사진③] 경찰의 호령,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등록 2012.06.22 08:45수정 2012.06.22 0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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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사관앞 평화비 전면 일본 대사관 앞의 평화비 소녀상. 누군가가 놓고간 꽃 다발이 우리 국민의 마음처럼 오히려 안쓰럽다. 일본 총리는 이 평화비를 철거하라고 2011년 12월 한일정상회담에서 요구하였다. 그들에게 이 평화 비가 얼마나 부담스러운 것인지 알 수 있음이다.
일본 대사관앞 평화비 전면일본 대사관 앞의 평화비 소녀상. 누군가가 놓고간 꽃 다발이 우리 국민의 마음처럼 오히려 안쓰럽다. 일본 총리는 이 평화비를 철거하라고 2011년 12월 한일정상회담에서 요구하였다. 그들에게 이 평화 비가 얼마나 부담스러운 것인지 알 수 있음이다.고상만

생각할수록 어처구니없는 그 일을 당한 때는 지난달 중순, 어느 날이었습니다. 인터넷 다음 카페를 통해 알게된 캠핑 동호회 모임에 참석하고자 일본 대사관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낯익은 조각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최근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 접했던 일본 대사관 앞의 '평화비'였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평화비'는 일제 식민지 말기, 정신대로 끌려간 위안부 할머니들을 의미하는 청동 소녀 조각상입니다. 이 비를 제작한 조각가 김운성, 김서경 부부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공식적인 사과와 배상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따라 지난 2011년 12월,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일본대사관 앞에서 시작한 수요 집회가 마침 1000회를 맞게 되어 이를 기념하고자 시민 모금으로 이 동상을 세운 것이지요.

비록 청동으로 만들어진 감정 없는 조형물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 평화비에 맺힌 가슴 아픈 사연을 외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채 스무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공부도 시켜주고 월급도 준다는 말에 속은 식민지 소녀들. 그러나 이후 일본군의 위안부로 죽음보다 더 처참한 삶을 강요받았던 그 시대 불행한 어린 소녀의 사연은 그래서, 제 발길을 저절로 멈추게 하였습니다.

그것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이 사건의 시작. 예상치 못한 그날의 '사건 아닌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사진 찍지 말라는 경찰의 호령, 이게 뭔 소리?

평화비의 이모저모를 살피던 저는 혹 나중에라도 관련 기사를 쓸 일이 있을까 싶은 생각에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먼저 평화비를 마주보고 정면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다시 전신으로 한 장, 그리고 얼굴을 중심으로 한 장 등 몇 장의 사진을 더 촬영했습니다. 잠시 후, 사진을 다 찍었으니 다시 약속 장소로 가고자 몇 발자국을 옮겼을 때입니다. 문득 호기심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소녀가 바라보는 일본 대사관은 어떤 모습일까'하는 호기심이었습니다. 소녀가 앉아있는 뒷모습을 배경으로 한 일본 대사관의 모습. 


"다시 돌아가서 찍을까? 말까?"

아주 짧은 내적 갈등은 '찍자'로 결론 내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내 발걸음을 돌린 저는 평화비의 뒤에서 휴대폰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막 자세를 잡고 사진을 촬영하려던 그때였습니다. 정말이지 전혀 예상하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물론 그 전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처음부터 일본 대사관 경비 경찰들이 제 행동을 내내 주시하고 있다는 것은 눈치채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경찰이 갑자기 저에게 다가오며 제 행동을 제지하는 것입니다.


"아저씨. 여기서 일본 대사관을 촬영하시면 안 됩니다. 찍지 마세요."

순간 귀를 의심했습니다. 뭐?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고!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은 저는 즉각  반문했습니다. "왜 안되냐"는 저와 "평화비는 찍을 수 있지만 평화비와 일본 대사관을 같이 찍는 것은 안 된다"는 경찰관. 당연히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저는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더구나 불의한 것은 절대 참지 못하여 나름 한 성질로 알려진 제가 이같은 경찰의 납득할 수 없는 횡포에 그냥 물러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치솟는 분노를 냉정하게 누르며 다시 물었습니다.

"도대체 왜 사진을 찍으면 안 된다는 겁니까?"
"대사관의 경호와 안전상 이유 때문에 절대 안 됩니다."
"아니, 사진 찍는 것이 무슨 테러행위입니까. 더구나 일본 대사관 사진은 인터넷에 수두룩합니다."
"여하간 안되니까 사진 찍지 마세요. 절대 안 됩니다."

경찰의 막무가내 횡포에 정말 눈물이 나도록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만약 제가 경찰관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그냥 사진을 찍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러자 경찰의 다음 말은 더욱 가관입니다.

"일전에도 그렇게 한 사람이 있었는데요. 저희가 그 카메라를 받아서 일본 대사관이 나온 사진을 전부 지우고 돌려드린 적이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아저씨 사진도 똑같이 지울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도 당당한 경찰의 횡포와 위협적인 어투에 할 말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무슨 근거로 경찰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가진 모든 대한민국의 법률 상식과 경험에 비춰보아 이같은 경찰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억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도대체 평화비와 일본 대사관을 같이 촬영하면 안 된다는 법률 근거가 뭔가요?"

그러자 경찰은 순간 멈칫하더니 "경비 업무와 관련하여 관할 경찰서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에 명시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경찰 내부 지시일 뿐 법률이 아니지 않냐"며 항변했습니다. 그러면서 "법률이 아닌 그저 경찰서의 내부 지침에 불과한 사항을 가지고 국민에게 이렇게 강제할 수 있냐"며 따졌습니다. 그런데 점점 제 주변 상황이 묘해지는 것입니다.

실랑이하는 시간이 길어지니 제 주변으로 경찰들이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에워싸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놈이 뭔데 하라면 하지 어디서 고까운 소리 하는거야"하는 분위기입니다. 그러면서 여차하면 업무 방해나 소란 행위에 따른 현행범으로 체포할 심산으로 보였습니다. 그 순간 솔직히 인간적으로 고민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거 계속 가야하나, 아니면 여기서 그만 두어야 하나. 바로 그때였습니다. 책임자로 보이는 경찰이 저에게 물어왔습니다.

"아저씨. 내 하나 물어봅시다. 대체 이 사진을 왜 끝까지 찍겠다는 겁니까?"

 지난해 12월 '제1000차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경찰관들이 일본대사관 앞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12월 '제1000차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일본 정부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수많은 경찰관들이 일본대사관 앞을 지키고 있다.유성호

기사 쓰겠다고 하니 태도 돌변한 경찰

"처음엔 자료로 갖고 싶어서 그냥 찍으려고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이제 이 사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상황인 것 같습니다. 도대체 경찰이 무슨 근거로 평화 비와 일본 대사관을 같이 찍지 못하게 하는지에 대해 기사로 쓰고 싶네요. 과연 경찰의 이 같은 행태가 옳은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러자 이게 웬일인가요? 지금까지 내내 사진 촬영이 절대 안 된다며 고압적이었던 경찰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하는 말입니다.

"그러세요? 그럼 지금 사진 찍으시면 괜찮은 거죠. 자. 사진 찍으세요."

어처구니없는 상황 앞에서 요즘 유행하는 단어가 "헐~~"인가요? 정말 "헐~~"소리가 나오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게 안 된다고 하면서 마치 연행이라도 할 기세였던 경찰이 우습게도 입장을 바꾸니 지금까지 죽자하며 싸우던 제 꼴이 더 우스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너무나 황당해서 갑자기 입장이 변한 이유를 물으니 경찰의 답변이 더 황당합니다.

"안 되지만 아저씨가 꼭 그렇게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하시니까 그렇게 하시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또 붙이는 한마디 사족이 다시 한번 저에게 잊을 수 없는 명언으로 남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일본 대사관의 건물 전체가 다 나오도록 찍으시는 건 안 됩니다."

정말 다시 한번 쓴웃음이 나오는 이 유치 찬란한 경찰의 행태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사진 촬영을 막더니 이번엔 찍되, 일본 대사관 건물 전체가 다 찍히면 안 된다는 이 발상이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것인지 한심스러울 뿐입니다.

이게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구나

그런데 제가 겪은 이 일은 알고 보니 저만의 특별한 사례가 아니었습니다. 혹시 나같은 일이 또 있나 싶어 인터넷에서 '평화비'로 검색을 해보니 너무나 많은 사례가 여기 저기서 아우성이었습니다. 그중 '사진 작사' 장영식씨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그가 그 일을 겪은 것은 저보다 한달 전인 지난 4월이었습니다. 그 역시 저처럼 평화비를 배경으로 일본 대사관을 촬영하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경찰이 어김없이 그의 행위를 제지했다고 합니다.

그는 "일본대사관 허락 없이 사진을 찍을 수 없다"며 사진 촬영을 금하는 경찰의 말에 "이곳이 우리 땅인데 내가 왜 일본 대사관에 허락을 받고 사진을 찍어야 하냐?"며 항의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주변 꽃집에서 카네이션 한다발을 사 '평화비'의 빈 의자에 놓으려 하자 이 역시 경찰은 안 된다고 제지하여 그 이유를 묻자 "시설물 관리 주체인 종로경찰서에 허가를 얻어야 한다"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그렇게 한참을 "되네, 안 되네" 실랑이를 하던 경찰이 갑자기 꽃을 두고 가도 좋다고 허락한 것은 장씨의 직업을 묻는 경찰에 "사진 작가"라고 답한 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내 "사진 촬영은 안 된다"는 경찰의 제지에 장씨 역시 고민 끝에 결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즉, 경찰 연행을 각오하고 사진 촬영을 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경찰에 의한 더 이상의 불상사는 없었으나 그는 자신의 사연 말미에 "아주 기분이 더러웠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동병상련. 누구보다 그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기에 저 역시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평화비'가 부담스러운 것은 일본 하나로 족하다

경찰은 '외국 대사관의 경호와 안전상 이유로 인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골 백번을 생각해봐도 과잉조치이며 우리나라 법에도 없는 공권력의 남용 행위입니다. 이에 대해 민변 소속 최영동 변호사는 경찰의 행위가 "형법상 직권 남용죄이거나 강요죄"에 해당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평화비'를 세운 직후 개최된 지난해 12월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총리는 평화비를 철거해 주도록 이명박 대통령에게 요구한 바 있습니다. 일본에 있어 이 작은 평화비가 얼마나 부담스러운 것인지 알 수 있는 사례입니다. 그런데 이 평화비를 두고 국민들이 보여주고 있는 관심과 이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에 대해 경찰이 요구하는 촬영 금지는 참으로 묘한 분노와 배신감까지 들게 합니다.

대한민국 어느 법률에도 없는 '일본 대사관과 평화비 동반 촬영 금지'.

정말이지 특별할 것도 없는 이 한 장의 사진. 그러나 저에게 있어서는 영원히 잊을 수 없도록 만들어진 2012년 '위안부 소녀가 바라보는 일본 대사관' 사진을 이제 여러분께 속 시원하게 공개합니다.

평화비가 바라보는 일본 대사관 이 평범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내가 싸운 40여분의 시간이 돌아보니 다시한번 어처구니가 없다. 결국 일본 대사관의 건물은 전체를 찍지 못했다. 경찰의 부당한 요구이지만 존중한 결과다. 일본 대사관을 주시하는 소녀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해보니 마음이 울컥해 진다.
평화비가 바라보는 일본 대사관이 평범한 사진을 촬영하기 위해 내가 싸운 40여분의 시간이 돌아보니 다시한번 어처구니가 없다. 결국 일본 대사관의 건물은 전체를 찍지 못했다. 경찰의 부당한 요구이지만 존중한 결과다. 일본 대사관을 주시하는 소녀의 마음이 어떨까 생각해보니 마음이 울컥해 진다.고상만
#고상만 #평화 비 #일본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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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운동가, 재야인사 장준하 선생 의문사 및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재산을 조사하는 조사관 역임, 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등 군 사망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 중정이 기록한 장준하(오마이북),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돌베개), 다시 사람이다(책담) 외 다수. 오마이뉴스 '올해의 뉴스게릴라' 등 다수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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